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서주희의 도서비평] 아픔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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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서주희의 도서비평] 아픔에 관하여
  • 승인 2017.12.15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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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희

서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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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 아픈 몸을 살다/아픔이 길이 되려면(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아프다...

아프다는 건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실제로 통증으로 느껴지는 신체적인 아픔일 수도 있고, 슬픔, 우울 등으로 마음이 아픈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아픈 사람을 고치는 사람이다. 즉, 우리의 존재의 이유는 아픈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매일 우리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은 아픈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언젠간 아프게 될 것이고, 그러므로 아프다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헤아려 볼 필요는 충분하다.

아픔에 관한 두개의 책이다. 사실 지면을 빌어 한권씩 세세하게 설명을 해도 모라랄 만큼 둘 다 무겁고 진중하게 끌고 가지만, 아픔이란 주제를 가지고 두 번이나 서평을 쓴다는 것이 부담이 되었다면, 이 역시 아픔은 묵인하고 외면하고자 하는 인간의 무의식적 바람인 가보다.

(왼쪽)아서 프랭크 著 봄날의 책 刊 / (오른쪽)김승섭 著 동아시아 刊

하나는 의료사회학 교수인 저자가 실제로 심장마비와 암을 경험하고, 질병 당사자의 시선으로 질병의 서사와 질병을 적극적으로 살아낸 개인적 이야기를 아주 솔직하게 풀어낸 책이다.

또 하나는 아픔에 관한 사회적 시선이다. 사회역학자의 시선으로 차별이 실제로 어떻게 아픔을 초래하는지, 사회적인 시선으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세월호, 삼성반도체 직업병 등등에서의 연구와 통계를 들어 구체적으로 아파한다. 혼자서 아파하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아파한다.

어느 날 졸지에 아픈 몸이 되어버린 적이 있다. 실제로 아픈 건 아닌데 병리학적인 진단으로 졸지에 환자 역할을 맡게 되어 버렸다. 수술을 받게 되었고, 수술 이후에 달라질 몸과 삶에 대하여, 지금의 몸 상태가 아닐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과 상실감으로 진단 받은 이후 한동안 우울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되어버린 적이 있다는 말은 현재는 괜찮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한번 환자역할을 겪은 이후로, 내게는 닥치지 않았을 것 같던 일이 언제라도 나에게 닥칠 수 있고, 따라서, 그 어떤 상황이든, 지금 현재의 나의 상황과 상태에 만족하며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 경험이라는 의미이다. 그때 만난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를 통해, 제대로 질병의 의미를 생각하고 삶의 태도 또한 다소간 변하게 되었다.

아서에 따르면 질병은 기회이다. 이 기회를 붙잡으려면 질병과 함께 조금 더 머물러야 하며 질병을 통과하면서 배운 것을 나눠야 한다. 심각한 질병은 우리를 삶의 경계로 데려온다. 경계에서 삶을 조망하면서 우리는 삶의 가치를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왜 지금껏 살아온 것처럼 살아왔는가, 미래가 있을 수 있다면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질병이 제공하는 기회를 붙잡으려면 질병을 적극적으로 살아내야 한다. 아프다는 것은 그저 다른 방식의 삶이고, 질병을 전부 살아냈을 즈음에 우리는 다르게 살게 된다. 기회를 붙잡으려면 질병을 완전히 경험한 다음 떠나보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가야 하고, 슬픈 일은 제대로 슬퍼해야 한다. 충분히 애도한 후에야 사람은 상실을 통과해 다른 편에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충분히 슬퍼하고, 그리워하고, 분노하고, 우울해하고... 그 어떤 감정이든 충분히 겪어내야 온전히 한 스텝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질병이란 드라마에 있어서 용납되지 않는 감정이란 없을 테니.

또한 우리는 의사-환자와의 관계에서 질병의 의미를 조망할 수밖에 없다. 환자(a patient)가 되려면 말 그대로 인내해야(patient) 한다. 사실 질병을 겪는 사람들의 삶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의사이지만, 그저 수동적으로 의사에게 몸을 맡기기만 해서는 온전한 치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치료자의 경험을 통해서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의사와 환자 모두 몸의 경이를 알고 존중해야 하고, 아픔을 이야기 하는 것의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기회는, 질병은, 그저 생길 뿐이지만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방향으로 우리가 질병 경험을 엮어낼 수 있음을 깨닫는데 있다. 이를 저자는 회복의 의미이자 질병이 주는 기회를 덤으로 얻은 삶이라 표현한다. 일상적인 것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그저 강물에 비친 햇빛을 바라보는 것이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라는 표지의 한 줄의 문장이 마음 한편에 묻어두고 모른 척 하고 살던 뭔가의 책임감을 일깨우는 듯한 기분이었다.

최근 낙태법 위헌을 두고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는데, 아마도 이 책을 읽어본다면, 그저 지켜보고만 있을 순 없게 될 것이다. 이 책은 혐오와 차별, 고용불안, 재난 등 사회적인 상처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연구한 사례들이 묶여 있다. 이 사회의 약자들이 더 아픈 것은 그들의 탓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회역학자인 저자는 인지하지 못하거나 말하지 못한 차별 경험들은 우리의 몸에 여지없이 기억되고, 삶을 파괴한다고 한다. 차별경험, 학교 폭력 등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차별 자체를 인지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아,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지는 것처럼, 몸은 정직하기 때문에...

날카롭고 정의로운 인상을 지닌 저자는 한국사회에서 그토록 재난을 많이 겪었지만 성숙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한 것 때문이라 하며, 결국 아픔이 길이 되려면 (책의 제목처럼)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하고 기억하며 그걸 현장에서 활용하고 정책으로 수용해내느냐는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최근 중등도 우울증으로 입원을 한 북한이탈주민이 있었다. 탈북 후 중국에서 신분을 숨긴 채 살다가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5살 딸을 떠나보내야 했던 그 죄책감으로 인해, 본인은 한국에 와서 자유를 찾았어도 마음은 영하 40도의 얼어붙은 땅에 있는 것처럼, 언제나 죽을 생각으로 면도칼을 품고 다니던 그런 환자였다. 그런 사연이 있는 환자에게 나는 차마, 섣부른 위로의 말은 할 수 없었다.

혼자 아파하지 말라고, 당신의 탓이 아니라고, 이건 시대의 아픔이라고. 이 시대 한반도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다 같이 짊어지고 가야할 고통이고 아픔이라고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아픔은 죄도 아니고, 고통도 아니고, 낙인도 아니다.

아픔은 아픔일 뿐이다. 아픔이 있는 곳은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목소리와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마음으로 아픔에게 귀기울여보자.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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