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 60주년, 자유로 달리며 ‘정의가 죽었나’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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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60주년, 자유로 달리며 ‘정의가 죽었나’ 생각하다
  • 승인 2013.08.0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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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

한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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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 칼럼
한 창 호
동국대 한의대 교수
지난 주말 고양을 지나 자유로를 달렸다. 파주 인근에는 많은 차량과 사람들로 붐볐다. 정전협정 60주년이라고 한다. 남북은 핵 문제, 개성공단문제 등 그 어느 때보다도 복잡하게 얽혀 있고 서로 여러 차례 무력시위를 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지난 26일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한국에 온 「빈곤의 세계화」 (1998) 의 저자 미셜 초서도브스키(66·캐나다 오타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한반도 평화협정체결은 남북한을 넘어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한반도가 정전체제로 60년 동안 살아온 것은 이를 전쟁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미국의 의도가 크다고 하면서 2차대전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온 미국 주도의 전쟁, 특수작전, 쿠데타, 비밀작전 등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한국전쟁이라고 강변했다.

그는 지난 60년동안 한반도에서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면서 군사비를 늘리고 무력개입 등을 정당화해왔으며, 미국이 정전협정 체결 4년뒤 남한으로 핵무기를 반입한 것은 심각한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강조하면서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정부나 언론이 북한의 핵문제만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등 너무 비대칭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한반도의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차창을 열고 자동차로 달려가다 보면 좌측에 한강에서 임진강으로 이어지며 멀리 보이는 강너머 잿빛 등성이는 평화로워 보이고, 탁트인 전경이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가, 비무장지대휴전선 155마일이 느껴지지 않는다. 저 물길너머가 북녘땅이고, 저 물길 트인 데를 주욱연결하면 요즘 논란의 서해 NLL로 이어질 것이다.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을 두고 망자의 명예 훼손이 될지도 모를 무수한 말들이 오고 간다. 참으로 비정하고 비상식적이다. 국정원장이 국가기밀을 정치적인 의도로 발설을 하고, 국회의원들은 여야가 정략적으로 이용하며 스스로 법률에 반하는 담합을 하고, 대통령기록물은 관리 소홀인지, 망실인지 찾지도 못하고 서로 잘못한 일이라고 정쟁만 한다.

우측으로 비 온 후 짙어가는 녹음이 멋드러진 파주 출판단지를 지나 조금 더 북쪽으로 달리면 1998년 조성된 예술마을 헤이리가 나온다. 사실 헤이리는 수백년전, 아니 수천년전에도 거기에 있었다. 예술인 마을이 조성되기 전부터 실개천과 갈대습지가 있었고 600m의 작은 산이 있었다. 하기야 이 출판단지도 요즘 뉴스거리에 오르내리기는 한다. 불법적으로 부정축재를 한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이 수천억원 있는데 수십년 동안 못 찾는지 안 찾는지 하다가, 알고 보니 노숙자를 포함한 수백개의 차명 통장에 수개월씩 넣었다 뺐다 하면서 돈세탁을 하여 사위며 아들들이 땅을 사고 팔며 수백억원 이상 차익을 남겼으며, 아들이 소유하고 있는 출판사 건물 지하창고에 고가의 미술품 수백 점을 보관하고 있다가 검찰에 압수를 당하였다. 참으로 창피하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차마 할 짓이 아니다.

요즘은 국정원 규탄 시국선언이 한참이다. 지난 25일에는 천주교 부산교구 신부들이 26년만에 다시 일어났다. 활동신부들 중 절반가량인 121명이 ‘정의는 죽지 않는다’는 제목으로 시국선언을 하였다. 이들은 국정원이 대통령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하고 국기문란 행위를 덮기 위해 국가기밀문서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불법적으로 공개하였으며, 새누리당이 대화록을 불법적으로 입수해 지난 대선에 이용했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으며, 박근혜 정부가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고 책임지지 않는다면 4·19혁명과 부마항쟁, 6월 민주항쟁과 같은 시민의 항거에 부딪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시국선언에는 26일 현재 1만8426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 25일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에서 제시된 자료에 의하면 지난 대선 전 관련수사를 맡았던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팀 수사관들의 업무 대화장면이 찍힌 작년 12월 16일 새벽 CCTV기록에 보면 댓글이 삭제되고 있다는 대화내용 동영상물이 남아 있으며, 여기에는 이미 경찰이 댓글이 삭제되는 순간을 포착한 것을 보여준다. 당시 경찰은 이를 직접 확인한 당일 밤에 ‘대선후보 비방 및 지지 게시글이나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대선 사흘전인 두 후보자 마지막 방송 토론회를 마친 후 밤 11시에.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는 시발점이었던 87년 4월에는 두 달간 5500명이 참여하여 결국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었다. 당시는 전두환 정부의 개헌논의 중단 선언에 대한 규탄에 대한 시민적 저항을 일으킨 것이었다. 직접 참여민주주의를 쟁취하겠다는 국민적 결의였다. 결국 국민은 승리하였다.
우리는 21세기 후반 고도의 경제성장과 성공적인 민주주의 발전을 이룩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었다. 최근 우리사회를 보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것은 경제분야가 아니라 민주주의 발전부문이 아니었나 싶다.

슬프고 화가 난다. 실제로 난 상당한 부채의식이 있다. 이는 정의를 갈망하고 역사발전에 헌신한 이들에 대한 연민이 있는 동시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의식과 공동체의식의 일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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