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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 틈
2016년 11월 03일 () 15:01:32 김영호 mjmedi@mjmedi.com
   
김 영 호
부산 공감한의원 원장
부산시한의사회 홍보이사

나무를 키우는 농장도 있다고 한다. 이를 나무 농장이라고 하는데, 나무 농장에서는 많은 나무를 키워서 분양을 해야 하기에 나무가 많이 심겨있다. 그런데 농장에 가보면 의외로 나무들끼리의 간격이 아주 넓다고 한다. 많은 나무를 심어서, 많이 팔면 좋을 텐데 촘촘히 심지 않는단다. 나무 간의 간격이 너무 좁으면 뿌리를 통해 영양분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해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일반인의 생각보다 띄엄띄엄 심어놓는단다. 나무가 살기 위해서도 이 ‘틈’이 필요하듯이 사람도 ‘틈’이 필요하다. ‘틈’은 곧 생명의 공간이다.

사랑에 서툰 어릴 때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여유가 없다. 상대의 마음이 어떤지는 살피지도 않고 상대를 향한 마음만 100층탑을 쌓는다. 그러다보면 정성을 아무리 쏟아도 사랑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사랑도 두 사람 사이의 살아있는 공간이므로 한 쪽의 감정이 그 공간을 모두 차지해버리면 상대가 펼쳐놓을 사랑의 공간이 사라져버린다. 사랑의 시작과 지속에도 틈이 필요한 법이다.

연애를 시작했거나, 혹은 결혼을 했다고 해도 애인이나 배우자의 모든 것을 알려하고 모든 시간을 공유하고자 하면 두 사람간의 공간은 한 쪽의 사랑만으로 점유당하고 만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상대의 공간을 열어주고 비워주어야 더 큰 사랑이 담길 수 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틈은 필요하다. 요즘 자녀들의 인생 전체를 책임져주는 부모가 많아지고 있다. 숙제는 물론이고 연애와 결혼까지 부모가 책임지다보니 자식이 살아나갈 인생의 공간이 사라져버린다. 그 공간에서 다채롭고 풍성해질 자녀들의 인생이 부모의 그림자 속에서 색을 잃고 단조로워 진다.

상업공간에서도 틈은 중요하다. 어떤 식당에 가면 주인이 너~무 친절한데 손님이 없는 곳이 있다. 친절하고 음식도 괜찮은데 왜 손님이 없을까 생각해보니 손님의 자유로운 공간과 시간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주인의 과한 노력이 손님의 편안한 식사를 방해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타벅스의 성공요인은 손님의 틈을 최대한 확보해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스타벅스에 있는 시간 동안 매장 직원들의 눈치나 간섭을 느껴 본 적이 없다. 나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이 아닌 곳에서 고객의 개인적인 공간을 확보해준 것이 스타벅스를 다시 찾게 하는 매력임이 분명하다.

이처럼 나와 타인, 나와 공간 사이에서도 틈이 필요하지만 그 어떤 틈 보다 ‘나와 나의 내면’ 사이야 말로 충분한 공간과 시간의 틈이 필요하다. 요즘 사람들은 나이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잠깐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다. 필자도 그 틈을 핸드폰으로 채우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뇌가 완벽히 쉬고 있는 시간은 하루에 얼마나 될까 우려될 수준이다. 과거에 스마트 폰이 없을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나 갑자기 생긴 틈새시간에 할 일이 없었다. 그야말로 ‘멍’을 때릴 수밖에 없는 시간이 있었다. 이런 멍 때리는 시간을 통해 우리는 뇌의 휴식과 자유를 확보했다. 타의적인 휴식이라도 이런 시간은 우리 스스로를 위해 정말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런 시간이 사라졌다. 심지어 사고방지와 안전을 위해 주위를 잘 둘러보아야 하는 보행 시에도 핸드폰을 보면서 위험을 초래한다. 핸드폰을 보며 신호도 없는 횡당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보면 아찔하다.

이렇게 뇌를 쉬지 않고 풀 가동하다보니 의외의 곳에서 무의식의 소망이 드러난다. 요즘 사람들이 선호하는 북유럽 스타일이나 무인양품(無印良品)과 같은 브랜드의 미니멀리즘(Minimalism)이 바로 틈과 여백에 대한 갈망이 나타난 것이다. 머리가 너무 복잡하다보니 집이나 인테리어, 옷과 환경은 심플한 것이 좋아 보이는 것이다. 동양화의 여백처럼 미니멀리즘(Minimalism)은 휴식과 틈에 대한 갈망이다. 사회 구성원의 뇌가 복잡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넌 꼭 이 책을 읽어야 돼”라는 말과 “이 책 괜찮은데 시간이 나면 읽어봐도 좋을거야”라는 말 중에 어떤 말이 더 책을 읽고 싶게 할까? 대부분의 사람은 후자가 아닐까 한다. 똑같은 권유라도 대답하는 사람의 의사를 존중하며 틈을 주는 말이 더 호감을 느끼게 하듯이 사람은 원래 틈에 대한 갈망이 크다. 그런데 이 틈에도 주인이 정해져야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정해진바 없이도 물리적 공간이든, 마음의 공간이든 일단 비우고 나면 그곳엔 우리의 가슴을 다시 뛰게 만들 것이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 과학실에서 본 알코올램프의 불을 끄는 방법은 물도, 소화기도 아니었다. 그저 뚜껑을 닫아주는 것이었다. 불이 탈 공간이 사라지면 산소가 차단되고 불도 꺼진다. 식어가는 열정과 사랑을 되살리는 방법도 알코올램프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뚜껑을 열고 불을 붙이듯 먼저 몸과 마음에 틈을 주어 공간을 확보해야 불이 붙을 수 있다. 순서를 헷갈리면 안 된다. 뚜껑을 열고 붙을 붙여야한다. 식어버린 열정과 사랑에 틈도 주지 않고 불부터 붙이려들면 안 된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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