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후반과 2015년 초반의 한국영화들을 살펴보면 유난히 아버지와 복고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많은 편이다.
이 중 두 가지의 키워드를 모두 활용해서 제작된 ‘국제시장’이 천만관객을 돌파하고,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2위의 기록을 세우면서 점차 가장으로서의 지위를 잃어 가던 아버지들의 어깨를 다시 일으켜 세우게 된 계기를 마련했다.
그래서인지 ‘국제시장’과 비슷한 소재와 배경으로 제작된 <허삼관>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궁금했었지만 결과적으로 흥행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허삼관(하정우)은 허옥란(하지원)과 결혼하기 위해 매혈을 한다. 그 후 그는 가진 건 없지만 아들 셋을 낳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11년간 키워온 일락(남다름)이 자기 자식이 아닌 하소용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때부터 허삼관은 허옥란과 일락이를 무시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일락이 동생들을 위해 다른 아이를 다치게 하고 치료비를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허옥란은 하소용을 찾아가게 된다.
중국 작가 위화의 소설인 ‘허삼관 매혈기’를 원작으로 한 <허삼관>은 시대적 배경을 전쟁 직후인 1953년으로 설정하고 우리나라로 장소를 옮겨와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다양한 캐릭터를 능수능란하게 소화하면서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는 배우 하정우가 ‘롤러코스터’에 이어 두 번째로 연출한 작품으로 전반적으로 기존 영화와 사뭇 다른 느낌으로 표현하면서 관객들에게 흥미롭게 다가선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조연급 배우들이 총출동하다시피 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연기는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지고, 분량 또한 거의 적은 편이라서 그들을 기대하고 봤다가는 아쉬움이 더 클 수도 있다.
오히려 감독이자 배우인 하정우의 분량이 거의 대다수이다보니 단편적인 이야기 전개로 인해 극적인 재미가 떨어지는 편이다. 거기에 드라마에서는 흥행퀸이지만 영화에서는 늘 저조한 성적을 내곤 했던 하지원의 징크스가 이번에도 지속되면서 세 아이의 엄마로 등장한 그녀는 너무 예쁘지만 영화 속 캐릭터를 소화하기에는 역시 아쉬움이 너무 많았다.
물론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그동안 키워온 아들을 외면하는 쪼잔한 아버지의 모습과 아들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의 모습들을 리얼하게 표현한 하정우의 연기와 일락이를 포함한 세 아이들의 귀여운 연기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특별한 반전 없이 여타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작정하고 관객들을 울리기 위해 노력하는 결말 부분의 장면들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지만 이미 관객들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지점을 놓쳐버린 탓에 큰 감동을 전하는 데에는 약간의 한계가 있다.
또한 시대와 사회적 상황을 자연스럽게 녹아냈던 ‘국제시장’과 달리 <허삼관>은 매혈이라는 독특한 소재가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에 치중했기에 많은 관객들을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이다.
하지만 뚱보로 변신한 윤은혜의 우정출연과 엔드크레딧에서 하정우가 키우던 고양이의 이름이 ‘허일냥’이라는 것을 보는 깨알재미로 그나마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
<허삼관>은 너무 많이 다루어져서 식상할 수 있는 ‘아버지’와 ‘복고’를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이지만 아버지의 사랑만큼은 절대 식상해 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황보성진 /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