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과 「동의보감」을 버려야 한의계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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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과 「동의보감」을 버려야 한의계가 산다
  • 승인 2014.03.2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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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안종주

mjmedi@http://


안종주의 일침(一針)
안 종 주
전 ‘한겨레신문’
보건복지전문기자
보건학 박사
삼성 이건희 회장. 그를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말은 내 머리에 각인돼 있다. “자식과 마누라 말고는 모두 버려라. 그런 각오로 혁신하라.” 혁신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 어느 조직-기업이든, 단체든, 정당이든-에서 늘 화두가 되는 말이다. 필자는 그 어느 조직보다도 혁신이 필요한 곳이 한의계가 아닌가싶다. 그리고 이 말을 던진다. 2002년 대한민국 최초로 「한국 의사들이 사는 법」이란 책을 통해 의사들에게 쓴소리를 던졌듯이.

“지금까지 쌓아온 것, 심지어는 허준과 「동의보감」까지 버려라.” 이 말에 누구는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를 한다’는 힐난을 할지도 모르겠다. 누구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라고 폄훼할지도 모르겠다. 허준이 누군가. 「동의보감」이 어떤 책인가. 대한민국 장삼이사(張三李四), 어린이들도 존경하는 인물과 아는 책을 버리라니.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과연 제정신인가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지금부터 차분히 필자와 소통해보자.

허준은 조선시대가 낳은 위대한 한의사다. 그의 의술은 여기서 제쳐놓더라도 그 시대, 즉 16세기와 17세기 초 중국과 동아시아, 나아가 아시아 전체를 아울러도 정말 대단한 책을 펴냈다. 중국에서도 「동의보감」을 당시 최고의 한방서로 꼽지 않았는가. 「동의보감」은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대한민국의 보물 중 보물이다. 잘 만든 한방백과사전 정도가 결코 아니라는 증거다. 「동의보감」은 허준과 한 몸이다. 실과 바늘과 같은 관계다. 「동의보감」은 허준과 이름 없는 많은 한의계 선배들을 포함한 우리 선조들의 얼이 담긴 책이다. 마땅히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허준과 「동의보감」을 널리 익히고 세계에 알려야 한다. 한의사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왜 이런 허준과 「동의보감」을 버리라고 말하는가?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모르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하여 새것을 아는 것을 뜻한다. 「동의보감」은 온고지신의 대상이다. 독실한 기독교도나 불교도에게는 매를 맞을 말인지는 몰라도 성경이나 불경도 온고지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들 경전은 결코 신의 말씀을 적은 것이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말과 불경에 나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실행하면 때론 크나큰 화가 미친다. 정신질환자가 악귀나 악령에 휩싸였다거나 믿음이 부족해 그렇다며 폭력적인 안수기도를 하다간 사람 잡기 십상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우리가 성경에서 배울 것은 예수나 그 제자, 그리고 그 뒤 많은 성직자들이 남겨놓은 위대한 사상과 정신이다. 우리가 불경에서 얻을 것은 석가모니와 그 제자, 그리고 고승들이 쌓아놓은 말과 글의 정신세계이다. 오병이어(五餠二魚)와 예수가 호수 위를 걸었다거나 불치병 환자를 고쳤다는 것을 글자와 일화 그대로 믿고 해석하면 안 된다. 이런 성경에 나오는 말씀이나 일화를 통해 나눔과 돌봄과 소통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이 중요하다. 불교경전에 나오는 많은 일화와 비유도 마찬가지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허준과 「동의보감」에서 배울 것은 이 책에 담긴 처방과 한의학의 정신이어야 한다.

‘온신지고(溫新知故)’, 즉 새것을 익혀 그것을 통해 옛것을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허준과 「동의보감」을 버리라는 것은 ‘온신지고’를 하라는 뜻이다. 「동의보감」에 쓰인 것은 모두 의심할 여지가 없는,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서양이든, 동양이든 진리라고 믿었던 많은 것이 새롭게 바뀌어왔다. 질병의 원인, 지구의 모양, 우주의 중심 등 바뀌지 않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인간의 몸도 16세기와 지금 엄청나게 달라졌다. 먹는 물과 음식, 공기, 생활양식, 언어, 주거 공간, 옷, 출산, 질병, 의약품, 의료제도, 정치 등 바뀌지 않은 것이 없다. 허준이, 그리고 「동의보감」이 수백 년에 걸친 변화를 모두 ‘신의 눈’(필자는 무신론자이며 여기서 말하는 ‘신의 눈’은 비유적인 뜻을 지님)으로 정확하게 예측해 반영한 것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동의보감」의 내용을 무조건 그대로 2014년 한국인들에게 사용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현대의학과 현대과학이 지금까지 밝혀낸 것들을 바탕으로 「동의보감」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현대동의보감」을 만들어내는 것이 앞으로 우리 한의계가 나아갈 방향일 것이다. 그것이 한의계가 혁신을 통해 살아남고 또 번창해나가는, 유일한 활로요 방책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동의보감」을 버려야 한의계가 산다. 허준을 버려야 한의학의 미래가 있다. 당신이 가진 모든 생각과 고정관념을 깨부수어야 당신이 산다. 역설이 때론 진리가 된다.


<필자 약력>
서울신문 과학/의학전문기자, 한겨레신문 사회부장, 보건복지전문기자, 국민건강보험공단 상임이사, 현 한국사회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저서로는 「에이즈 엑스화일」 「한국 의사들이 사는 법」 「인간복제 그 빛과 그림자」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증폭사회」 등이 있다. 현재 ‘내일신문’과 ‘프레시안’ 등에서 고정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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