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서주희의 도서비평]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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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서주희의 도서비평]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 승인 2018.10.12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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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희

서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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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외상 후 성장의 과학: 역경을 삶의 지혜로 바꾸는 안내서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이 니체의 명언을 보는 순간 이것은 제 임상의 아젠다가 되었습니다. 전쟁 이후 고통받는 사람들의 증상을 설명하기 위해 나타난 PTSD는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용어가 되어버렸습니다. 비단, 이제 트라우마는 개인을 압도시키는 반응을 일으키는 모든 일에 대한 보편적인 용어가 되어버린 듯 합니다. 임상현장에서 트라우마가 원인이 되는 경우는 너무도 많기에, 이 아젠다를 붙잡지 않고서는 이런 현실을 지켜볼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Stepen Joseph 著, 임선영‧김지영 譯, 학지사 刊

트라우마를 치유하던 임상가들은 트라우마가 고통의 주범이라고 생각하고, 이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과 반응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트라우마 경험자들로부터 ‘회복을 넘어선 성장’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외상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 합니다. 외상을 경험한 사람들이 단순히 외상 이전의 기능 수준으로의 회복이 아니라 개인이 가지고 있던 이전의 적응수준이나 심리적 기능수준을 넘어선 진정한 변화를 경험한다는 것이죠.

외상에 반응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있습니다. 거센 바람이 부는 언덕에 서 있는 나무들을 상상해봅니다. 바람에도 구부러지지 않는 나무가 있습니다(resistant). 또 어떤 나무는 구부러지기도 했다가 바람이 멈추면 다시 원래 모양으로 되돌아 갑니다(recover). 언덕 꼭대기에서 거센 바람을 맞은 나무는 결국 바람에 구부러집니다 하지만 바람이 머무면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대신 영구적인 변화가 일어나지요. 이전과는 더 이상 같이 않고 달라집니다(외상후 성장).

9.11 테러 이후 수행한 연구에서 가장 많이 성장한 사람들은 외상의 영향에 저항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심리적으로 흔들려서 어느 정도의 중등도 외상후 스트레스 증상을 보인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즉, 외상후 성장은 외상후 스트레스를 함께 겪어내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죠. 그러면서 외상후 성장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외상후 스트레스와 성장간의 관계는 역전되어, 외상후 스트레스의 감소로 이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외상후스트레스가 외상후 성장의 엔진이 되지만, 생존자 스스로 이를 통제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잡아야 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겠죠.

외상후 성장은 크게 세 가지 영역에서의 변화가 나타나게 됩니다. 자신의 내적인 강점을 새롭게 발견하고 큰 지혜를 얻게 되는 개인적인 변화, 삶에서 진짜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을 깨닫게 되는 철학적 변화, 그리고 가족과 친구에게 더 친밀한 관계로 접근하게 되는 관계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깨어진 틈으로 빛은 들어오고, 그 빛을 통해 내면의 힘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지요.

식물에게 주광성(走光性)이 있듯이, 인간 역시 기본적으로 빛을 향하고, 본능적으로 성장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온전히 피워내려는 그런 유내모니아적 욕구가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정한 수용, 사랑받고 돌봄을 받고 있다는 느낌, 소속감과 연결감을 갖는 것. 해방감과 자유. 성취감과 숙달감이 필요합니다.

외상후 성장은 변화의 결과가 아닌 변화의 과정입니다. 본연의 모습에 가까운 삶의 방식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주1회씩 외래에 오시는 복합 트라우마 환자가 있습니다. 그분에게 치료를 통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갇힌 몸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주어졌던 잠재력, 가능성을 온전히 발휘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빅터프랭클이 이야기했던 자기결정론적인 인간으로서의 그런 존재론적인 욕구였습니다. 저는 언젠가는 반드시 그분에게 이 시를 스토리텔링으로 들려 줄 겁니다.

 

나무에 대하여 - 정호승 -

 

나는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가 더 아름답다

곧은 나무의 그림자보다

굽은 나무의 그림자가 더 사랑스럽다

함박눈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많이 쌓인다

그늘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그늘져

잠들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와 잠이 든다

새들도 곧은 나뭇가지보다

굽은 나뭇가지에 더 많이 날아와 앉는다

곧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나

고통의 무게를 견딜 줄 아는

굽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서주희 / 국립중앙의료원 한방신경정신과, M&L심리치료 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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