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Asura)와 육도윤회(六道輪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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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Asura)와 육도윤회(六道輪回)
  • 승인 2013.09.05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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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

한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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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 칼럼
한 창 호
동국대 한의대 교수
경주 석굴암 본존불 전실(前室) 좌우 벽에 부조되어 있는 팔부 중에서 좌측 맨 앞에 서 있는 것은 아수라상(阿修羅象)이다. 피비린내 나는 전장이나 처참한 광경을 두고 아수라장(阿修羅場)이라고 한다. 싸움이나 그 밖의 다른 일로 큰 혼란에 빠진 곳을 뜻하는 말이니 지금 우리의 처지가 그러하다. 그리고 아주 난폭한 사람을 일컬어 아수라 같은 놈이라고 한다. 아수라는 아주 고약한 성격의 호전적 인물이나 나쁜 패거리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아수라(阿修羅, asura)는 산스크리트어로 신(神)을 의미하는 수라(sura)에 부정을 뜻하는 접두사 아(a)가 붙어서 나오는 악신(惡神)을 의미하는 것으로 아소라(阿素羅), 아소락(阿蘇洛), 아수륜(阿須倫)이라고도 불리며 인도신화에 등장하는 인간과 신의 혼혈인 반신이다. 상반신은 벌거벗은 모양으로 세 개의 얼굴과 여섯 개의 팔을 가진 형상이다.

힌두교의 초기경전인 「리그 베다」에서 아수라는 ‘절대 영(靈)’ 혹은 ‘생명 있는 자’를 의미했다. 또한 아수라는 고대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최고신이며 광명의 신으로 불린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와 어원이 같다. 그런데 어찌하여 아수라는 악마로 돌변했을까?

원래 선했던 아수라의 무리는 수가 많아지자 점차 교만해졌으며, 자만심이 날로 커가고 호전적으로 변해갔다. 결국 수라와 아수라들은 주도권 쟁탈을 위해 싸움을 벌인다. 싸움은 수라가 승리를 거두고 아수라는 패퇴하여 도망가게 된다. 아수라의 무리는 동굴이나 산으로 피해 달아났으며, 마지막으로 바다 속 깊이 피신하게 된다.

육도(六道)란 천상(天上), 인간(人間), 아수라(阿修羅), 아귀(餓鬼), 축생(畜生), 지옥(地獄)으로 분류되는 여섯 세계를 말하는데, 선악(善惡)의 업(業, Karma)에 따라 윤회하는 6가지 길이다.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 지은 업보로 필연적으로 윤회(輪回)를 하게 된다고 한다.

천상(天上)은 모든 행복이 온전하게 갖추어진 세계이다. 생전에 지은 업에 따라서 태어나는 환경이 달라지는 인간(人間)세계는 즐거움, 괴로움, 탐욕, 분노, 어리석음과 같은 감정이 있는 고통과 즐거움의 중간세계이다. 아수라(阿修羅)는 서로 헐뜯고, 싸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머무르는 곳이다. 지혜가 있지만 성질이 거칠고, 싸움을 좋아하여 하늘에서 쫓겨난 하늘사람이 사는 세계를 말한다. 아귀다툼을 한다는 말이 있다. 아귀(餓鬼)는 배고픔에 굶주리지만 먹을 것이 없고, 먹을 것이 목에 넘어가면 목에서 불이 나고, 물을 마시면 도리어 목에서 불길이 솟는다고 하는 굶주림과 목마름의 고통을 받는 세상이다. 축생(畜生)은 네발 달린 짐승이나 날짐승과 같이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을 가리키는데 사육하는 동물의 삶처럼 고통이 많고 낙이 적은 곳에 태어나 음식찌꺼기를 먹고, 죽도록 일하며 업을 갚는 고통의 세상이다. 육도 중 가장 고통이 극심한 지옥(地獄)은 어리석음과 무지함으로 인해 136가지의 지옥에서 한없이 고통을 받은 괴로움의 세계이다.

「법화경(法華經)」에서는 육도(六道)가 어떠한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명상태에 따라 변화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곧 마음이 흔들리고 어지럽게 되어 업이 생겨나고 지은 업에 대한 과보에 따라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것이라 한 것이다.

수라와 아수라와의 전쟁을 아리안족과 원주민들의 투쟁으로 보는 사람도 있으며, 선과 악의 영원한 싸움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 마음 속에서 들끓고 있는 선과 악의 실존적 표출일지도 모른다.

요즘 한의계 갈등이 극한으로 대립하고 있는 듯하다. 자신만이 오로지 옳고 또 다른 해법은 없다면 상대는 악신이 되는 것이다. 그 대척점에 서는 무리와 세력은 나에게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선과 악, 신과 악마는 영원히 화해할 수 없으며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괴멸시키지 않으면 안 될 대립의 구조를 보이지만, 원래 그 선과 악의 얼굴은 한 뿌리의 두 가지 모습이다. 그렇다면 선과 악의 갈등을 풀어내는 방법으로 상대방을 없앤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죽이는 어리석은 자해 행위이다. 한 걸음 물러나서 상생하는 길을 찾는 지혜가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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