惠庵 黃度淵은 黃道淳의 改名 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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惠庵 黃度淵은 黃道淳의 改名 후 이름이다
  • 승인 2017.05.20 06:4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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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춘·서정철·최순화

한기춘·서정철·최순화

mjmedi@mjmedi.com


임상 한의사 3인이 연구한 황도순-황도연

 

Ⅰ. 서론

 惠庵은 한의사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로 〈本草附方便覽〉, 〈醫宗損益〉, 〈醫方活套〉, 〈方藥合編〉 등을 저술하였다. 저자의 이름이 號와 병기되어 있는 책의 경우 저자의 이름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없으나, 위의 저서들은 ‘惠庵’이라는 號만 기록이 되어 있어서 이름이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에서 저자들은 연구를 시작하였다.

 연구결과 惠庵의 이름에 대한 기록들이 책마다 다르게 되어 있어서 한의사들이나 의사학 연구자들에게 심각한 혼란을 야기하는 바 200여 년 전의 惠庵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다시 찾아서 惠庵의 이름에 대해 고증하고자 한다.

◇그림. <爛抄>에 黃道淳이 黃度淵으로 改名한 기록(좌), <議藥同參先生案>의 黃道淳(우)

Ⅱ. 본론

1. ‘黃道淳’과 ‘黃度淵’은 다르다는 주장
 황연규는 2007년 “惠菴 黃度淵선생님과 儒醫 愼村 黃泌秀선생님의 올바른 재조명”의 한의신문 기사와 같은 해 “〈醫方活套〉의 黃度淵선생에 疑問들”의 블로그 기사에서 黃道淳과 黃度淵은 별개의 인물이라고 주장하였다.1,2)

2. 黃道淳과 黃度淵의 별도 기재
 박훈평은 2012년 〈조선의인지〉3)에서 黃道淳과 黃度淵을 별도의 항목으로 기재하여 동일인물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으나 다른 인물로 인식하고 있다.

3. 〈議藥同參先生案〉의 黃道淳에 대한 기록
 〈議藥同參先生案〉4)에 “昌原黃道淳稚性戊辰 長主瓦別盈主紙別設別紙別北部令利仁敦寧都正”이라고 되어있는 바(그림 우), 黃道淳은 敦寧의 都正을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밖에 黃道淳에 관한 글은 〈承政院日記〉, 〈日省錄〉, 〈諫議謄錄〉, 〈疏箚〉, 〈從政年表〉, 〈龍湖閒錄〉 등에 여러 번 언급되어 있다.

4. 〈爛抄〉에 黃道淳이 黃度淵으로 ‘改名’한 기록
 〈爛抄〉5)에는 “癸酉九月初九日, 吏曺啓曰司饔主夫李師在名字改以喆在前令黃道淳名字改以度淵事”(1873년 10월 29일, 吏曺는 司饔主夫인 李師在가 喆在로 개명한 것과 前令인 黃道淳의 이름을 度淵으로 이름을 개명한 일을 啓하였다.)(그림 좌)라고 하여 黃道淳이 黃度淵으로 改名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5. 〈朝鮮總督府圖書目錄(朝鮮版)〉의 黃道淳 기록
 大正二年(1913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朝鮮總督府圖書目錄(朝鮮版)〉6)에는 〈醫宗損益〉 항목에서 “十二卷 七冊 黃道淳著”라고 기록되어 있다.

6. 〈朝鮮圖書解題〉, “黃泌秀는 都正을 지낸 黃道淳의 아들”
 〈朝鮮圖書解題〉7)에는 〈新式儒胥必知〉를 소개하면서 “黃泌秀號は 惠菴, 昌原の人 都正 道淳の子なり…”라고 하여 黃泌秀는 都正을 지낸 黃道淳의 아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7. 〈古鮮冊譜〉, “醫方活套와 醫宗損益의 저자는 黃道淳”
 〈古鮮冊譜〉8) 제1권 14쪽에 〈醫宗損益〉의 저자는 黃道淳, 15쪽에 〈醫方活套〉의 저자는 黃道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8. Bowman, “〈方藥合編〉의 저자는 황도슌    黃道淳”
 일제강점기 세브란스 연합의학교 의사였던 Newton H. Bowman은 〈方藥合編〉의 저자가 黃道淳이라고 밝히고 있다(Therefore a new book called the Pang-yak-hap-pyun (방약합편 方藥合編) was written by one Whang-do-soon(황도슌 黃道淳) a Korean doctor…)9).

9. 필사본 의서 〈醫類彙〉의 “惠菴 黃道淳 方藥合編”
 안상우는 2016년 민족의학신문에 실린 ‘고의서산책 729 醫類彙’10)에서 “본문에 앞서 ‘陽平君許浚 東醫寶鑑, 李南豊 醫學入門, 康命吉 濟衆新編, 惠菴 黃道淳(淵의 오자로 보임) 方藥合編’이라고 적은 글귀가 적혀 있어”라고 서술하며 黃道淳을 黃道淵의 오자로 보았다. 그러나 〈醫類彙〉가 비록 필사본 의서이긴 하나 당시 사람들에게 〈方藥合編〉의 저자는 “惠菴 黃道淳”으로 알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惠菴 또는 惠庵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밝히고자 한다).

10. 〈韓國古書綜合目錄〉의 “黃道淳“ 기록
 국회도서관의 〈韓國古書綜合目錄〉11)에서는 〈醫宗損益及附錄〉 항목에서 “黃道淳 編. 寫本 7冊”이라고 하였다.

11. 〈韓國學大百科事典〉의 “黃度純“ 기록
  韓國學大百科事典編纂委員會의 〈韓國學大百科事典〉 제2권12) 〈醫宗損益〉 항목에는 “혜암(惠庵) 황도순(黃度純)이 지은 의약서”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서 黃度純은 黃道淳과 같은 발음으로 인한 誤字로 보인다.

Ⅲ. 고찰

 의사학 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에서 선입견은 학자가 빠지지 않아야 할 함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선입견 없이 〈本草附方便覽〉, 〈醫宗損益〉, 〈醫方活套〉, 〈方藥合編〉을 들여다보면 ‘惠庵’이란 기록만 있을 뿐 그 어디에도 黃度淵 혹은 黃道淳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책의 저술자가 위 책들을 펴내면서 ‘불려지기 원했던’ 著者는 ‘惠庵’이며 결코 黃度淵 또는 黃道淳이 아니었던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저자들은 〈爛抄〉에서 黃道淳이 黃度淵으로 改名한 사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즉, 〈爛抄〉의 기록을 통하여 영원히 미궁에 빠질 뻔한 黃道淳과 黃度淵 관계의 결정적 증거를 찾게 되었다.
 이상의 史料들을 종합해 보건대 후대 한의사나 의사학자는 改名 전 惠庵은 黃道淳으로, 改名 후 惠庵은 黃度淵으로 기록하거나 불러야 정확하다고 할 것이다. 즉 惠庵의 저서에 대해 이름이 아니라 號로 저작자를 밝혀야 합당하며 또한 굳이 이름을 적는다면 〈本草附方便覽〉, 〈醫宗損益〉, 〈醫方活套〉의 저자는 黃道淳으로, 〈方藥合編〉의 저자는 黃度淵으로 표기해야 옳다고 할 것이다.
 
한편 惠庵을 改名시기와 관계없이 黃度淵이라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일본 사학자 三木榮의  <朝鮮醫籍考>13) 부터인 것으로 추정된다.13) 부터인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三木榮은 黃道淳의 改名 여부를 인지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후 후대 학자들이 철저한 고증이 없이 三木榮의 견해를 그대로 따라 쓰다 보니 惠庵의 이름은 黃度淵이라고 널리 퍼져 버린 것이며 심지어 黃道淳은 黃度淵과 별개의 인물이라고까지 잘못된 주장을 하니 새삼 考證의 중요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는 바이다.

Ⅳ. 결론

 이상의 史料들을 보건대 改名 전 惠庵은 黃道淳이고, 改名 후 惠庵은 黃度淵으로 두 인물은 동일인물인 것이다. 요컨대 御醫로서 가장 활발한 삶을 살고 의학적으로 중요한 〈醫宗損益〉을 저술한 때는 黃道淳이라는 이름으로 살았을 惠庵이며, 저자나 이름에 대한 지금까지 잘못된 기록들을 史料를 근거로 바로잡으니 차후 저작자의 이름에 대한 유사한 연구에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한기춘·서정철·최순화(mc맥한의원·우리경희한의원·보광한의원)

〈참고문헌〉

1. 황연규, <醫方活套>의 黃度淵선생에 疑問들, 다음 블로그 2007.12.12. 게시, http://m.blog. daum.net/12409/14997430).
2. 황연규, 惠菴 黃度淵선생님과 儒醫 愼村 黃泌秀선생님의 올바른 재조명, 한의신문, 2007.2.6. 기사등록.
3. 박훈평, 조선의인지, 한국학술정보, 2012: p.571.
4. 李佑成 編, 瘡疹集 外一種, 議藥同參先生案. 아세아문화사(저자미상, 중국 요녕성도서관 소장 영인본), 1997: p.532.
5. 爛抄, 第八冊,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6. 한국학문헌연구소 편, 朝鮮總督府古圖書目錄(附補遺篇), 아세아문화사(1921년판 영인본), 1972, p.176(원본의 페이지).
7. 朝鮮總督府, 朝鮮圖書解題, 朝鮮通信社, 1932: p.349.
8. 前間恭作, 古鮮冊譜, 도서출판 민족문화, 2011(1957년 일본 東洋文庫 영인본): pp.14-15.
9. N. H. Bowman, The History of Korean Medicine, Transactions of the Korea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1915; Volume VI(part I): pp.1-34.
10. 안상우, 고의서산책 729 醫類彙, 민족의학신문, 2016.5.19. 게재.
11. 국회도서관사서국참고서지과 편, 韓國古書綜合目錄, 국회도서관, 1968, p.1216.
12. 한국학대백과사전편찬위원회, 韓國學大百科事典 2卷, 을유문화사, 1972, p.237.
13. 三木榮, 朝鮮醫籍考, 自家出版, 1935:5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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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연규 2017-05-28 16:04:37
모순점이 많은 부분에 대한 정확한 고증이 없는 부분은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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