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황 교수의 약증과 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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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황 교수의 약증과 경방
  • 승인 2018.08.17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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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행

이원행

mjmedi@mjmedi.com


상한론, 금궤요략, 온병 서평 시리즈⑭

황황(黃煌)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중국 경방가(經方家)이다. 그에 대한 글을 쓰자고 마음먹은 후 3주라는 시간 동안 내 앞에 놓여 있는 그의 책들, 「상한론 처방과 약증」, 「장중경 50미 약증」, 「황황경방의안」, 「황황 경방사용수첩」, 「약증과 경방」을 두고 생각에 잠겼다. “대체 무슨 말을 써야 할까.”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그와 나는 공부해 온 과정이 거의 같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황황은 ‘일본 한의학을 중국화한 의가’ 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존경하는 역대 의가로서 중국의 서령태(徐靈胎), 진수원(陳修園) 등과 일본의 요시마스 토도(吉益東洞), 야카즈 도메이(矢數道名) 등을 들며, 이들을 ‘질의(疾醫)’로, 중의약의 영혼과 희망을 대표하고 있다고 보았다. 굳이 왜 ‘질의’를 말하였을까? 그 이유를 스스로 밝힌 자료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나는 황황이 말한 ‘질의’의 의미는 요시마스 토도가 약징자서(藥徵自序)에서 말한 것과 완전히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실제 1989년 일본 연수를 거치면서 토도의 약징을 연구하였고, 그 후에 최대량의 원칙과 최간편의 원칙 등 토도가 상한금궤방을 분석하여 약증(藥證)을 도출해 낸 사유과정을 그대로 도입하여 「장중경 50미 약증(張仲景 50味 藥證)」을 저술한다. 그리고 1995년, 상한금궤방과 그 근연방류를 류방군으로 정리한 「중의십대류방(中醫十大類方)」에서는 서문에 서령태를 내세웠지만, 「상한론류방(傷寒論類方)」에서와 같이 처방군을 분류하지 않고 약물군으로 분류하여 놓는다. 이는 서령태와 거의 동시대, 일본의 토도가 저술한 「방극(方極)」에 그 사고가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황황을 특징짓는 체질론인 약인(藥人), 방인(方人)론은 명백히 일본 일관당(一貫堂) 모리 도하쿠(森道伯)의 의론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방증상대(方證相對)’. 요시마스 토도의 의론에서 영향을 받은 이라면 이 명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에 대해 뼛속까지 공감한 이라면 그 후에 나아가는 길은 큰 차이가 없다. “方은 무엇인가”, “證은 무엇인가”, “方을 구성하는 藥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것이 상응한다면, 그 조건은 무엇인가” 등. 그렇기에 이러한 고민을 하며 이 길을 걷는 의가들은 비슷한 연구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 더하여 약증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이라면, 당연히 객관적인 정보를 종합하려 하기에 현대적 실험 연구들도 거리낌 없이 한의학에 도입하여 연구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 길에 서 있는 의가들의 차이점은 처방을 바라보는 그 사이의 디테일, 그리고 어디까지 사용 처방을 확장시킬 것인지에 대한 취사선택의 여부 정도이다.

실제 진료실에서 그가 제자들과 나눈 대화들을 보면 나의 진료실에서 참관하는 학생들과 나누는 대화와 큰 차이가 없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다.

황황은 이렇게 말한다. “시호체질자는 정서의 심층화가 있고,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고도의 책임감을 갖는다. 알레르기성, 자가면역성, 신경정신질환과 내분비계통, 림프계통 질환이 잘 나타난다.”

나는 진료실에서 참관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호증은 보통 성실하며, 우울경향을 잘 보인다. 쉽게 긴장하는 사람으로 횡격막 역시 긴장되어 흉식호흡을 자주 하는 경향이 있다. LHPA axis에 과부하가 쉽게 걸리며 이로 인해 만성염증이 잘 초래되고 이로 인한 자가면역질환, 과민성 질환에 취약하며 정신적/육체적 부하상태에서 (특히 여성이) 내분비 질환이 잘 생겨나고, 임파선계통에 염증이 쉽게 생겨난다.”

황황은 이렇게 말한다. “표정이 냉담하고 눈을 자주 빠르게 깜빡이는 시호가용골모려탕 체질에게는 이렇게 말하라. 당신은 표정이 풀려도 마음은 풀리지 않는다. 많이 말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무 염려하지 마라. 우리는 사실 나아가기 위해 두 발짝 물러나는 것이다.”

나는 진료실에서 이렇게 말했다. “불안한 사람은 눈을 자주 깜빡이거나 눈동자를 굴리는 경우가 많다. 시호가용골모려탕증은 반드시 불안장애를 가지고 있다. 약으로 병을 치료하더라도 마음이 와 닿지 않으면 완전히 낫지 않는다. 환자의 마음을 건드려, 그가 불안해하는 요인을 짚어주고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줘야 한다.”

용어는 다르고 표현은 다르지만 실은 완전히 같은 것을 본 것이다. 황황이 내 진료를 보았을 리가 없듯, 나 역시 그의 코멘트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십수년의 공부와 임상 경험이 쌓이며 그렇게 말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결국 요시마스 토도의 학문방법을 인정하고 ‘방증상응(方證相應)’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연구하며 진료한 이가 도달하는 귀결이다.

사실 나는 ‘약증과 경방’을 보기 전 까지는 황황에 대하여 좋은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분명 일본의학에서 심대한 영향을 받았음에도 자기의 책에서는 그것을 잘 보이지 않게 감추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의십대류방」과 「장중경50미약증」을 저술한 후 근 10여년 후에 발간된 「약증과 경방」을 읽고부터는 그를 인정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약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켜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수많은 일본과 중의의 명의들의 논설, 현대의 여러 실험자료, 임상경험과 그 자신의 경험이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책은 약증과 방증에 대해 명확히 알고 수많은 의안과 의론에서 정수를 뽑아 낼 수 있는 이만이 쓸 수 있는 책이다. ‘객관적인 약증’을 명확히 안다면 여러 고대와 현대에 이르는 수많은 명의들의 의안에서 그 처방을 통해 그 약물을 활용하는 기법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 이 길로 꾸준히 나아가 이런 저작을 완성한 그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다만 읽는 이를 위해 노파심에 한 가지 첨언할 것은, 이 책이 비록 상세하나 해당 약물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세신을 공부할 때 꼭 다루어져야 하는aristolochic acid는 이 책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성실한 한의사라면 「약징」에서 시작하여 「약증과 경방」에 이르른 후에도 공부를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원행 / 대한동의방약학회 학술국장, 이원행화접몽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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