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우리는 모두 인생의 순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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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우리는 모두 인생의 순례자다
  • 승인 2017.12.22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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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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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 생각을 걷다: 인문학자 김경집이 건네는 18가지 삶의 문답


지난 9일, 모교에서 졸업 30주년 기념 모임이 있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죄다 새까만 머리에 파릇파릇 청춘의 아름다움을 뽐내느라 서로들 바빴었는데, 이제는 대부분 발빈반백에 세월의 주름이 아로새겨진 얼굴을 마주하며 ‘웃픈’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새삼 ‘광음여시(光陰如矢)’를 절감했는데, 이미 유명(幽明)을 달리 한 학우도 5명이나 된다는 사실에 ‘인생무상’ 네 글자가 더욱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이럴 땐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생각을 걷다』를 다시금 꺼내들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김경집 著
휴 刊

『생각을 걷다』는 시대정신과 호흡하며 미래의제 모색에 매진하는 인문학자 김경집 작가의 최근작이다. 저자는 이제껏 『청춘의 고전』·『생각의 융합』·『엄마 인문학』·『고장난 저울』·『인문학은 밥이다』·『나이듦의 즐거움』·『책탐』 등도 펴냈는데, 일관된 주제는 늘 ‘삶(사람)의 무늬’, 즉 인문<人+文(紋)>이었던 것 같다.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강단에서도 소위 ‘인간학’을 25년 동안 전담해 가르쳤으니, 일견 아주 당연한 것이겠지만….

책은 모두 18장으로 나뉜다. 지은이가 히말라야를 보름동안 트레킹하며 날마다 화두로 삼았던 주제어-설렘·탈출·시간·길·독서·자연·가족·휴식·꿈 등-를 소제목으로 삼아 구분해놓았기 때문이다. 해서 인문서의 속살을 기행문의 겉옷으로 감싼 책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까닭에 안나푸르나·소롱빠 등의 여행 경로를 상술하기보다는 고되게 걸으면서 그날그날 침잠했던 생각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천 길 낭떠러지와 고산병이 시시각각 위협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 오르내린 힘겨운 여정 속에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생길에서 마주치게 되는 여러 문제들을 응시하며 진솔하게 토해 낸 글이라고 할까?

읽노라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공감할 텐데, 나는 특히 다음의 글귀들에 더 큰 울림을 받았다. - “직선은 시간의 낭비를 혐오한다. 직선의 삶을 요구하는 것은 여백을 허용하지 않는 충실한 기계의 삶을 만들려는 폭력이다. 살아간다는 건 속도와 풍경을 함께 누리는 법을 깨우치는 과정이다. 그게 나이 드는 과정이다.”, “모든 시간은 맞닿은 채 부대끼기도 하고 도닥이면서 이어진다. 살아온 시간과 살아갈 시간이 바로 지금 맞닿아 있다. 그래서 지금이 중요하다.”, “회의는 절망과 한숨이 아니라 살아온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해석의 과정이다. 그것은 자아의 타성화된 일상에 타협한 자신을 질책하는 것이다.”,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낯섦에 기대를 가지면 설렘이 되지만 두려움이 앞서면 겁이 된다. 비겁은 공포를 빌미로 가장 못난 나와 타협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가장 큰 비겁은 가장 작고 가벼운 일에 대한 합리화의 변명이다.”, “소중하고 귀한 것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없고 쉽게 얻어서도 안 된다. 그러니 허투루 살 수 없다.”

지천명(知天命)을 넘기고서 부터는 확실히 삶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에 대한 갈증이 심해지나 보다. 예전에는 그저 밑줄 치며 다시 한 번 읽는 것으로 충분했는데, 이번에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졸업 30주년 모임 탓인지….

안세영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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