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찾아오는 기억 상실 병에 당당히 맞서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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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찾아오는 기억 상실 병에 당당히 맞서는 삶
  • 승인 2015.04.3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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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성진

황보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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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 스틸 앨리스
 
예상했던 대로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힘은 강했다. 그로 인해 개봉한 지 1주 정도 밖에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명량’과 비교하면서 천만관객 최단 기록을 언제 세울 것인가라는 기사가 나올 정도이다.

또한 5월 1일부터 시작되는 관광 주간과 맞물리면서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기세는 당분간 계속될 듯하다. 이처럼 엄청난 위력을 가진 영화가 한 편 개봉하게 되면 극장이 보유한 대부분의 스크린을 장악하게 되지만 그 이면에는 그저 심심풀이 땅콩처럼 가볍게 볼 수 없는 영화들도 함께 개봉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물론 스크린 수가 적어 관객들이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지만 관객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영화들이 개봉되는데 이번에는 올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스틸 앨리스>가 개봉되면서 히어로 무비 사이에서 잔잔한 감흥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

세 아이의 엄마, 사랑스러운 아내, 존경 받는 교수로서 행복한 삶을 살던 앨리스(줄리안 무어)는 어느 날 자신이 희귀성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행복했던 추억, 사랑하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잊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는 앨리스는 소중한 시간들 앞에 온전한 자신으로 남기 위해 당당히 삶에 맞서기로 결심한다.

필자의 경우 극중 앨리스와 직업이 비슷하다보니 영화 속 이야기가 남 얘기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특히 오랜 시간 동안 강의를 해서 이제는 눈 감고도 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과목이 있지만 최근 수업을 하면서 영화 제목이나 감독 이름, 또는 설명하고자 하는 단어들이 갑자기 기억나지 않아 애를 먹은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가볍게 치부할 수도 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순간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는데 바로 주인공인 앨리스 역시 똑같은 모습이었다.

감독 : 리처드 글랫저, 워시 웨스트모어랜드
출연 : 줄리안 무어, 알렉 볼드윈, 크리스틴 스튜어트, 케이트 보스워스

특히 이러한 교수의 수업에 불만이 생긴 학생들의 강의평가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어야 할 때는 감정이입이 강하게 되면서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오기도 했다. 사실 치매를 다룬 영화들이 수없이 많았기에 이 영화에게서 새로운 것을 기대할 것은 거의 없다.

하지만 <스틸 앨리스>는 제3자의 시점이 아닌 치매에 걸린 당사자의 시점으로 이 병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한 언어학 교수의 모습을 매우 리얼하게 그리면서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찾아온 병으로 인해 내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야만 하는 상황이 얼마나 자신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영화 결말부분에 그녀가 미리 촬영해 놓은 영상을 보고 따라하는 장면은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된 <스틸 앨리스>는 치매라는 병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을 통해 지금까지 치매를 소재로 다룬 영화와 차별성을 두고 있다.

또한 공동 연출자인 리처드 글랫저 감독이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루게릭 병을 앓게 되지만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연출에 참여했다는 사연이 함께 알려지면서 영화의 내용이 더욱 더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리처드 글랫저 감독은 줄리안 무어가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것을 보고 올 3월에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그의 유작이 되어버린 <스틸 앨리스>는 줄리안 무어가 생애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는 찬사와 함께 ‘트와일라잇’에 출연하면서 할리우드의 새로운 여배우로 각광받아 온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리처드 글랫저 감독의 명복을 빌며,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나 자신과 나의 가족들, 친구들을 기억하고 있는 이 순간이 매우 행복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상영 중> 

황보성진 /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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