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강형원 칼럼] 몸맘하나 멘탈클리닉(Mommamhana Mental Clinic) <10> 경자평지요법(驚者平之療法) - 낯선 두려움, 익숙함으로 편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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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강형원 칼럼] 몸맘하나 멘탈클리닉(Mommamhana Mental Clinic) <10> 경자평지요법(驚者平之療法) - 낯선 두려움, 익숙함으로 편해지다
  • 승인 2017.01.0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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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원

강형원

mjmedi@http://


오랫동안 외출을 못하는 공황장애 환자의 애로사항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집에서 300m도 안되는 건널목 앞의 어린이집에 아들을 데려다 줄 수도 없다. 동네 마트도 혼자서는 가기 힘들다. 남들은 그저 평범하게 하는 일상을 그녀는 왜 못하는 걸까? 누가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 감기처럼 증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속은 급작스런 죽음을 넘나드는 것같이 절박하다.

낙담한 동민이 엄마가 진료실 의자에 초조하게 앉아 있다. 곧이어 마음챙김 명상상태에서 그녀를 위한 가이드가 시작되었다.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를 떠올리게 했고 그 곳에서 따뜻함을 발견하고, 그 느낌을 ‘행복’이라 명명한 상태에서 안전하게 가슴 한가운데 저장하는 과정까지 안내되었다.

조용한 아침 오늘 동민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려고 합니다. 옷입히는 것부터 시작할까요?

 

“조용한 아침 오늘 동민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줄려고 합니다. 옷입히는 것부터 시작할까요?”

“네! 바쁜데 아이가 협조해주지 않아요. 옷을 입히고 가방을 챙기고... 조급해지고 긴장이 되지만 잘 달래서 현관 문을 나왔어요. 복도 끝을 왔다 갔다하는 동민이를 겨우 붙잡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어요.”

“네! 이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옵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니 답답한 가슴이 확 트이는 느낌이에요.”

“네! 좁은 공간에 있다가 내리니 가슴이 확 트이는 느낌이 드네요! 이제 동민이 어린이집을 향해 걸어갑니다. 어디쯤 되나요?”

“옆길 아파트를 다시 돌고 들어가니 유치원이 보여요.”

“네! 유치원 입구까지 걸어갑니다.”

“동민이가 선생님에게 뛰어가요.”

“네! 잘 인계한 후 돌아옵니다.”

“주차장 앞은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려요.”

“네! 그렇군요. 가슴 한가운데 저장된 '행복' 이라고 명명한 것을 떠올리고 편안하고 안전한 느낌을 불러옵니다.”

“아! 갈만한 길이였어요!”

“용기를 내어 또 다른 길을 가고 싶은 곳이 있을까요? 거기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선생님 손이요! 선생님이 뒤에서 계속 따라오는 것을 느꼈어요. 이번에는 옆에서 손을 잡아주면,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요. 한번 걸어가 볼까요? 어떤가요?”

“긴장은 되는데, 갈만해요.”

“네! 지금은 어디죠?”

“코너를 지났어요. 그리고 옆길 지나 저희 아파트 동으로 왔어요.”

“기분은요?”

“괜찮아요.”

“집 현관문을 엽니다. 자 안도의 한숨이 쉬어지네요?”

(끄덕 끄덕)

“오늘 동민이 어린이집에 다녀온 걸 축하합니다.”

“다녀온 후 어떤 느낌이 드나요?”

“생각보다 별것 아니구나 싶어요. 편안해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위 내용은 노출명상(Exposure Mindfulness)의 한 사례이다. 노출명상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챙김 명상에 기반해서 노출치료를 하는 것을 말한다. 노출치료(exposure therapy)는 행동치료 중의 하나로, 어떤 트라우마(trauma)나 패닉(panic)을 경험하는 환자들에게 스스로 공포 환경에 오래 머무르게 하면서 공포 유발자극에 둔감하게 만드는 치료법이다. 불안자극에서 탈피하는 행동치료로 1958년 Joseph Wolpe에 의해 제안된 체계적 탈감작법(systematic disensitization)도 있다. 근육이완과 같은 불안과 상반되는 행동을 하면서 불안유발 수준이 낮은 사건에서 점차 높은 사건으로 점진적(체계적)으로 노출됨으로써 불안유발 상황에 대해 둔감해지게 하는 것이다.

한의학에서 이런 노출치료와 체계적 탈감작법과 유사한 한의학 정신치료법이 경자평지요법(驚者平之療法)이다. 금대 장자화(張子和) 선생님이 1228년에 출판된 ≪유문사친(儒門事親)≫에서 경자평지에 대한 의안을 제시하였고, 역대 의가들에 의해 구체적인 기법들이 소개되었다. 경자평지(驚者平之)란 ‘놀라 흐트러진 기운을 평안하게 다독여 줘서 치료한다’는 것인데, 여기서 ‘평(平)’이란 ‘상(常)’이라 하여 ‘일상화’, ‘평정심’를 의미한다. ‘평상시에 익숙한 걸로 보면 그렇게 놀랄 것이 없다(平常見之必無驚)’는 것이고, 익숙해지면 편해진다는 것이다.

노출치료의 목적은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다. 노출이 안되면 계속 회피하면서 살아야한다. 하지만 무턱대고 노출을 하면 안된다. 노출은 리트라우마(Re-trauma)를 경험하는 것이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사건을 또 경험하는 것이다. 상처는 아물지 않았는데, 붕대를 풀어버리고 외부접촉을 시도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노출치료 중 도중에 그만두는 사례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게 트라우마나 패닉을 경험한 환자들에게서 중요한 경자평지요법(驚者平之療法) 요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철저하게 안전기반을 전제로 실시되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마음챙김 명상을 기반으로 하는 노출치료 즉, 노출명상(Exposure Mindfulness)이다. 트라우마나 패닉상황이 되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안전기반을 구축하고 실시한다. 동민이 엄마의 사례처럼,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 ‘행복‘이라고 명명된 거실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나만의 안전처이다. 마치 정기(正氣)를 복돋아서 사기(邪氣)를 몰아내는 부정거사(扶正去邪)의 한의학 원리를 심리치료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두 번째는 마음챙김 명상상태에서의 체험이 중요하다. 각성상태에서의 인지수준이 아니라 의식의 최저층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의식의 가장 밑바닥에 머물러있을 때 비로소 내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객관적으로 볼 수가 있다. 긴장, 스트레스 상태를 이완시켜주는 다른 이완요법들과는 달리 마음챙김 명상은 이완뿐만 아니라 자각, 통찰이 이뤄진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자각, 통찰은 알아차림이라는 명상상태에서 지금 이 순간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의식상태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런 명상상태에서의 경험은 감각적으로 체득되기 때문에 저각성된 감각은 깨우고, 과각성된 감각은 안정시켜 어떠한 외부자극에도 일상화시켜 자기조절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렇게 안전한 마음챙김 명상상태에서 경험되어지는 트라우마 혹은 패닉의 재경험은 경자평지의 현대적 임상으로 실질적인 치료적 의미를 가질 뿐 아니라 일상에서 일어나는 자극을 익숙하게 만들어 평정심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비행기, 지하철을 못타는 공황장애 환자나, 치과치료를 못 받는 등의 특정 공포증을 치료하고, 극심한 트라우마로 인한 사고, 사건 기억에 대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환자에게도 안전한 치료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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