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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결
2018년 05월 11일 () 07:14:14 김영호 mjmedi@mjmedi.com
   

김 영 호
부산광역시한의사회
홍보이사

하루 종일 우리의 마음속은 어떤 모습일까? 다른 사람과 얘기를 하거나 특별한 일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내면과 마주하게 된다. 그 시간 동안 나의 내면이 하는 목소리와 그에 대한 반응, 그 과정에 일어나는 감정이 우리의 마음이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생각과 감정, 결심과 신념이 결국 우리의 인생을 좌우한다. 그래서 우리 삶의 색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만나는 사람과 환경, 특별한 사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나의 내면이 마주하는 그 긴 시간동안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이 우리의 인생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이지는 않을까.

다큐멘터리에서 대 초원의 구불구불한 물길을 보는 순간 그 물길이 우리의 마음에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이 아무 의지 없이 그저 물길을 따라 흐르듯, 우리의 마음에도 그런 생각의 길이 있겠구나, 땅이 오랫동안 굳어지며 물의 길을 만들 듯 생각도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오래되면 굳어져 생각이 흘러가는 결을 만들겠구나!’ 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굳어버린 생각의 습관에 <생각의 결>이라는 이름을 붙여본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대부분의 생각은 그 결을 따라 흘러간다. 그 결을 지나온 생각은 일관적이다. 불안, 분노, 짜증, 슬픔, 외로움 등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 <생각의 결>에는 살아온 모든 시간이 녹아있다. 맵고, 시고, 달고, 쓴맛이 모두 모여서 짠 맛이 되듯, 생각의 결도 사람마다 독특한 final emotion의 형태로 굳어진다. 그리고 그 결을 지나면 어떤 생각이나 경험도 그 결의 감정으로 변해버린다. 아무리 맑은 담수도 오염된 강을 지나면 똑같이 오염되듯 생각의 결을 지나면 항상 비슷한 final emotion에 이른다.

이 <생각의 결>은 오랜 시간 형성되어온 것이라 없애기가 쉽지 않다. 이곳을 지나온 생각과 감정이 항상 나를 고통스럽게 할지라도 쉽게 없애지 못한다. 내 것인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슬프고 짜증나는 일이다.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이 <생각의 결>을 거친 감정을 느끼며 살게 된다. 원치 않는 습관에 중독이 된 듯, 생각의 결은 고약한 습관이다.

<생각의 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성공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실패를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평생 신경성 질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평생을 불안과 우울 속에 살기도 한다. 그래서 만약 원치 않는 <생각의 결>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면, 마땅히 탈출해야 한다. 다음 세 가지는 그 탈출 방법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의 흔적이다.

첫째, 원치 않는 <생각의 결>을 지나온 생각이나 감정은 이유 불문하고 ‘휴지통에 버리는 상상’을 한다.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지금 이 느낌은 내 것이 아니야’ ‘내가 원치 않는 그 <생각의 결>을 지나온 오염된 거야’ 라는 마음으로 과감히 버린다. 그 생각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그 생각을 붙들고 생각하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이럴 때 ‘심사숙고’는 대부분 해롭다.

둘째, 혼자 있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대부분, 생각은 혼자 있는 시간에 피어오른다. 일단 피어오른 생각은 <생각의 결>을 지나서 내게 도달한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일을 하거나, 몸을 격렬히 움직이는 일을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해서 생각이 피어오를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그래도 떠오른 생각들은 과감히 <오염된 생각>으로 분류하고 버리자. 그 생각이 떠오른 이유도, 해결하려는 노력도 하지 말고 버리자. ‘노력하다가 실패했다’는 느낌보다는 처음부터 폐기하는 편이 낫다. 잦은 실패는 사람의 의지를 꺾기 마련이다.

셋째, 새로운 결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하루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생각은 <생각의 결>을 지난다. 그래서 기존의 결이 아닌 새로운 결을 만드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오래된 생각의 결’은 한의학의 <담음:痰飮>처럼 끈적하고 잘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결을 제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기존의 결을 제거하기보다 <새로운 생각의 결>을 만들어 주는 편이 효과적이다. 물도 새로운 길이 생기면 기존의 물길이 자연히 수명을 다하듯, <새로운 생각의 결>을 만들어서 생각이 흐르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결>을 만들기 위해서는 평소 잘 만나지 않던 다른 성향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다. 성향이 다른 사람과 만나며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바로 그 순간, 새 결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평소에 잘 입지 않던 스타일의 옷, 잘 듣지 않던 음악, 보지 않던 장르의 영화 등 나의 감성코드와 반대되는 것들을 자꾸 경험하는 것이 좋다.

그와 동시에 내가 지향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자주 만나는 것이 좋다.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책, 그 사람의 인터뷰 등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연구해본다. ‘이런 상황에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까?’에 대한 답이 자연스럽게 나올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이런 노력은 빠른 시간 내에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다. 새로운 생각의 결이 나에게 자리 잡는 그 순간까지, 꽤 긴 시간 노력해야 한다. 나를 위한 <새로운 생각의 결>이 완전히 자리 잡을 때까지 포기하지 말자. 절대로 포기하지 말자. 생각을 바꾸면 기분이 달라지고 기분이 바뀌면 나의 하루가 달라진다. 내 삶 속 기분 좋은 하루의 개수가 인생 성적표일지도 모르니까.

이번 칼럼을 다 쓴 후 만난 멋진 문장을 하나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 한다. 김애란의 소설 <바깥은 여름> 173쪽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 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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