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 강철대오 : 구국의 철가방
상태바
영화읽기 - 강철대오 : 구국의 철가방
  • 승인 2012.12.06 13: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보성진

황보성진

mjmedi@http://


미남독재 타도하라! 연애 민주화 쟁취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니면서 학내외에 열렸던 집회에 참여했었던 사람들이라면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이라는 구호로 시작하는 전대협 진군가가 얼핏 기억날 것이다. 전대협은 전국 대학생 대표자 협의회를 일컫는 말로서 당시 학생운동의 구심체였고, 전대협 의장은 뉴스에서도 다뤄질 정도로 유명세가 대단하기도 했다.

 

1989년 의장이었던 임종석 전 국회의원의 경우 당시 여학생들에게 연예인들보다 더 인기 있는 인물이기도 했었다. 여하튼 엄혹했던 시절 전국 대학생들을 하나로 묶었던 이 구호가 이십 몇 년이 지난 지금에는 코미디 영화의 제목이 되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는 것이 매우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중국집 배달부 강대오(김인권)는 짜장면을 배달하며 첫 눈에 반한 여대생 예린(유다인)을 짝사랑하지만 이렇다 할 고백 한 번 못하고 속만 태우고 있다. 어느 날, 대오는 예린의 생일 파티가 있다는 첩보를 주워듣고 용기를 내어 생일 파티 장소로 달려간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 보니 그곳은 미국문화원 점거에 나서는 대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고, 대오는 엉겁결에 함께 농성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결국 학생들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대오는 이왕 내친 김에 예린의 이상형인 학생운동권의 전설적 혁명 투사를 사칭하며 예린의 마음을 사로잡기로 결심한다.

‘강철대오 : 구국의 철가방(이하 강철대오)’은 실제로 1985년에 있었던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의 이야기는 진중한 정치드라마가 아닌 모태솔로인 남자주인공의 짝사랑을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다. 최근 개봉한 ‘남영동 1985’와 같은 시대를 표현하지만 접근 방식은 사뭇 다르다는 점이 이 영화의 특징인 것 같다.

2년 전 ‘방가방가’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정립시켜주었던 제작진들이 다시 모여 만든 ‘강철대오’는 복고 특수를 누리고 있는 최근의 추세에 맞춰 순수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 그동안 무겁게만 다뤄졌던 학생운동을 매우 가벼운 터치로 그리며 당시 유행하던 홍콩 영화 속 주인공과 같이 선글라스를 끼고 대학가를 번개처럼 휘젓고 다니던 중국집 아저씨를 추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는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점거 농성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만 이야기를 전개시키며 전반적으로 단순한 구성으로 인해 극 초반에서 느꼈던 복고적인 흥미거리를 계속 연결시키지 못하며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헐거워져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는 감독이 무엇을 얘기하려고 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면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또한 ‘독재 타도, 파쇼 타도’ 등의 정치적 구호와 운동권 학생들만의 은어들이 재미있게 소개되지만 현 시대와의 갭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단, ‘건축학개론’에서 납득이로 인기를 끌었던 조정석의 노래와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으며, ‘광해’에서 진중한 모습을 보였던 김인권표 코미디를 맛볼 수 있다는 점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짜장면과 짬뽕 중에 무엇을 먹을까라는 행복한 선택을 즐길 수도 있다.

황보성진 / 영화 칼럼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