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원 칼럼] 몸맘하나 멘탈클리닉(Mommamhana Mental Clinic) <11> 존재너머 관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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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원 칼럼] 몸맘하나 멘탈클리닉(Mommamhana Mental Clinic) <11> 존재너머 관계로
  • 승인 2017.02.1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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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원

강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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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어떻게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허함과 팽만함이, 그리고 소멸과 풍요함이 부담없이 서로 오묘하게 어우러져 조화의 절정에 이룰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산골 마을에 내리는 눈만이 가지는 불가사의한 요술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완벽한 조율에 힘입어 어느 것이 소멸이며 어느 것이 풍요인지도 판별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었다.’

김주영의 장편소설 『홍어』에서 주인공 ‘나’는 시야에 펼쳐진 눈의 모습을 이처럼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하늘과 땅을, 빈 들녘과 흩날리는 눈송이를, 고요함과 충일함을, 적요와 소망을 잇대게 하는 관계의 서사시다. 부재중인 아버지를 기다리는 ‘나’는 얼어붙은 방천둑 길을 내달리며 비로소 숨을 쉬는 법을 점차 배워간다.

 

자연과 사람은 생명의 관계이다.

사람과 사람은 무엇이라 해야 할까?

고인이 되신 신영복 선생이 수인으로 지내는 기간 동안 그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15척의 옥 담도, 면벽의 상태 그것도 아니라했다. 외견상은 그것이 한 개인과 사회를 단절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관계 내부에 형성되어있는, 각 사람의 가슴속에 있는 벽이었다고 술회한다. 사회가 자신에게 불신과 경멸가운데 언도된 형랑, 죄의 종목을 스스로조차 자신을 가치 없다 여기는 그것이 최소한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여지를 없애버리고 벽을 더 견고히 한다고. 사회로부터의 냉대나 불신이 인간 자체의 존엄과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자신에게 벽을 만든 사람, 자신과 이야기를 단절한 사람들에게 무엇으로 벽을 허물게 할 것인가.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함께 비를 맞지 않는 위로는 따뜻하지 않습니다.

위로는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선생의 ‘함께 맞는 비’에서 관계의 핵심을 읽게 된다. 그 힘은 입장의 동일함에서 빛을 발휘한다. 머리보다 말보다 행동보다 앞서는 가르침이다. 선생을 구원한 것은 바로 옆의 사람이었다. 자신의 벽을 허물고 함께 있던 동료들 사이에서 수용된 것, 그 시간은 무려 4~5년이 걸렸다. 가장 낮은 곳, 사회의 약자들과 함께 한 20년의 영어(囹圄)인의 생활을 선생은 ‘인생대학’이라 했다.

 

좋은 치료는 관계에서 시작 된다.

환자들은 연약한 모습으로 치료자 앞에 서 있다. 환자와 치료자의 관계는 치유의 시작과 마침이 된다.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환자들일 수록 더욱 그렇다.

관계의 중요성을 심리학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 않다. 애착관계의 과정이 증명하는 중요한 매카니즘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관계의 어려움에서 파행된 사건에 둘러싸여 있고 개인의 상처를 넘어 사회적 분열과 공포로 사회적 공동체를 적대적 대상으로 규정하고 좌와 우, 내편과 상대편으로 구분하는 단절의 관계로 치닫게 됨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사회는 병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 관계의 단절은 상처이고 소멸이기 때문이다.

어제는 상처투성이며 오늘은 터널같이 답답하고 내일 조차 두려움에 갇혀 있는 사람들. 우리 중의 누군가. 그들과 마주할 치료자에게 관계의 희망을 굳게 믿고 누군가의 짐을 나누어 함께 길을 걷고 있는 당신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어 아래의 시로 대신하려 한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앞서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말자.

뒤에 남아 먼저가란 말일랑 하지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 하고가자.

투쟁 속에 동지 모아 손을 맞잡고 가자.

열이면 열 천이면 천 생사를 같이 하자.

둘이라도 떨어져서 가지말자.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주자.

고개 너머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가자.

서산낙일 해떨어진다. 어서가자 이 길을

해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 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 주고 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 가야할 길 시련의 길 하얀길 가로질러 들판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해방의 길 통일의 길 가시밭길 하얀길

가다못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김남주 詩 ‘함께가자 우리 이 길을’ 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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