영화읽기 - 만추(晩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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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 만추(晩秋)
  • 승인 2012.11.2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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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주 기자

신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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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심장 뛰게 만드는 시간

감독 : 김태용
출연 : 현빈(훈), 탕웨이(애나)
오래전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그의 방안의 시계가 모두 멈춰있는 것이다. 초침소리가 꽤 유난했던지 자꾸 신경이 예민해진다며 배터리를 모두 빼놓았다고 했다.

마침 어떤 선물을 할지 고민하던 차에 그에게 무음 시계를 선물로 주었다. 시계소리를 싫어했던 그에게 소리가 나지 않는 시계를 선물한단 것만으로도 물론 기뻤지만 그보다는 그의 멈추어진 삶에 시간을 선물할 수 있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 좋았다. 다시 말해 내가 선물한 시간을 그와 함께 나누고픈 마음이었다고나 할까? 꽤 심오하고 꽤 로맨틱했다는 생각과 함께, 영화 ‘만추’를 보며 문득 그때를 떠올렸다.

 남편을 살해한 후 수감 중이었던 애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받고 3일간의 귀휴를 받는다.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시애틀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탄 애나는 우연히 차비를 빌려달라는 훈을 만나게 된다. 시애틀에 도착한 후 훈은 돈을 갚기 전까지 잠시 맡아달라며 애나에게 시계를 건넨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하고 곧바로 집으로 향한다.

몇 시간 후, 현실 속에서 그런 우연의 만남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애나와 훈은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았지만 우연히 길에서 만나게 된다. 그렇게 그들이 함께한 시간은 조금씩 흘러간다.
영화 속에서 훈이 애나에게 자신의 시계를 건네는 장면은 이후에도 몇 번 반복된다. 애나는 그가 시계를 내밀 때마다 거절했지만, 감옥으로 돌아가던 중 휴게소에서 결국 훈의 시계는 애나의 손에 맡겨진다.

시계의 의미는 바로 그 장면에서 비로소 풀린다. 마치 시계의 초침소리처럼 틱톡틱톡, 애나의 마음이 콩당콩당 뛰기 시작한 것이다. 즉 그동안 애나의 시간이 정지돼 있었다면 훈의 시계가 애나에게 건네짐으로써 애나의 감정은 다시 되살아난 것.

2년 후, 출소한 애나는 그들이 마지막을 함께했던 휴게소에서 훈을 기다린다. 영화 속에서 끝내 훈은 등장하지 않지만 이들은 다시 만났을지도 아니면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결말이 어찌됐건 애나의 표정에서는 2년 전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상심한 표정이 아닌 미소를 띠고 있다.

사실 그들이 재회했건 안했건 그것은 이 영화에서 중요한 엔딩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어쩌면 애나에게 중요한 건, 훈을 다시 만난다는 것 자체보다는 훈이 그녀에게 선물한 시간에 초점이 맞춰진다. 훈으로 인해 애나는 다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그가 전해준 따뜻한 마음을 추억하며 그녀의 정지된 시간은 다시 움직일 수 있었을테니까.
시린 가을, 시애틀의 부드러운 커피처럼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영화였다.

신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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