胸脇苦滿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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胸脇苦滿案
  • 승인 2016.12.30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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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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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 (282) - 요시마스 토우도우(吉益東洞)의 醫案(2)

내용) 越中의 一一口의 誓光寺 主僧인 某氏가 진단과 치료를 청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제가 눈에 外障이 있어서 안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사물을 바라보면 오랫동안 볼 수가 없고 혹 억지로 보면 각이 졌는지 둥근지 큰지 작은지 판별이 안 되고 점차로 없어져버리고 마지막에는 송곳이나 터럭처럼되어 갑자기 눈을 찌르고 맙니다. 눈 가운데가 아파서 참을 수 없기를 3년이 되었습니다.” 선생께서 진찰을 해보니, 上氣와 煩熱에 體內가 瞤動하였다. 桂苓朮甘湯과 芎黃散을 주어 복용시키니 數十日이 되어 그 보는 것이 제대로 되어 다시 송곳이나 터럭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에 僧이 돌아갈 기한이 이미 임박하여 다시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京師로 넘어가는데 거의 천리길이고, 또한 道路가 艱險하여 넘어가는 것을 다시 하기 어렵습니다. 病이 여전히 다 없어지지 않았으니, 도움될 방법을 얻어서 돌아가고자 합니다.” 이로 인하여 다시 진단을 하니 앞의 증상은 모두 제거 되었고, 다만 胸脇苦滿만 느꼈다. 이에 小柴胡湯 처방을 써서 주었다. 僧이 돌아간 후에 이를 믿고 복용하였고, 비록 다른 증상이 나타나도 다른 약을 다시 복용하지 않았다. 어떤 날 갑자기 크게 惡寒이 나고 四肢를 戰慄하고, 心中이 煩悶하여 숨을 쉬지 못하여 弟子들이 驚愕하여 의사를 불러서 치료할 것을 도모하였다. 病者가 가슴을 가리고 천천히 “차라리 죽더라도 다른 약을 안된다.”라고 말하였다. 또 다시 小柴胡湯을 연달아 數劑를 복용하니 조금 蒸振煩熱이 생기고 땀이 腹背로 넘쳐흘렀다. 이에 이르러 오래된 숙질과 온갖 질환들이 하루 아침에 제거되었고, 四體가 편안해져 크게 이전과 달라졌다. 僧이 이에 글을 써서 달려와서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였다. (越中一一口誓光寺主僧某者, 請診治曰, 貧道眼目非有外障礙明. 然但望物不能久視, 或强之, 則無方圓大小, 須臾漸殺, 最後如錐芒輒射. 目中則痛不可忍, 如此者, 凡三年. 先生爲診之. 上氣煩熱, 體內瞤動, 爲桂苓朮甘湯及芎黃散服之, 數十日, 其視稍眞. 無復錐芒. 於是僧歸期已迫, 復謁曰, 越去京師也. 殆千里, 且道路艱險, 度難再上. 病尙有不盡, 願得援方法以歸也. 因復診之, 前證皆除, 但覺胸脇苦滿, 乃書小柴胡湯之方以與之. 僧歸後信服之. 雖有他證, 不復他藥. 一日俄大惡寒, 四肢戰慄, 心中煩悶, 不能氣息, 弟子驚愕. 謀延醫治. 病者掩心徐言曰, 寧死無他藥矣. 更復爲小柴胡湯, 連服數劑, 少焉蒸振煩熱, 汗溢腹背, 至是舊痾百患, 一旦頓除, 四體淸快. 大異于往常. 僧乃爲之書, 走一介, 謝先生云.) (『建殊錄』, 皇漢醫學叢書 제13권)(필자의 번역)

按語) 요시마스 토우도우(吉益東洞: 1702-1773)는 이름이 周助로서 19세에 의학의 뜻을 두고 金創, 産科의 醫師였던 조부에게서 醫術을 배우게 되었다. 張仲景을 존경하여 『傷寒論』을 연구하여 腹診이라는 새로운 진단치료 방안을 창안해내었다. 위의 醫案은 어떤 주지승의 上氣煩熱, 體內瞤動을 桂苓朮甘湯과 芎黃散으로 치료해낸 후 胸脇苦滿의 후유증을 小柴胡湯으로 잡은 후 계속 小柴胡湯을 투여시켜 다른 증상이 발생해도 계속 이 처방을 써서 치료하게 된 것 케이스를 소개한 것이다.

 

김남일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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