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계는 왜 ‘미투’를 말하지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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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계는 왜 ‘미투’를 말하지 못하나
  • 승인 2018.05.30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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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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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중심문화에 소외된 여한의사…피해자 위한 연대체 필요성 제기


[민족의학신문=박숙현 기자] 지난달 25일 참의료실현 청년한의사회는 서울 혜화역 인근에 위치한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미투운동과 한의계’를 주제로 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청한 성평등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와 사례 등을 통해 성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한의계 내부의 피해 현황을 논의하며 피해자들을 위한 연대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의계는 왜 미투운동이 일어나지 않는가
경희대 한의과대학 성평등위원회 ‘달해’ 관계자는 “한의계에서도 미투운동이 일어날 법 하다고 생각했다”며 “모두가 지적했고 경험해왔던 일이기 때문에 한의계에 성폭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한의계는 미투가 없는가”라고 운을 뗐다.

그는 첫 번째 원인으로 한의계의 남성 중심적 분위기를 꼽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현재 경희대 한의과대학 교수 95명중 여성 14명”이라며 “여학생들이 롤모델로 삼을 여성교수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답으로 신뢰할 수 있는 여성들의 연대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의 성차별은 예전보다 교묘해졌다”며 “대학병원에서 인턴을 뽑을 때는 남녀채용비율이 유사해 성차별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레지던트로 넘어가면서 과를 선택할 때는 여자를 뽑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과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교묘한 성차별이 이뤄지고 있지만 남성이나 여성 모두 제도적인 여성차별이 아니니 문제가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함께 논의할 곳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미투운동의 시사점(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한의계의 성폭력은 왜 드러나지 않는가(고은광순 평화어머니회 대표, 솔빛한의원 원장) 등이 발표됐다.

■온라인 및 일부 몇몇에 의한 성희롱 빈번…
이날 청한 성평등인권위원회는 ‘한의계 내 성폭력 및 성인식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 중 57%가 성폭력을 경험했고, 이들 중 상당수는 성추행 및 성희롱, 언어폭력 등의 피해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설문조사에는 한의계 내부에서부터 한의원 방문 환자들에 의한 성희롱까지 다양한 피해 사례들이 언급되어 있었다.

# 사례: 한의사 내부 커뮤니티 내에 여성과 관련한 문란한 사진들이 만연해있는 걸 자주 본다. 일명 ‘조공’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의 사진 뿐 아니라 희롱까지 일삼고 댓글로 이어지는 성희롱 발언을 보게 되는데 이는 많은 여한의사들이 피해에 노출되는 것이다.

◇'미투운동과 한의계'토론회에서 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가 발표를 하고 있다.

■청중들의 공감…“여자는 레지던트로 뽑지 않는다”
A씨: 학교 다닐 때 여학생회장으로 출마하며 성평등위원회를 만들었다. 교수들에게 비난받고 남자들과 후배동료들에게 비난받았다. 그러나 내가 틀린 일을 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피해자를 위해 나섰는데 지지대는커녕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쎈 척도 많이 하고, ‘쌈닭’이나 ‘독종’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우리도 연대체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배를 찾아가고 다른 학교 총여학생회 등을 찾아가서 우리의 이야기를 했고, 이에 지지만 받아도 힘이 났다. 예전에 여한의사회에서 활동하던 당시, 왜 여자한의사 레지던트나 스텝을 뽑지 않는지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병원장들은 여한의사들의 경우 육아나 결혼 등으로 인해 중도에 일을 많이 포기해서 많이 뽑을 수 없다고 답했다.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고, 후배들에게 지지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이 자리에 왔다. 한의계 내에서 여러 활동을 하다보면 어딜 가도 남자들이 많고, 남자들은 가해의도 없이 습관처럼 생활하는데 그것이 가해가 된다. 그 안에서 성격 좋은 여자, 착한 여자 되지 말고 나는 당신의 행동이 불편하고 상처받는다고 말해야 한다.

B씨: 오늘 발표된 설문조사 사례 중에는 실명을 거론하고 구체적 정황을 이야기 한 것도 있었는데 왜 익명으로 표기했는지 궁금하다. 너무 말하고 싶고, 도와달라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동아리 모임을 나가면 여자선배들은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 반면 남자선배들은 모임에서 여러 가지 성적인 가해를 한다. 그 중에는 룸살롱에 함께 간다던가 하는 식의 노골적인 경우도 있었다. 미워하는 시간을 많이 보냈던 것 같다. 여자들은 전문의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고용되기 힘들다. 그래서 남자들보다 열심히 공부해야한다. 그러나 레지던트의 채용권한은 교수에게 있고, 교수들은 여자를 채용할 필요성 느끼지 않는다. 선배들은 모두 여자는 전문의까지 해야 한다는데 여자는 전문의자격을 취득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농담처럼 여자 후배들을 많이 뽑아줄 수 있는 병원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개인적으로 해결하려하면 안되지 않겠는가. 내가 더 단단해져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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