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844> - 『最新國漢藥物學』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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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844> - 『最新國漢藥物學』③
  • 승인 2018.11.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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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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臨政樹立과 사라진 醫街風情

1958년에 펴낸 이『最新國漢藥物學』이란 실용서를 통해 1950~60년대 본초약물학의 변화양상을 가늠해 볼 수 있는데, 발행인인 李泰浩(?~1962)가 쓴 凡例의 마지막 조문은 다음과 같이 전개되어 있다.

◇ 『최신국한약물학』

“微要에는 誦習을 편케 하기 위하야 賦體를 써서 吐를 다러 仍置하고 雜論에는 詳盡를 期하야 稟性, 歸經 등등의 條目을 特設하얐으나 해설이 簡要한 것은 雜論 二字로 총괄하얐으며 이른바「險僻穢濁」의 약품은 此를 一切割愛하야 新論條와의 朱紫의 混을 피한다.”라고 하여 상세한 편집원칙과 그 의미를 밝혀놓았다.

이태호가 직접 작성한 이 글의 말미에는 ‘民國四十年 五月 端陽日에 杏坡識’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1958년에 출간한 이 책에서 민국40년이라고 밝힌 시점을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인가? 40년을 역산해 보면 1919년이 민국원년이 되는 셈인데, 실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이나 일제식민치하에서 광복된 해인 1945년과는 시기적으로 부합되지 않아 의아스럽기만 하다.

시사에 밝은 독자들은 이미 짐작했겠지만, 1919년 기미독립선언 이후 상해에 세워진 임시정부 수립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적은 것임에 분명하다. 이로써 기산하면 대한민국 27년에 일제치하에서 해방된 것이고 30년 되는 해에 대한민국 정부가 독자 수립된 것이며, 1958년은 이로부터 딱 40주년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이태호는 임정수립을 대한민국의 출발로 여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40돌이 되던 이 해 端陽日 즉, 단옷날에 민족정기를 고취시키려는 여망을 이 책에 담고자 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색다른 내용이 많고 많지만 본문 가운데 몇 가지만 특기해 보려 한다. 그 중 하나로 漢藥調合用器具가 있다. 여기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종래의 습관에 의하면 한약을 조합함에 당하야는 상용약은 미리 細挫하야 藥欌(一云 百味簞笥) 抽匣(설합)내에 분치하얐다가 조합할 시에 소요의 약미를 手握衡量함이 通例임으로 조합용기구로는 藥衡 1개로써 족하다 하얐지만은 현금에는 약미의 掬出은 ‘匙’로써 하는 것을 법으로 함으로 玆에 湯藥及散藥의 조합용기구와 그 재료를 逐次說明코자 하는 바이다.”

쉽게 말하자면 계량용구를 개량하고 임의 조제하던 폐습을 바꿔야한다는 주장이 담겨져 있는데, 이후로도 수십 년간 손대중에 의지하여 대충 약을 짓던 관행이 남아있던 것을 상기해 본다면 시대를 앞서 그릇된 업계의 관행을 바로잡으려 했던 주장이었다.

세부항목으로는 小包紙, 匙, 壓尺, 方寸匕, 刀圭, 錢五匕, 藥升과 같은 것들이 다뤄져 있다. 이 가운데 ‘방촌비, 도규, 전오비, 약승’은 散藥投劑에 쓰는 기구로써 分藥할 적에 앞의 3가지는 밖으로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집어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약되(藥升)는 상부와 평면이 되도록 하는 것을 법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오늘날 이러한 것들조차도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 되고 말았으니 앞의 몇 가지 도구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기로 하자. 먼저 包紙는 “일반적으로 藥袋紙라 하는 것인데, 韓國白紙 또는 요즘에는 보통 노로지를 4切하여 쓴다.”고 하였다. 약포지라고 불리는 1회용 소량 포장지인데, 藥貼紙, 혹은 藥袱紙라고도 불리었다. 또 압척은 “금속제의 편평사각형을 이룬 長棒으로 다수의 첩약을 조합할 때에 배열한 포지가 飛散하지 않도록 壓置하는 錘로써 쓰는 것이니, 곧 文鎭이 그것이라.”고 하였다. 불과 20~30년전까지만 해도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제실 풍경이었으나 이제는 채록해서 보전해야할 전통의약문화가 되었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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