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 혼자가 편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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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 혼자가 편하신가요?
  • 승인 2017.02.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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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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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혼밥, 혼술 이라는 말들이 유행이다.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먹는다’ 는 말의 줄임말인데 이런 트렌드를 보며 우리나라도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 뭘 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로 여겨졌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대부분의 아시아권 나라에서는 혼자 밥을 먹고 여행을 가는 것이 ‘친구가 없다’ ‘사회성이 부족하다’ 처럼 보일까봐 혼자 뭔가를 하는 문화가 보편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외국에 여행을 가보면 혼자 여행 온 사람들이 참 많다. 그들에게 혼자 무엇을 한다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선진국에 대한 기준은 ‘경제적 풍요’ 가아니라 ‘다양성에 대한 관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선진국이 되어갈수록 직업이 다양해지면서 사회 구성원들의 의견과 목소리도 다양해진다. 다양성은 곧 충돌을 불러온다. 이런 충돌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목소리와 모습에 대한 수용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제 우리나라도 혼자 무엇을 한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수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분위기가 많이 변한 것은 분명하다.

‘혼자 여행하는 것이 좋다’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다’ 는 것은 대인(對人)관계가 서툰 사람일수도 있지만 반대로 자신의 내면과 아주 친밀한 사람으로 볼 수도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자신의 내면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내면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느끼는 순간이다.

나와 나의 내면 사이에 밥이 함께 할 수도 있고 음악, 미술, 공연 등이 함께 할 수도 있다. 이런 문화를 혼자 향유한다는 건 외로운 일이 아니다. 나와 나의 내면 사이에 있는 공간을 내가 좋아하는 문화적 요소들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나와 나의 내면이 이렇게 다양한 것들로 채워지고 교감을 나누는 동안 우리는 더 깊은 통찰을 할 수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탄생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하는 것과 혼자를 즐기는 것은 다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많은 공간을 만들어 둔 사람이고 그 공간을 다양한 <자기만의 취향>으로 채우는 사람이다. 이 공간이 풍성하고 나와 나의 내면이 서로 친한 사람이야 말로 타인과의 관계도 훨씬 건강할 수 있다. 이런 인식이 사회 전반에 공유되고 있기 때문에 ‘혼밥’ ‘혼술’ ‘혼자 떠나는 여행’ 이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자리 잡아 가는 듯하다.

자신의 내면 공간을 혼자 채우지 못하게 되면 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SNS에 중독되는 것도 자기만의 공간이 주는 공허함을 견디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게임이나 스마트 폰, 담배나 술도 시간과 세대의 차이만 있을 뿐 황폐화된 자기 내면의 공간을 임시방편으로 매우는 수단일 뿐이다.

나와 내면 속의 나 사이에 있는 그 공간을 훌륭하게 채우는 사람들이 늘 혼자 있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 자리 잡고 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사람들과 나누며 새로운 자극과 영감으로 내면의 공간을 채워나간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과 행복감을 주기도 한다. 기꺼이 혼자 있을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다른 사람에게 가장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7~80년대에 우리나라는 너무 빨리 성장해왔다. 오랜 시간 외향적인 사람,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만 높게 평가받는 경향이 있었다. 자연히 내성적인 사람은 폄하되었다. 그래서 성장기 대한민국을 살아온 지금 중장년층 세대 분들은 자신의 취향을 알고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충분히 성찰해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 시간에 돈을 벌어야 했고 영업에 득이 되는 사람을 만나야 했다.

밖으로 밖으로만 지향한 결과 나이가 들고, 은퇴를 겪으며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나이는 들었지만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 에 대한 답을 모른채 나이만 들게 된 셈이다. 참 안타까운 시대를 살아오신 분들이다. 내면의 공간을 채우지 못했으니 공허하고 허망하다. 퇴직 후에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일을 찾아서 하는 유럽의 은퇴자들과 비교해보면 안타까운 현실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부족한 노인 사회복지제도와 늙어서도 자식을 책임지는 우리나라만의 특수성도 한 몫 하긴 했지만)

이렇게 자기의 내면과 마주보며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사회는 ‘내성적’인 사람으로 분류하곤 했다. 그리고 역사는 그들을 폄하하곤 했다. 이런 내성적인 사람들의 힘이 이제 빛을 볼 시대가 다가온 것 같다. 혼자 있는 시간의 가치가 부각된다는 것은 내성적인 사람들의 능력과 리더십이 빛을 발휘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동안의 시대가 외향적이고 인간관계가 활발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시대였다면 앞으로는 내성적인 사람들의 자기 성찰력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시대가 될 것이다.

혼자가 편한 당신! 아무 걱정하지 말고 계속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겨라. 깊이 숙성된 된장 처럼 성숙한 내면의 힘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와 곧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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