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츠코에서 루시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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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츠코에서 루시가 되기까지
  • 승인 2018.06.29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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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성진

황보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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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오 루시!

10여년 전에 일본 여행을 갔다가 식당마다 벽을 보고 앉는 좌석들, 즉 혼자 먹는 자리들이 꽤나 많이 있다는 것을 보며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광경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혼자 밥을 먹고, 술을 먹는다는 ‘혼밥’, ‘혼술’이라는 신조어가 유행을 하고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등 이제는 일본에서 보던 것과 비슷한 모습이 낯설지 않은 사회가 되었다. 물론 자의든 타의든 충분히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지만 이로 인해 사람들 간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낳기도 한다.

출연 : 테라지마 시노부, 조쉬 하트넷, 야큐쇼 코지, 미나미 카호, 쿠츠나 시오리

친구도, 가족도, 사랑도 없는 외로운 중년 여성 세츠코(테라지마 시노부)는 엉뚱한 조카 미카(쿠츠나 시오리)의 권유로 영어 학원을 등록하게 되고 그곳에서 꽃미남 영어강사 존(조쉬 하트넷)에게 첫눈에 반한다. 금발의 가발을 쓰고 '루시‘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된 그녀는 전과는 달라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시작하지만, 그녀에게 처음으로 설레는 감정을 일깨워 준 존은 홀연히 미국으로 떠나 버린다. 상심도 잠시, 세츠코는 오랜만에 만난 사랑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과감히 미국행을 결심하게 된다.

<오 루시!>는 히라야나기 아츠코 감독이 미국 교환학생 시절 타지에서 느꼈던 감상을 절대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없는 중년 여성 캐릭터를 통해 그려낸 동명의 단편영화에서 시작되었다. 단편인 <오 루시!>는 2012년 아시아단편영화제 대상을 비롯해 칸영화제, 선댄스영화제 등의 영화제에 초청되어 25개 상을 석권하였고, 이후 아이디어와 스토리를 더욱 풍성하게 발전시켜 장편으로 탄생시켰다. 영화는 매우 독특하다. 출근길에 자신의 뒤에 있던 사람이 자살을 하는 것을 봐도 무덤덤하고, 퇴직하는 사람에게 막말을 내지르고, 집안은 거의 치우지도 않고 사는 등 일반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독신녀가 영어 강사에게 빠져 점차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약간 황당한 이야기지만 <오 루시!>는 우리 현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하면서 답답한 삶의 출구를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생각나게 해주는 영화이다. 그러나 사랑을 찾아 미국으로 간 그녀의 행동이 점차 대담해지는 것이 갑작스러운 감정의 과잉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동안 사람들과의 관계를 놓치고 있었던 그녀였기에 가능한 상황이라고 보며 결말 부분에서 감독이 무엇을 전하고자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지루한 삶에서 스스로가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찾은 주인공의 여정을 통해 자신의 삶이 특별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고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특히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대의 관객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오 루시!>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테라지마 시노부와 할리우드 배우인 조쉬 하트넷, <쉘 위 댄스>의 야큐쇼 코지 등의 배우들이 과감 없는 평범한 일상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으로 하여금 요즘 많이 활용되는 단어인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금 느끼게 해준다. <상영 중>

 

황보성진 /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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