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證脈方藥合編> 板本의 연구-총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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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證脈方藥合編> 板本의 연구-총론편
  • 승인 2017.12.16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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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춘, 서정철, 최순화

한기춘, 서정철, 최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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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한의사 3인이 연구한 황도순-황도연 ⑧-1

Ⅰ. 서론

필자는 20여 년간 〈方藥合編〉 線裝本 수십 종을 수집하여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와 〈重訂方藥合編〉의 판본의 특성과 출판시기를 앞서 기고문으로 발표한 바 있다. 이어서 세 번째 線裝本인 〈證脈方藥合編〉을 연구한 결과를 총론편, 冶洞新刊편, 里洞新刊편, 院山新刊편으로 나누어 아래와 같이 밝히고자 한다. 〈證脈方藥合編〉을 구분하여 보면 4종의 異本이 존재하고, 冶洞新刊, 美洞新刊, 里洞新刊, 院山新刊의 刊記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冶洞新刊의 刊記가 혼재되어 2개의 刊記가 한꺼번에 존재하는 특이한 板本이 있는데 이는 추후에 冶洞新刊편에서 보충 설명을 하겠다. 한편 〈證脈方藥合編〉 美洞新刊은 〈重訂方藥合編〉과 표제지만 다르고, 나머지 부분은 〈重訂方藥合編〉과 완전히 동일하여 여기서는 특별히 記述하지 않는다.

 

Ⅱ. 본론

1. 山草 三十四種의 誤刻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 目錄에는 “山草 四十三種”으로 되어있지만, 藥性歌에는 目錄과 달리 “山草 三十四種”으로 誤刻되었다. 〈重訂方藥合編〉에서 이 부분을 이미 訂正한 적이 있으나 〈證脈方藥合編〉 冶洞新刊, 院山新刊, 里洞新刊 모두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을 따라 山草 三十四種으로 誤刻되어 있다(그림 1).

2. 目錄에서 人參羌活湯의 誤刻

또 다른 예로는 中統 人參羌活湯의 오류가 그러하다. 目錄을 각기 살펴보면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초판)〉에서는 中統 116으로,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재판)〉에서는 中統 119로 誤刻된 것을 〈重訂方藥合編〉는 中統 169로 訂正을 했으나, 〈證脈方藥合編〉 冶洞新刊, 里洞新刊, 院山新刊에서는 모두 中統 119로 誤刻되었다(그림 2).

3. 石隱補遺方 火門 黃連湯의 “舌硬”의 훼손과 “舌梗”의 판각

〈證脈方藥合編〉은 石隱補遺方 火門의 黃連湯에서 〈重訂方藥合編〉과 달리 “舌硬”이 “舌梗”으로 誤刻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은 〈證脈方藥合編〉 冶洞新刊, 里洞新刊, 院山新刊 뿐만 아니라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의 2가지 異本(후기판본)들에서도 발견되어 硬은 사라지고 梗으로 바뀌어 있다. 심지어 〈證脈方藥合編〉 院山新刊에서는 “○水煎食遠服” 조차 누락되어 있다(그림 3).

4. 新增證脈方藥合編 酉齋의 추가

〈證脈方藥合編〉은 〈重訂方藥合編〉에 비하여 新增證脈方藥合編 酉齋가 추가된 판본으로 脈法과 症治가 삽입된 것이다. 염태환은 1975년 행림서원에서 발행된 최초의 〈方藥合編〉 한글번역본인 〈增註國譯方藥合編〉에서 新增證脈方藥合編 酉齋의 서문을 아래와 같이 번역하였다.

“方藥書는 特히 先生께서 別途로 깨치신 바의 一編으로 重要한 事項은 모두 記載가 되어있어 可謂 醫門의 基本書라 할 만하다. 證을 辨하고 脈을 審하는 것은 따로 冊이 있으나 이것이 실려있지 않아서 讀者들이 한스럽게 여기던바 이제 重刊補訂함에 있어서 그 全書中에서 證脈要訣을 取하여 실리는 바이니 輔弼하는 弟子로서 遺文을 收拾하는 일에 不足함을 느낄 따름이다. 그러니 本書의 重要함을 認識하고 辱됨은 잊어버리고 다만 알 것을 알아주면 감사할 뿐이다. 丁亥(一八八七)年 玄月에 門下 渼隱生이 謹署하노라.”(方藥書特因先生別開手眼一編而綱維畢擧固可謂醫門之準繩辨證審脈別有成書此不及載讀者恨焉今因重訂取全書中證脈要訣而羽翼之固不足爲收拾遺文之一事也蓋亦識其毋忘辱知之最厚爾 丁亥玄月受業渼隱生謹識)

 

5. 〈方藥合編〉을 成冊한 者

대다수의 〈方藥合編〉 관련 서적이나 기록에서 黃泌秀를 〈方藥合編〉의 편찬자로 적고 있다. 필자가 연구한 결과 黃泌秀는 ‘方藥合編源因’에서 〈方藥合編〉의 편집을 命받았다고 적고 있으나 〈方藥合編源因〉 외 어디에도 黃泌秀의 成冊에 관여한 기록이나 그와 유사한 흔적은 찾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黃泌秀의 다른 편간서의 跋文과 내용 그리고 〈方藥合編〉에서의 渼隱과 酉齊의 印文으로 미루어 보아 〈方藥合編〉의 실제적인 편찬의 주체는 黃泌秀가 아니라 〈重訂方藥合編〉은 渼隱이, 〈證脈方藥合編〉은 渼隱 또는 酉齊가 成冊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전의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는 누가 成冊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으나 〈重訂方藥合編〉과 〈證脈方藥合編〉의 내용과 편제의 구성을 살펴보면 이 또한 惠庵의 제자들 중 渼隱 또는 酉齊일 것으로 생각된다.

 

Ⅲ. 고찰

보편적으로 개정판이나 증보판을 만들 때는 더욱 정성을 기울이고 더 좋은 판본을 만들려는 노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에서 발견된 여러 가지 오류를 〈證脈方藥合編〉에서 訂正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의 대표적인 오류인 山草 三十四種과 人參羌活湯은 계속 〈證脈方藥合編〉 冶洞新刊, 里洞新刊, 院山新刊에서 訂正되지 못한 채 誤刻이 이어지고 있어 일반적인 기대와 달리 안타까운 점으로 남는다.

이외에도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에서 여러 곳의 誤刻이 발견되는데 〈重訂方藥合編〉 또는 〈證脈方藥合編〉에서 訂正을 했으며, 이러한 訂正 과정을 면밀히 살펴봄으로써 판본의 순서를 정할 수 있었다. 이는 각론에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石隱補遺方의 延齡固本丹 순서를 보면 〈證脈方藥合編〉 院山新刊은 冶洞新刊과 동일하고, 〈證脈方藥合編〉 里洞新刊은 美洞新刊과 동일하다는 특징을 나타냄으로서 어떤 일관성 없이 혼란스러운 발행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더욱 개탄스러운 점은 〈重訂方藥合編〉 美洞新刊의 후기판본에서 이루어진 石隱補遺方 火門 黃連湯의 舌硬의 훼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 〈證脈方藥合編〉 冶洞新刊에서 舌梗으로 誤刻하고, 이는 里洞新刊, 院山新刊까지 이어진다. 더구나 院山新刊에서는 그마저도 제대로 옮기지 못하고 “○水煎食遠服”의 글자조차 누락하였다.

이런 판각 훼손과 누락 여부는, 이후 많은 〈方藥合編〉 線裝本들의 출판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로써 〈證脈方藥合編〉 冶洞新刊, 里洞新刊, 院山新刊을 면밀히 비교하여 보면 모두 〈重訂方藥合編〉보다 뒤에 형성된 판본이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이전의 원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中統 61 人參芎歸湯의 경우에서도 〈重訂方藥合編〉과는 달리 〈證脈方藥合編〉 冶洞新刊, 里洞新刊, 院山新刊에서 모두 誤刻하였다.

〈證脈方藥合編〉은 〈重訂方藥合編〉과 달리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에서 훼손된 부분을 일부 보충판각하고 “新增證脈方藥合編 酉齋”를 추가한 것이다. 〈證脈方藥合編〉 冶洞新刊은 아마도 수년간의 출판의 과정에서 책판이 훼손되기도 하고 다른 지역에서의 요구에 부응하여 里洞新刊과 院山新刊이 새로 판각된 것으로 추정된다.

〈方藥合編〉 출판과 유관한 시기에 惠庵의 〈方藥合編〉 편찬의 命을 받은 黃泌秀의 저작물은 1874년 〈達道集註大全〉, 1883년 〈百戰奇法〉, 1887년 〈御定奎章全韻〉 등인데, 필자들이 조사한바 이것들은 惠庵의 의학과는 동떨어진 책들이라 黃泌秀가 醫人 또는 醫業과는 무관하다고 볼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 따라서 黃泌秀가 아니라 惠庵의 제자들 중 渼隱 또는 酉齊가 〈方藥合編〉의 실제 편찬자일 것으로 추정된다.

 

Ⅳ. 결론

1. 山草의 種數는 〈證脈方藥合編〉 冶洞新刊, 里洞新刊, 院山新刊 모두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과 같이 三十四種으로 誤刻되어 있다.

2. 人參羌活湯은 〈方藥合編 全載醫方活套〉 목록에서 中統 116으로 誤刻된 것을, 〈重訂方藥合編〉은 中統 169로 訂正했으나, 〈證脈方藥合編〉 冶洞新刊, 里洞新刊, 院山新刊에서 모두 中統 119로 誤刻되었다.

3. 〈證脈方藥合編〉 石隱補遺方 火門의 黃連湯에서 冶洞新刊, 里洞新刊, 院山新刊 모두 〈重訂方藥合編〉과 달리 “舌硬”이 “舌梗”으로 誤刻되어 있다.

4. 〈方藥合編〉의 실제 편찬자는 黃泌秀가 아니라 惠庵의 제자들 중 渼隱 또는 酉齊일 것으로 생각된다.

 

한기춘·서정철·최순화(mc맥한의원·우리경희한의원·보광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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