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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원 칼럼] 몸맘하나 멘탈클리닉(Mommamhana Mental Clinic) <8> 지언고론요법(至言高論療法) - 의미있는 말을 통해 사람을 얻다.
2016년 10월 27일 () 09:45:53 강형원 mjmedi@mjmedi.com
   
강 형 원
원광대산본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교수

삶에 의욕도 의미도 없고 소망조차 없어서 매일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이 지금 당신 앞에 앉아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30대 중반의 J씨가 바로 그런 여성이었다. 5년이나 지속된 우울증은 극단적인 행동과 정신과 치료를 반복해 갔고 삶은 점점 황폐화되어 갔다. 엄마의 손에 끌려 앉아있는 모습을 살펴보는 동안 그녀가 지닌 우울보다 강한 연민이 마음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창문을 열기만 하면... 고개를 들어 창가를 볼 수만 있다면...’

“선생님도 혹시 제가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시면, 그 때는 돌려서 말씀하시지 마시고 편하게 얘기해주세요. 그래야 저도 그냥 받아들이기가 쉬울 것 같아요.”

그녀를 가장 무겁게 누르고 있는 갑옷이 있다. 그녀의 첫 마디가 그랬다. 스스로 자신이 가망 없다고 여기고 그 때마다 층층이 겹을 쌓아갔던 바로 그 생각들. 동굴로 들어가기 위한 자신과의 타협일 수 있고 타인의 거부라는 두려움을 대항하는 본능 같은 그녀의 말은 실은 치료자에겐 너무도 명료한 구호처럼 들린다.

‘가망 없다 말하지 마세요. 당신은 전문가라면서요. 내게도 필요한 말이 있어요. 그 말을 내게 해 줄 준비가 되어있나요?’

심리치료는 언어의 과정이다. 하지만 그 말이 생명력을 찾기까지의 과정은 필요조건이 요구된다. 무조건적인 공감과 이해, 조용한 기다림이 그것이다. 자신을 파괴하고 있는 생각과 감정, 기억들에서 벗어나는 주체가 바로 환자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가망이 없는 사람은 없답니다. 어떨 땐 숨만 쉬어도 그 의미는 충분합니다. 제겐 J씨가 지금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귀하게 느껴지는 걸요. J씨의 숨 쉬는 이 모습은 옆에 있는 엄마에게, 아빠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있는지 모른답니다. 살아 함께 있기만 해도 힘이 된답니다.

나 자신이 싫다고, 짐만 된다고 생각하셨다면, 이제부턴 그런 마음을 혼자만 들여다보지 말고 이곳에서 저랑 같이 보면 어떨까요?“

자신의 존재를 그대로 수용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만 해도 치유의 길에 반을 달려간 셈이다.

“말하기 힘든 부분을 솔직하게 이 곳에서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최소한 예전 정신과 진료 갔었을 때처럼 약을 모으려고 여기에 오진 않은 것 같은데요?”

그 사이 J씨는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렸고 눈가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어 진료실 안에 있는 사랑초 화분을 올려놓고 스토리텔링 하나를 이어갔다.

“여기 이 식물은 사랑초라고 합니다. ”

테이블 위로 옮겨진 꽃의 이름과 모양이 같다고 느껴서인지 모양을 유심히 보았다.

“이 연약해 보이는 줄기를 한번 보시겠어요? 여기 이 줄기 한번 보세요. 제가 얼마 전 옮겨 심다 잘 못 건드려 줄기가 꺾인 흔적입니다. 여기 이 흔적 보이시죠? 이걸 이 지지대로 한참을 옆에 같이 세워줬어요. 그랬더니 지금은 지지대를 치워도 이렇게 꿋꿋하게 서있답니다.”

“J씨도 지금은 꺾인 줄기처럼 느껴지시겠지만, 이렇게 지지대와 함께 하다보면 어느새 이 사랑초 줄기처럼 혼자서도 꼿꼿하게 서있을 수 있을 겁니다.”

이 말이 끝나자 그녀는 작은 혼잣말을 뱉었다.

“휴 살았다.”

작지만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한 위대한 감탄사가 터져나온 것이다.

“J씨가 저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할 게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이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만약 J씨가 이전처럼 극단적인 행동으로 엄마의 슬픔이 되고, 눈물이 된다면, 저에게도 아픔이 될 것입니다. 다시는 자살을 시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주셔야만 저도 J씨를 믿고 치료를 계속 진행할 수가 있답니다.”

“네, 약속드려요.”

무엇이, 자신조차 믿을 수 없던 그녀에게 용기를 주었을까?

그녀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던 것은 ‘사랑초 지지대 스토리텔링’이었다. 자신의 처지를 객관적 대상으로 상대화시킨 사랑초의 힘이라 생각한다. 그녀에게 쏟아졌던 수많은 지시적 언어들은 그녀를 점점 죄책과 절망으로 몰아갔을 것이다. 스토리텔링의 장점이 여기에 있다. 유약한 마음에 지시적 언어의 권위와 압력은 제거하고 이미지 된 사물이나 이야기를 통해 환자는 스스로의 언어로 안전하게 필요한 그 의미를 받아들이고 매몰된 감정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의미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심리치료를 한의학에서 지언고론요법(至言高論療法)이라고 한다. <삼국사기> 열전편(列傳篇)에 ‘녹진(祿眞)’이 의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울증 초기인 환자를 치료한 장면이 나온다. 치료를 시작할 때 ‘가이지언고론 일정이파지야(可以至言高論 一政而破之也)’라고 한 대목에 나오는 ‘지언고론(至言高論)’의 사전적 의미는 ‘지극히 논리적이고 높은 식견’을 의미한다. 논리적이고 높은 식견의 언어적 대화를 사용해 심리치료를 한 사례이다. 대화로서 설유(說諭)하여 치료하는 법으로 상대에 대해 보증, 설득, 재교육 등의 기법을 쓰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임상에서 많이 쓰고 있는 한방정신요법 중에 하나이다.

지언고론요법의 현대적 의미로 통용되는 기법이 스토리텔링(story telling)과 리프레임(Reframe)이다. 이 번 회차에는 스토리텔링을 소개하고 리프레임은 다음 회차때 소개할 예정이다.

지언고론요법으로서 스토리텔링이 치료적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시의적절해야 하고 개인적인 깊은 묵상과 깨달음이 있는 스토리여야 하며, 상대방의 가슴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공감적 이해가 전제되어야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설교나 설득이 아니라 내면의 공명에 이르는 결단에서 비롯된다. 내면의 공명은 누군가 깊이 공감해줬을 때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의 스토리텔링 속에도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다양한 깨달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스토리텔링의 또 하나의 장점이다. 천편일률적인 공통된 감동이 아니라 각자의 형편에 따라서 받아들여지는 의미가 다 다를 수 있는데, 이것은 자기 치유의 방향과 선택이 이루어진 생명력의 결과이다.

논어에 이르길 “더불어 말할 만한데도 더불어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는 것이요(失人). 더불어 말할 만하지 않은데도 더불어 말하면 말을 잃는 것이니(失言),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잃지 않으며 또한 말을 잃지 않는다(可與言而不與之言, 失人. 不可與言而與之言, 失言. 知者, 不失人, 亦不失言.)”고 하였다.

지언고론요법은 의미있는 말을 통해 사람을 얻는 방법이다. 세상의 수많은 말들 중에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말이 무엇인지 침묵(수행)이라는 공간이 필요함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주: ‘사랑초 지지대 스토리텔링’은 진료실에서 많은 환자분들의 결단과 의지를 이끌어냈던 내용입니다. 본 칼럼에 등장한 환자정보 또한 특정인이 아닌 스토리텔링 기법을 설명하기 위해 각색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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