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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고통은 없다
2018년 08월 17일 () 06:43:45 김영호 mjmedi@mjmedi.com
   

김영호

부산광역시한의사회

홍보이사

익명의 인터넷 게시판에서 ‘삶이 힘들다, 조용히 눈을 감았으면 좋겠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글에는 유독 많은 댓글이 달렸다. 댓글 수가 당시에 38개였는데 아마도 대부분 위로의 댓글이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본문과 댓글을 읽어 내려갔다. 본인의 가족 상황과 현재 마음 상태를 담담하게 적은 본문 아래 달려있던 댓글의 내용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본문은 현재 상황이 죽을 만큼 힘든 것은 아니지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마음이 힘들다는 내용이었는데 ‘죽을 만큼 힘든 경제적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 읽는 사람들의 심기를 거슬렸나보다. 댓글 중 ‘제대로 고생을 해봐야 안다’ ‘지금 자랑하려고 올리신 글이에요?’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 는 내용이 다수였다.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삶의 무게나 고통도 객관화, 서열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객관적으로 나보다 힘든 상황이면 힘들다는 하소연이 고민으로 받아들여지고, 객관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이 아니라면 배부른 자의 투정 정도로 취급되는 것 같았다. 원 글자는 본문에 다 적지 못했지만 본인이 힘들었던 상황이 더 있다고 부연 설명을 이어갔다.

인생의 무게와 고통까지 굳이 객관화 할 필요가 있을까? 내 인생의 고통보다 작은 고통이라 하여 위로보다는 따끔한 충고가 적절한 것일까? 글을 쓴 분은 분명 위로가 필요해서 여러 동료가 함께 보는 게시판에 글을 올렸을 것이다. 위로가 필요한 상황에서 ‘배부른 고민’이라는 충고를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을지 예상이 간다.

인생의 고통을 서열화할 수는 없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고통이 다르지 않다. 부자라 하여 마음의 고통이 견딜만하고 가난하다 하여 마음의 고통이 더 힘들다하기 어렵다. 위에 소개한 원 글자는 마음이 힘들고 위로가 필요하여 자기 마음을 인터넷 상에 올렸을 것이다. 그 글을 보고 그냥 담담하게 ‘저도 힘들어요. 같이 힘냅시다.’ 정도면 모두에게 충분하다. 혹은 그냥 댓글을 쓰지 않고 지나가도 될 일이다. 그런데 ‘고작 그 정도로 고민을 하느냐?’ ‘정신 차려라.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이다.’와 같은 댓글은 읽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쓰디 쓴 충고가 정말 원 글자를 위해서 내뱉은 말이었을지 의문이 들었다. 오히려 자신의 고통과 비교해서 내뱉은 배설적(排泄的) 독설은 아니었을까 싶었다.

사람은 저마다 고통을 감내하는 힘과 그릇이 다르다. 큰 고통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작은 고통에도 힘겨워하는 사람이 있다. 마음속에 번민을 담아두는 그릇의 크기도 제 각각 달라서 작은 스트레스에도 삶 전체가 흔들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큰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전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르게 태어났다. 그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의 아픔을 위로해주고 사는 것이 보편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위에 소개한 글에서는 안타깝게 그런 위로가 많지 않았다.

우리 주변에서도 힘들게 자신의 고통을 꺼내 보인 사람에게 <객관적 충고>라는 잣대를 들이밀지 않았으면 한다. 그저 ‘힘들었겠네요. 사실 나도 힘들어요. 같이 힘내요’라는 위로가 오고가면 좋겠다. 객관적인 충고라고 따끔하게 던지는 그 한 마디가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이 될지 상처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어설픈 충고로 인해 더 외톨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다. 혹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신만 유약하다는 생각으로 자괴감에 빠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도움을 주려던 충고가 폭력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유독 타인의 심리적 경계에 대한 인식이 약한 듯하다. 타인에게 자신의 기준을 함부로 들이대는 경우도 참 많다. 사람마다 다른 심리적 경계를 상대의 허락도 받지 않고 불쑥 넘어가놓고 <따끔한 충고와 조언>이라는 말로 포장하지만, 그 충고와 조언은 2차적 상처가 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는 타인의 심리적 경계에 대한 존중이 더 필요하다. 나의 기준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내 방식으로 충고와 조언을 전달하는 것은 마음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가족이나 친구, 선배의 따끔한 충고와 조언이 보편적이던 시대는 이제 지나가고 있다. 작은 고통, 큰 고통을 막론하고 위로와 공감이 우선이다. 상대의 입장에서 전하는 위로와 공감은 부작용이 없다. 위로와 공감을 해주기 어렵다면 상처를 건드리지 말고 못 본 척 지나쳐주는 것도 괜찮다.

‘술을 못 먹는 사람에게 억지로 술을 먹여가며 이것이 사회생활이라고 가르치던 시대’ ‘자신이 힘든 고생을 했다며 타인의 삶을 가볍게 생각하던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다. 작은 고통에도 유난히 더 아픈 사람이 있다. 세상에 작은 고통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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