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호 칼럼 - 한의학교육협의회를 제안하며…
상태바
한창호 칼럼 - 한의학교육협의회를 제안하며…
  • 승인 2013.05.09 13: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창호

한창호

mjmedi@http://


한 창 호
동국대 한의대 교수

우리의 것은 소중한 것이여….
우수한 우리의 전통은 열심히 갈고 닦아 인류 모두에게 값진 것으로 발전시켜야 하고 미래 세대에게 보물로 남겨 주어야 한다. 우리 세대가 그 가치를 모두 확인하여 그 효용을 완전히 드러내서 활짝 꽃피워야겠지만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적 가치를 다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전통은 잘 보존하여 다음 세대에 넘겨주어야한다. 지금은 의미를 다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이 미래에는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한의학은 과거의 언젠가는 가장 우수한 가치와 성과를 내면서 경쟁 우위에 있었을 것이다. 16세기말 「동의보감」의 출간이 그 대표적인 예일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어느 시점에는 더 나은 학문이나 기술들에 도전을 받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어떤 때는 우수한 다른 문화에서 온 이론이나 치료법을 받아들여 재무장하거나 기존의 전통 지식과 합쳐져 더 체계화되고 우수해졌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세대가 이전세대에게 받은 보물일 것이다.

과거의 한의학은 어느 순간 완성되어 콘크리트하게 일체의 변화를 수용하지 않고 오로지 이전세대를 답습만하면서 수십 년, 수백 년을 바위같이 버텨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끊임없이 최고로 가치 있는 것들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것이나 이질적인 것과 비교 검토하여 더 새로워지고 더 강해져 왔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한의학이다.

현재의 한의학은 그리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하다.

걸핏하면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재현성이 없다, 과학이 아니다’ 소리를 듣는다. 어느 정도 경험적 성과는 인정하더라도 학문적으로 체계화되고, 교육과정으로 확고하게 발전시키는 방법을 가지고 있지 못한 건 아닌지 의심이 간다. 한의사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국민의 건강과 세계의학 발전에 공헌하는 활동과 연구를 해오고 있겠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니 의혹만 많다. 혹시 “누군가 하고 있겠지!”하고 믿고 싶기는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거 아냐?”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어쩌면 그러한 노력이 너무 미미해서 다른 분야보다 뒤처지거나 뒷걸음질 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 조심스레 한의사 교육 훈련과 한의학 발전을 함께 고민하는 대표기구가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지난 해 의료법 개정으로 국가가 인정한 평가인증기관에 의해 인증된 한의과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에게만 한의사면허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하게 되었고, 한의사면허 재등록제가 시행되면서 한의사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프로그램과 한의사 보수교육, 즉 졸업 후 직무교육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또한 최근 서남의대 사건 등에서 보여주듯 충분한 교육여건과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하지 못한 대학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치와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 달 대한한방내과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는 한의학 교육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많은 고민에 비해 충분히 소통하고 전달된 것 같지는 않지만, 한의학의 근간이 과학성, 특히 자연과학에 기반한 학문체계를 좀더 견고하게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이 다루어졌고, 이를 위한 교육개혁이 요구된다는 주장이 있었다.

고등교육과정으로서 한의학대학교육은 한의사로서 사회적으로 요구 받은 전문직능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과 훈련을 충분하게 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물론 1960년대이후 한국사회에서 한의학교육은 엄연하게 최고의 고등교육기관인 대학과 전문대학원에서 교육되고 있다. 외면적으로 봐서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그리 잘 수행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물론 전국에 11개 한의과대학과 국립대 한의학전문대학원이 있고, 대한한의학회를 주축으로 40여개의 분과학회가 있고, 재단법인으로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이 있고, 전국한의과대학학장협의회 등에서 한의학 교육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왔지만 한의계 구성원 모두가 동의하는 만족한 상태에 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은 3년 전부터 한의과대학과 한의학전문대학원의 평가인증사업을 수행해오고 있다. 그러나 2017년 이후 평가인증을 받은 대학 졸업자만 한의사시험을 볼 수 있도록 입법되어 있는 현재까지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이 한 차례 평가를 받아 3년 인증을 받았고, 작년에는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이 5년 인증을 받은 이외에 나머지 10개 대학은 아직 단 한차례도 평가인증을 받은 바 없다. 왠지 한의사의 학교교육을 11개 사학재단과 부산대에만 맡겨두고 수수방관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

 한의계에는 의학계의 한국의학교육협의회(의교협)와 같은 단체가 아직 없다. 의교협은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를 비롯하여 의학교육평가원, 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의과대학장협의회, 의학교육학회, 개원의사협의회, 기초의학협의회, 전국의대교수협의회, 한국의학원, 의학교육연수원, 국립대병원장협의회, 사립대의료원장협의회 등 학교교육은 물론 수련교육 및 졸업 후 보수교육 등 의학교육관련 단체가 회원으로 참여하는 단체이다. 한의계에도 한의사가 수행해야 하는 직무분석에 근거한 교육프로그램을 프레임으로 가지는 한의사교육과 생의과학 기초학문 및 의약학 등 유관학문 분야와 함께 연구하고 소통하는 한의학자들을 교육하기 위한 노력을 체계적으로 해야하는 건 아닐까. 그래야 과거 한의학의 가치와 명성을 미래에도 구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첫걸음으로 한의학교육협의회를 만드는 노력을 시작해 보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