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유 회사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위협하는 영유아 건강, 이에 대한 국제 사회의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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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유 회사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위협하는 영유아 건강, 이에 대한 국제 사회의 대응
  • 승인 2018.04.1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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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희

김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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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유보다 분유가 좋다는 거짓말

국제인증수유상담가(International Board Certified Lactation Consultant, 이하 IBCLC)는 모유수유, 산전산후관리, 신생아 케어에 특화된 전문가 직능이다. 나는 6년째 IBCLC로 활동하면서 여전히 모유수유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이 팽배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 중에 압권은 분유가 모유보다 낫다는 괴소문이다. 사실은 어떤가? 분유를 모유와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아직도 모유의 성분을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 (올리고당만 예로 들면, 모유에는 우유 속 올리고당 종류의 다섯 배, 양으로는 수백 배에 달하는 200종이 넘는 올리고당이 있다.) 앞으로 아무리 생화학이 발달한다 해도 분유가 모유를 따라올 수가 없다. 왜냐하면 모유에는 살아 있는 면역 세포, 정상 세균총의 유익균들, 실시간으로 만들어지는 항체 등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아기와 엄마가 살을 맞대고 있으면 아기에게 붙어 있는 병원체(병균, 바이러스 등)를 엄마의 몸이 인식하고, 장-모유 경로(entero-mammary pathway)를 통해 그 병원체에 대한 맞춤형 면역물질을 만들어 모유로 분비해 아기에게 전달한다. 아기가 걸릴 수 있는 병에 대한 맞춤 항체를 실시간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1.5kg보다 작게 태어난 극소 저체중 출생아는 아직 삼키는 능력이 없어서 모유를 먹을 수가 없는데, 그런 저체중아에게는 모유를 면봉에 발라서 입 안 점막에 묻혀 준다. 그러면 모유가 아기 면역계를 활성화시켜 아기의 생존률이 올라간다. 면봉에 묻힌 그 적은 양이라도 어떻게든 흡수를 시키려고 애쓸 만큼 모유는 아기에게 이롭다. 극소량의 모유도 아기에게 유익한데다가, 모유 섭취량이 늘어날수록 건강 증진의 효과가 점점 더 누적된다.

분유가 더 좋다는 괴소문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명확한 출처와 자금원, 유통 경로를 갖고 있다. 분유 회사에서 교묘하게 퍼뜨린 모유 폄훼 마케팅, 그리고 의료기관 등에 제공한 리베이트를 통해 모유수유 비율이 낮아졌다. 스위스의 네슬레 같은 분유 회사들에서 대대적으로 분유가 더 좋다고 공격적으로 홍보하고, 모유는 영양이 없다거나 양이 부족하다거나 오염되어 있다거나 모유수유는 미개하다는 등의 말을 퍼뜨렸다. 그 결과 잘 나오는 모유를 끊고 분유를 사 먹이는 유행이 생기기 시작했다.

 

■분유수유로 인한 영아사망률의 증가

◇제3세계에 대한 분유 마케팅과 전문가(의사)의 잘못된 지도가 낳은 비극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다. 의사가 모유가 부족할 것이라고 말하자 이 파키스탄 산모는 쌍둥이 중 남아에게는 모유를 먹이고 여아에게는 희석한 분유를 먹였다. 앙상한 여아는 이 사진이 찍힌 뒤 얼마 뒤에 사망했다. 대부분의 경우 쌍둥이에게도 완전 모유수유가 가능하며, 만일 분유 보충이 필요한 경우라면 쌍둥이 둘 다 같은 양의 모유를 섭취할 수 있게 배려해야 한다.

저개발국에서는 모유수유의 중단이 심각한 문제를 가져왔다. 스위스 회사의 분유는 아프리카나 아시아 국가 물가로는 너무 비싸 분유를 충분히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물을 타서 희석한 분유를 아기들에게 먹였다. 엄마들이 음식을 사먹으면 충분히 모유수유를 할 수 있는데도 모유가 나쁘거나 부족할 것이라고 믿은 나머지 모유를 끊고 묽은 분유를 먹였고 아기들은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남녀 쌍둥이를 낳은 파키스탄의 한 산모는 의사로부터 모유로는 두 아이를 다 키우기에 부족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남아에게는 모유를 먹이고 여아에게는 분유를 먹였다. (그림 참조) 분유 값을 감당할 수 없어 매우 묽게 타서 먹였고 여아는 이 사진을 찍은 뒤 얼마 뒤에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청결한 물이 없어 분유를 오염된 물에 타 먹이니 면역이 미성숙한 아기들이 질병에 걸리거나 사망했다. 이것이 네슬레 불매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배경이다. (이런 까닭에 재난 지역이나 분쟁 지역에 섣불리 분유를 공급하면 안 된다. 일단 분유를 먹이게 되면 모유 생산이 줄어들게 된다. 모유수유가 끊겨 젖이 마른 상태에서 보급로가 차단되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가루 분유보다는 액상 분유를 공급하는 편이 낫고, 100% 확실히 공급로를 확보하고 아이들이 어른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랄 때까지 공급할 수 있을 때만 공급을 시작해야 한다. 분유를 끝까지 보급하는 책임을 다하기 어려울 경우, 수유 여성을 위해 어른 음식을 충분히 공급하는 편이 안전하다.)

선진국에서는 분유수유로 인한 위험이 비교적 낮지만, 모유수유 비율이 떨어지면 영아사망률이 올라가고 아기들이 잔병과 큰 병에 더 많이 걸리는 현상은 여전히 나타난다. 전 세계에서 매년 모유수유 부족으로 사망하는 아기의 수는 최소 80만 명이다.

 

■분유 마케팅 제한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과 의료인의 역할

이처럼 분유를 미화하는 공격적인 판촉으로 인해 전 세계 영유아와 수유여성의 건강 문제가 위협받자, 세계보건기구 산하 세계보건총회에서 유니세프와 협력해 <모유대체품(분유)의 마케팅에 대한 국제 협약>을 체결했다. 한국도 이 협약에 가입해 있다.

이 국제 협약에 따르면 분유는 대중 광고를 해서는 안 되고, 샘플을 나눠줘서도 안 되며, 의료기관에 비치해서도, ‘엄마의’ ‘엄마 같은’이라는 미화하는 표현을 써서도 안 된다. 또 분유 제품에 아기 사진을 싣는 것도 금지된다. '엄마가 만든 명작', '현명한 엄마의 선택', '아이엠마더 엄마로 태어나다'같은 현재 한국에서 유통되는 분유 제품명은 국제협약을 명백히 어기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이 협약 위반에 대한 제제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분유회사는 똑같은 포장과 상품명을 써서 1-2단계는 <분유>, 3-4단계는 <이유식>으로 상품화해 3-4단계에 대한 광고를 하는 ‘꼼수’도 쓰고 있다. 상품명과 상품 포장을 통일해 3-4단계 광고를 하면 자연스럽게 1-2단계 광고도 되도록 만들어 놓았다. 생후 6개월 미만을 위한 분유 광고는 엄격히 금지돼 있기 때문에 교묘하게 생후 6개월 이상에 대한 이유식 광고를 하여 분유 광고까지 하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1989년 이탈리아 이노첸티에서 유니세프와 세계보건기구의 보건정책총회는 모유수유 촉진을 위해 이노첸티 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각 나라 정부들이 모든 여성들이 모유를 먹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모든 영아들이 출생부터 6개월까지는 오직 모유만을 먹을 수 있게 하며, 생후 2년 이상까지 적절한 고형식(이유식)을 먹이면서 모유수유를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선언 이후 30년이 지난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모유수유에 적대적인 환경이 우세하다. 모유수유에 결정적인 시기인 출생 직후 입원해 있는 산부인과, 그리고 몇 주 간 거주하게 되는 산후조리원에서는 여전히 관행적으로 분유를 제공하고 있다. 이노첸티 선언에 동참한 한국 정부는 이런 관행을 근절할 의무가 있으나, 그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한의사들은 의료인으로서 이와 같은 분유 마케팅 및 산부인과, 소아과, 산후조리원에 제공되는 리베이트가 불법적임을 인지하고 환자 및 대중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겠다.

김나희 /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교육이사

*이 기고문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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