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838> - 『藥材質正紀事』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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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838> - 『藥材質正紀事』①
  • 승인 2018.09.22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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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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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양국에 분산된 조선약재 조사기록

   이 책 『藥材質正記事』는 단지 읽히려는 목적으로 펴낸 간행물이 아니라 왜국에서 대마도주에게 명하여 조선에 자생하는 약재를 조사하려고 동래의 왜관에 약재조사 책임자인 藥材質正官을 파견하여 조사한 결과보고서이자 당시 오고갔던 공문서를 모아서 보관을 위하여 정리해 두었던 공문서철의 성격을 띠고 있는 귀중 자료이다.

 

◇ 『약재질정기사』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을 간략하게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의 제8대 쇼군(將軍)이었던 요시무네[德川吉宗]는 자국의 산업을 진흥시킬 목적으로 조선의 다양한 식생과 자원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특히 『동의보감』탕액편에 나오는 약재가 일본에서는 어떤 이름으로는 불리는지, 또는 그것이 일본 땅에서 자라는 것인지 아닌지 등을 조사하고자 하였다. 요시무네는 이러한 자원조사를 통해 장차 자국에서 인삼을 재배하여 조선 인삼을 수입하느라 국부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막부는 미리 정한 178종에 이르는 조사 항목을 부산에 있는 왜관을 통해 조사하라고 쓰시마번에 지시하였다.

  그때 마침 조선의 譯官들로 구성된 問慰行, 즉 譯官使 일행이 대마도에서 머물면서 귀국할 날짜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崔尙集을 正使로 한 조선의 역관들이 현지에서 인삼을 밀거래하려다가 대마도 당국에 의해 발각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사상 최대 규모의 암거래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심하던 대마도측은 이 사건을 조선 정부에 알리지 않는 대신에, 그들로부터 왜관의 약재 조사에 협력하겠다는 다짐을 받아내기에 이른다.
 
이렇게 시작된 약재조사 사업은 당시 대마도 당국에서 고시 쓰네에몽(越常右衛門, 처음 이름은 塩川尙右衛門)이라는 사람을 약재조사 책임자인 약재질정관에 임명하여 부산의 왜관으로 파견하였다. 약재질정관이란 글자 그대로 약재의 이름을 묻거나 성상을 따져서 그것이 자국의 어떤 품종에 해당하는지를 밝혀내는 일이 주된 임무였다. 이 때 조사한 내역을 본국에 보고하기 위하여 작성했던 기록물들을 대마도 藩廳에서 필사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대마도에서 약속했던 대로 조선 역관들은 귀국 후 고시 쓰네에몽의 약재 질정 업무를 도왔다. 그중에서도 과거에 훈도(訓導)를 역임한 적이 있었던 李碩麟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이보다 먼저 대마도 측은 조선 상인들을 약재 조사에 가담시켰다. 조선의 지역 사정에 밝은 그들의 협력 덕택에 일본 측은 서쪽으로는 한성과 황해도, 남쪽으로는 거제도, 북쪽으로는 평안도와 함경도, 그리고 동쪽으로는 영덕과 영해, 경주에 이르는 지역에서 동식물 실물과 표본을 구할 수 있었다. 왜관과 인접한 동래의 藥店과 약재상들이나 채약꾼들이 일본 측으로부터 돈을 받고 여기에 동원되었다.
  이 『약재질정기사』는 모두 4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현재 그 중 제1권과 3권은 한국의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고 제2권과 4권은 나가사키 현립 쓰시마역사민속자료관(對馬歷史民俗資料館)에 분산되어 전해지고 있다. 첫 번째 책은 1721년에 작성된 것이고 대마도에 있는 제2책과 제4책은 1722년에 작성한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는 제3책은 1723~1726년 사이에 작성된 것이어서 서로 작성 시기에 차이가 있다.
  쓰시마역사민속자료관은 우리에겐 ‘對馬島宗家文書’로 잘 알려져 있는 유서 깊은 곳으로 우리에겐 한-일 관계사와 고대 교류의 역사에서 빠트릴 수 없는 중요 문헌들이 다량 수장되어 있다. 특히 조선의 본초자원과 식생을 조사한 이 귀중한 사료도 대마도종가문서 가운데 하나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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