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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기억은 믿지 마라!
영화 읽기 | 살인자의 기억법
2017년 10월 27일 () 07:00:33 황보성진 mjmedi@mjmedi.com
   
감독 : 원신연
출연 : 설경구, 김남길, 김설현, 오달수

한 때 수첩이 필요 없을 정도로 기억력 하나만은 남다르게 뛰어난 필자였지만 요즘엔 메모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기억력의 한계를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다. 특히 스마트 시대로 들어서면서 전화번호조차 외울 필요가 없고, 언제나 검색만 하면 뭐든지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되다보니 우리의 뇌 활용력은 점차 떨어지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건망증이 생활화 되면서 늘 주변을 몇 번씩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운 버릇이 새로 생기기도 했다.   

예전에는 연쇄살인범이었지만 지금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병수(설경구)는 우연히 접촉사고로 만나게 된 남자 태주(김남길)에게서 자신과 같은 눈빛을 발견하고 그 역시 살인자임을 직감한다. 병수는 경찰에 그를 연쇄살인범으로 신고하지만 태주가 그 경찰이었고, 아무도 병수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태주는 은희 곁을 맴돌며 계속 병수의 주변을 떠나지 않고, 병수는 혼자 태주를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록하고 쫓지만 기억은 자꾸 끊기고, 오히려 살인 습관들이 되살아나며 병수는 망상과 실제 사이에서 혼란스러워진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는 <살인자의 기억법>은 김영하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세븐 데이즈>와 <용의자> 등을 연출했던 원신연 감독의 작품으로 오랜만에 범죄 스릴러 영화의 참맛을 느끼게 한다. 또한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기술된 소설과 달리 민태주를 통한 갈등 요소로 긴장감을 높이고 있고, 어릴 적 부모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살인마가 된 두 주인공의 이야기 속에서 김병수와 딸과의 관계를 부각시키며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원작 소설과의 차별성을 두면서 영화만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는 병수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흡사 설경구라는 배우를 만천하에 알렸던 <박하사탕>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살인자의 기억법>은 설경구에 의한 설경구를 위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연기력에 대해서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영화를 위해서라면 살을 쪘다 뺐다하는 독보적인 배우인 설경구는 이번에도 특수분장 없이 노인연기를 하기 위해 몸무게 감량을 통해 완벽한 비주얼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알츠하이머로 인해 현실과 망상을 오가며 겪어야 하는 혼돈을 순간적인 눈빛 변화만으로 완벽히 표현해내는 장면은 관객들의 뇌리에 오랫동안 남을만 하다. 

또 다른 연쇄살인마로 등장한 김남길 역시 섬뜩한 연기로 인해 관객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등 두 주인공의 제대로 된 장르 연기를 한 번에 볼 수 있다. 그러나 열린 결말로 끝이 나면서 인터넷 등에서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는데 가장 좋은 결론은 감독의 의도대로 관객들 각자 몫으로 영화에 몰입해서 본다면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와 같이 인간의 기억에 대해 색다르게 접근한 작품인 <살인자의 기억법>을 소설과 함께 본다면 문학과 영화의 매체적 특성을 비교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황보성진 /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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