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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CLC의 눈으로 본 출산의 미시사
2018년 03월 23일 () 07:03:44 김나희 mjmedi@mjmedi.com

국제인증수유상담가(International Board Certified Lactation Consultant, 이하 IBCLC)는 1970년대 미국의 자연주의적 모성 회복 운동에서 출발한 전문가 직능이다. 인위적인 임신과 출산 통제, 모아를 분리시키는 상품을 사용한 육아를 반성하고, 인류 공통의 유산인 자연주의 전통을 회복하려고 하였다. 미개함, 비과학, 비합리, 가난 등과 연관되고 있었던 전통적 경험을 새롭게 정의하여 과학과 전문성을 토대로 전통의 지혜를 되살리고 교육하는 활동이 IBCLC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이는 내가 과학을 전공하고 한의사로서 진료하며 출산, 육아하며 가졌던 고민의 흐름과 맞물렸다. 또한 한의사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정체성이라 하겠다.

 

■ 외할머니 시대의 출산과 수유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 (Baby Friendly Hospital)

1992년 유니세프와 세계보건기구가 처음 시작한 운동으로 모유수유, 모아 동실, 병원 구성원들의 교육 정도 등을 평가하여 인증한다. 내가 일했던 강동경희대병원도 이 인증을 받았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모유은행이 설치되어 있기도 하다.

나의 외할머니는 17세에 첫 출산을 했다. 방문이 문풍지로 되어 있는 한옥의 방에서 꼬박 3일 동안 방바닥을 기어다니며 혼자 진통을 겪어냈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총 일곱 번의 출산을 했고 그 중 한 명은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사망했는데 외할아버지가 한동안 슬피 울었다고 들었다. 그렇다고 외할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애착을 갖고 육아에 조금이라도 참여했던 것은 아니다. 외할아버지는 아기의 울음이 시끄럽다고 소리를 질러,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외할머니가 밤새 아기를 업고 집 밖을 서성이게 만들었다. 고단백질, 고칼로리 식품은 그런 외할아버지에게 우선 돌아갔고, 그 다음은 아들들, 그 다음은 딸들에게 돌아갔다. 본디, 충분한 식사를 하는 여성이라면 임신과 수유는 모체에 손상을 주지 않는다. 심지어 더 튼튼해지기도 한다. 출산 후 월경이 돌아오면 칼슘 재침착이 이루어지므로, 여럿을 수유한 여성일수록, 오래 수유한 여성일수록 골밀도가 더 높다. 하지만 그 당시의 많은 여성들이 그랬듯 외할머니도 영양 실조 상태에서 출산을 반복하였다. 그 결과 빈혈, 근육손실, 저알부민증, 체지방감소, 저체중 등의 모성소모증후군(maternal depletion syndrome)을 겪었다고 하면, 내가 기억하는 외할머니의 쇠약하고 왜소한 모습이 설명된다. 외할머니는 초경 시작 직후에 임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몸(특히 골반)도 더 자라야 하는 덜 성숙한 청소년의 몸으로 영양실조 상태에서 임신했기 때문에 타격이 더 컸을 것이다.

 

■ 어머니 시대의 출산과 수유

나의 어머니가 출산했을 때는 한국 국민 대다수가 극빈 상태에서는 벗어난 상태였고 미국식 서구화가 전방위적, 무차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시기였다. 병원식 출산이 최선으로 받아들여져 내진, 제모, 관장의 굴욕 3종 세트가 당연한 듯 이루어졌고, 산모는 개구리처럼 누운 자세로 불편하게 출산을 해야 했다. 회음절개는 산모의 동의를 얻지도 않고 그냥 했고 어머니 역시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남편이 분만실에 들어온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당시는 모유대체품(분유) 마케팅 규제에 대한 국제적 합의(International Code of Marketing of Breast-Milk Substitutes)가 이루어지기 전이라, 분유 회사들은 교활하고 야비한 방법으로 모유를 공격했다. 의사들은 모유수유를 하겠다는 산모를 미개인 보듯 쳐다봤으며, 산모들은 멀쩡히 잘 나오는 모유를 끊기 위해 가슴을 천으로 꽉 졸라매고, 의사가 당연한 듯 처방해준 팔로델(브로모크립틴)을 복용했다.

다행히 나는 상당 기간 모유를 먹고 자랐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분유를 살 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부잣집이었다면 일부러 모유를 말리고 분유를 사서 먹였을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든 나의 어머니도 모유의 가치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내가 먹고도 남는 모유는 짜서 화분에 주었다고 한다. 엄마와 떨어져 아기들끼리만 누워 있는 신생아실도 부잣집을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할 수 없이 모아동실을 했다. 나 역시 다행히 모아동실에서 생애를 시작했다.

 

■ 나의 출산과 수유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았던 1970년대, 한국에서는 근대 병원 분만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지만, 같은 시기 서구에서는 병원 분만의 문제점이 다각도로 비판되었고 모성의 자연주의를 회복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국에서 병원 분만의 대안인 자연주의 출산이 퍼지기 시작한 것은 한 세대가 지난 2000년대에 들어서였다. 내가 임신 상태로 일하던 종합병원도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 타이틀을 갖고는 있었으나, 대부분의 의료진은 건성으로만 의료개입 최소화나 모아동실 등을 받아들였다. ‘한국 여성이 회음 절개 없이 질식분만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랬다가는 반드시 심한 열상을 입게 된다.’고 단언하던 산부인과 의사도 보았다.

IBCLC 공부를 하면서부터 자연주의를 바탕으로 한 대안 출산을 모색했고, 할머니 때와 어머니 때 출산 방식의 장점을 결합하여 자연스러우면서도 안전하고 위생적인 출산을 할 수 있었다. 또한 IBCLC 같은 전문가들이 인식 제고를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대안 출산에 대한 인식이 드문드문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의사들 사이에서는 자연주의 출산이 비교적 잘 알려진 편이라 나도 더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순조롭게 진행된 분만 마지막 순간에 호흡을 조절해서 약간의 열상도 없이 우리 아기를 만났다. 모유수유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 자연주의 모성 전통의 회복과 나의 진료

IBCLC 공부를 하기 전에는 나의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출산 경험을 희미하고 어렴풋하게만 기억하고 구술했다. 통시적이고 통합적인 지식을 갖추고 나니 비로소 그 경험들을 역사와 과학의 조명으로 비춰보고 내재된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는 인위적 통제로 점철된 산부인과의 역사를 돌아보고 인류학, 생태학, 보건학의 도움으로 더 나은 출산 방식이 무엇인지 모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근거에 기반하여 기존 산과학이 여성의 몸에 친화적이지 못한 부분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모아 보호를 위한 한의학의 여러 장점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에는 실제 진료에서 IBCLC의 전문성이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김나희 /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교육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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