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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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구나
  • 승인 2017.03.23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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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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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때부터 믿고 존경하던 선배님이자 선생님께서 어느 날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영호야, 내가 요새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그 동안 내가 무슨 공부를 했던가? 도통 모르겠다. 정말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구나.”

그땐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나 싶었다. 그런데 요즘 그 뜻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바로 그 순간이 <그릇이 확 커진 순간>이라는 것. 공부를 해서 지식을 그릇에 담는다고 상상 해보자. 지식이 가득 차는 순간까지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되면 더 이상 지식을 담을 수 없을 만큼 가득 찬 순간과 만난다. 그 순간, 인간은 2가지 선택과 마주하게 된다.

그 선택 중 하나를 한의학 공부로 예를 들자면, 바로 그 순간에 ‘못 고칠 병이 없는 듯’ 느껴진다. 굉장한 자신감과 뿌듯한 마음이 가슴에 차오른다. 흔한 병을 고치는 것은 당연하며, 치료율은 최소 80%(이것도 아주 겸손하게 표현한 수치다)이상이 될 듯 느껴진다. 내가 깨달은 바를 다른 한의사들에게 알려주고 싶고, 이런 깨달음에 이르지 못 한 동료들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의학의 참맛은 이런 거지’ 라는 마음이 임상의 순간순간 마다 느껴진다. 강의를 해서 인정받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 싶고, 여러 가지 욕심이 마음에 차오른다. 이때가 바로, 지식을 담는 그릇에 금이 가고 있는 위기의 순간이다.

반대로 앞서 말한 선생님처럼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은 공허함을 느낀다면 지식을 담는 그릇의 크기가 확 커진 경우다. ‘사고의 차원이 달라진 순간’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마치 집 안 거실에서 축구를 하다가 갑자기 국가대표 축구장에 나온 것 같은 느낌일 것이다. 내 안에 담긴 지식과 지혜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릇이 갑자기 커지니까 그 안에 담긴 지식과 지혜가 너무나 초라하고 작아 보이는 것이다. 내가 아는 건 하나도 없는 것 같고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은 너무 많아서 막막하고 두렵기까지 하다.

이렇게 그릇이 확 넓어지면 겸손해진다. 그리고 세상에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더욱 배우고 익히기 위해 애를 쓰게 된다.

앞서 소개한 필자의 선생님은 늘 말씀하셨다. ‘모르겠다. 참 모르겠어. 아무리 공부해도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잘 고칠 수 있을 것 같은 환자였는데 이상하게 잘 안되기도 하고 정말 못 고칠 것 같았는데 아주 빨리 좋아지기도 한다. 공부할수록 모르겠다.’

흔치 않은 경우라고 볼 수도 있지만, 요즘은 더욱 이런 분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나의 지식은 평생 진료한 환자들을 통해 검증되었으니 내가 틀릴 리가 없다.’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본인을 믿고 따르며 배우란다. 때로는 비싼 강의료를 걸고 강좌를 열기도 한다.

개인적인 생각을 밝혀보자면,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지금 내가 ‘확실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언제든 변할 수 있으며 내가 알고 있는 것의 대부분은 선배 의사들의 대가 없는 나눔으로 나의 지식이 된 경우가 많다. 우리 모두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선후배 동료들과 수직 ․ 수평적으로 서로 기대어 공부하고 익히는 길을 걷고 있다. 느슨한 듯 보이지만 촘촘한 형태로 서로서로 영향을 주며 밀접하게 얽혀 있다.

하루에 수 천 명이 오고 가는 종합병원의 의사들도 <치료율>이나 <완치>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흔치는 않다. 하물며 우리 한의사가 개별 한의원에서 볼 수 있는 환자는 아주 작고 작은 일부분 일 것이다. 한의사라면 누구나 한번 쯤 임상 강의를 듣고 난 후 ‘분명히 잘 낫는다고 배웠는데 왜 나는 안 되지?’ 하는 순간을 경험한다. 그 만큼 병이 다양하고 환자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물론 이런 이유로 수준이하의 강의가 나타나고 사라지기도 한다.)

우리가 평생 경험하는 물리적 공간은 참 좁다. 공간이 좁다보면 생각도 좁아지기 마련이다. 특정 질환에 대해 반복적인 치료사례가 누적되면 더 넓은 필드로 뛰쳐나가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느끼고 깨달은 것이 다른 동료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검증 받아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혼자 잘난 의사가 될 수 없다. 우리가 디디며 뿌리내리고 있는 한의계라는 토양 전체가 고루 비옥해야 나도 빛날 수 있다. 한의계에 오랫동안 자리 잡았던 비방(秘方)문화와 ‘내가 하는 공부가 최고(最高)’ 라는 인식이 바뀌어서 옆으로 나누고 위 아래로 소통하는 학문이 되어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가운데가 튼튼해야 그 업계 전체가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빈부격차가 심하고 좌우상하로 나누어지는 격차가 클수록 가운데가 곤궁해진다. 한의계의 가운데, 평범한 한의사의 진료 수준이 높아져야 우리가 다 함께 살 수 있다.

오늘 문득, ‘아무것도 모르겠다’ 하시던 선생님이 그립다. 오늘도 조용한 진료실에서 책을 펼치고 단체 채팅방 속 다른 동료들의 학술토론을 경청하고 계실 듯 하다. 혹은 확 커진 지식의 그릇을 보며 겸손의 고개를 떨구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모르겠다. 아는 게 없는 것 같구나’ 하시던 목소리가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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