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CLC의 눈으로 임신, 출산, 육아 과정에서 ‘자연요법주의자’들과 선 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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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CLC의 눈으로 임신, 출산, 육아 과정에서 ‘자연요법주의자’들과 선 긋기
  • 승인 2018.05.0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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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희

김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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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자연주의출산육아와 이른바 ‘자연요법’을 구분하기

지난 칼럼에서는 자칭 ‘자연요법’은 일본과 한국의 각종 민간요법이나 개인의 뇌내망상 요법을 ‘짬뽕’하여 최근에 등장한 것으로, 한의학과 무관하며 전통적인 지혜와도 무관하다는 것을 설명했다. 여러 민간요법이나 임신, 출산, 육아와 관련된 잘못된 관습과 유행은 전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네팔이나 아프가니스탄에는 초유가 아기에게 해롭다고 생각하여 짜서 버리는 전통이 있는데, 모든 전통이 지혜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어떤 관습이나 요법이 이롭고 어떤 것들은 그렇지 않은지 구분하기 위해서는 산모와 아기의 생리와 병리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국제인증수유상담가(International Board Certified Lactation Consultant, 이하 IBCLC)는 모유수유, 산전산후관리, 신생아 케어에 특화된 전문가 직능이며, 전세계 어디에서나 산모와 아기를 잘 돌볼 수 있다고 검증받은 자격이다. 한국의 한의사는 특히 각종 민간요법에 대한 환자들의 질문을 많이 받기 때문에 근거에 입각한 설명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자연요법을 맹신하는 환자들은 대체로 양방 의학을 완전히 불신하기 때문에 양방 의사가 옳은 조언을 해도 백안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한의사가 균형 잡힌 조언을 한다면 환자가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환자에게 백신의 필요성을 설득해내는 것은 환자 개인과 공공보건을 위해 한의사만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영아에게 오곡가루와 생채소즙을 먹이면 안 된다

장 점막의 세포 사이의 치밀한 결합이 느슨해져 그 틈으로 미생물이나 독소,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 등이 들어와 각종 면역질환을 일으킨다. 건강한 신생아라도 장 점막은 아직 미성숙해 취약하고 투과성이 큰 ‘새는’ 상태이다. 따라서 모유만 먹이는 완전모유수유를 권장한다.

일부 자연요법주의자들은 분유는 인공적인 것이니 좋지 않고 오곡가루와 생채소즙은 자연적인 것이니 아기에게 좋다고 주장하며 4개월 미만의 영아에게 이런 어른 음식을 주기 시작한다. 이 역시 매우 위험한 행위이다. (분유 보충을 최소화하는 방향은 옳으나, 신생아를 포함한 영아에게 오곡가루와 생채소즙을 먹이라는 말은 옳지 않다. 참말과 거짓말이 섞여 있어 혼란이 가중되고 현혹되기 쉽다.) 신생아의 소화기관은 아직 완성되지 않아 장벽은 불완전하고 흡수력이 크기 때문에 외부 물질에 알레르기를 일으키기 쉽다. (그림 참조) 모유는 아기 장벽에 알레르기 유발 물질과 유해 세균이 침입하는 것을 막아 주고 소화기관이 성숙되는 것을 돕는다. 반면 엄마젖이 아닌 어른 음식을 한꺼번에 여러 가지 먹이는 것은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아기의 장에 쏟아 붓는 셈이다. 4~6개월이 되어 이유식을 시작할 때에도 단백질 함량이 낮아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이 낮은 쌀 한 가지로만 시작하는 것을 권한다. 다섯 가지의 곡물 가루를 한꺼번에 먹이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초기 이유식에는 채소와 과일을 익혀서 먹여야 하는데 어린 영아에게 생채소즙을 먹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임신부의 관장은 위험할 수 있으며 신생아에게 관장은 금물이다

어떤 ‘자칭 자연요법주의자’들은 임신부에게 관장을 하라고 권한다. 관장을 하면 장의 정상적인 근육운동이 약해지고 항문 괄약근도 무력해질 수 있기 때문에 연속해서 몇 번 하는 것은 금물이며, 특히 임신부에게는 진통을 유발할 수 있어서 조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관장이 더 위험하다. 또한 임신부는 치질도 생길 수 있고 출산 과정에서 회음부의 괄약근이 다소 손상될 수도 있기 때문에 관장은 더욱 주의할 필요가 있다. 집에서 관장하다가 장 출혈이나 장 화상을 초래할 수도 있다.

‘자연요법주의자’들은 심지어 갓 태어난 아기에게 생수와 마그밀(수산화마그네슘)을 먹여 관장을 하라고 한다. 학계에서는 이미 퇴출된 ‘숙변’의 존재를 강변하는 것도 모자라 신생아의 태변도 마치 숙변처럼 쌓여 있으니 싹 빼내야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이들은 갓난아기가 태변을 뱃속에 많이 쌓아 두고 있는데 배출을 충분히 못하여 겉으로 태변이 적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만일 마그밀을 먹여 대변이 많이 쏟아져 나온다 해도, 그것은 속에 쌓여 있던 태변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마그밀과 같은 하제는 장벽에서 물을 끌어내어 대변 양을 늘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멀쩡한 장벽에서 물을 쥐어짜서 마치 막혀있던 묵은 대변이 비로소 나오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속임수를 쓰는 것이다. 마그밀은 연약한 아기의 장벽과 미성숙한 신장에도 해롭다. 숙변은 존재하지 않으며, 태변을 잘 배출되게 하려면 초유를 먹는 것으로 충분하다.

 

■수두 파티는 평생 대상포진 위험을 갖고 살게 만들며 주변 아이들까지 위험에 빠뜨린다

자연요법주의자들이 자연스러운 면역 획득법이라며 칭송하는 수두 파티는 사실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 감기, 독감, 홍역, 수두 같은 유년기에 흔한 감염성 질환을 일으키는 미생물들은 인류와 오래 전부터 공생해온 미생물들이 아니다. 이 질환들은 인류가 농경 생활로 밀집해서 생활하게 된 뒤 비로소 유행하게 된 비교적 ‘최신의’ 질환들이다. 수두는 에이즈, 에볼라, 메르스와 마찬가지로 우리 면역계에게 낯설고 포악하고 생경한 질환이다. 바리셀라 조스터 바이러스는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라고도 불리며, 말 그대로 수두와 대상포진을 일으킨다. 처음 걸리면 수두로 나타나고, 잠복해 있던 바이러스가 우리 몸이 허약한 틈을 타서 재발하면 대상포진이 되는 것이다. 수두 파티로 일부러 수두를 앓는다면 평생 대상포진이 생길 위험을 갖고 살아야 한다. 대상포진에 걸리면 시력이나 청력이 손상될 위험이 있고 안면마비나 대상포진후 신경통으로 영구적인 심한 통증이 남을 가능성이 있으며, 뇌졸중 발병 위험도 높아진다.

수두에 걸린 아이의 주변에 일부러 모여서 옮으려는 수두 파티로는 수두뿐 아니라 장티푸스, 수족구, 독감, 간염, 장염, 홍역, 성홍열 등등 공기매개감염, 접촉감염의 모든 질병이 다 옮을 수 있다. 면역계가 성숙하지 않은 어린이들이 몰려 있는 밀집 환경은, 숙주를 위험에 빠뜨리고 다른 숙주로 재빠르게 옮겨가는 ‘먹튀’ 미생물들을 창궐하게 할 수 있다. 일부러 감염을 조장하는 수두 파티에서라면 당연히 훨씬 더 위험하다.

“나는 내 아이를 백신 없이 키워봤는데 건강하더라”라는 태도는 집단면역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나오는 무지의 소산이다. 게다가 본인과 본인 가족이 건강하다고 해도, 그 건강한 몸으로 병원체를 옮기고 다닐 수 있다. 이럴 때 아직 면역이 성숙하지 않은 영유아나 면역억제 중인 장기이식 환자, 암 환자, 임신부 등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내 아이가 건강해서 병이 걸리지 않아도, 병균을 다른 아이에게 전달할 수는 있다. 그 다른 아이가 허약하거나 아직 백신 접종 시기가 되지 않은 아기일 경우 그 아이의 목숨을 위험하게 만드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다음 칼럼에서는 양방의 산과, 소아과의 관습적인 처치와 그 역사적 변화에 대해 알아보면서 한국의 한의사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관점에 대해 고민해보도록 하겠다.

김나희 / 대한모유수유한의학회 교육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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