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306): 張起學(1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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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 인물사 (306): 張起學(1872〜?)
  • 승인 2018.11.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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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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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의계의 대동단결을 촉구한 한의사
◇1915년 학술잡지 동의보감 1호에 나오는 장기학의 글

1905년 일제가 통감부를 설치하여 한의학을 정책적으로 배제하려고 하는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경향각지의 뜻있는 젊은 한의사들이 뜻을 모아 ‘八家一志會’라는 한의사 결사 단체를 조직한다. 이 단체는 李鍾馨敎授의 연구에 따르면 趙炳瑾, 金永勳(서울), 田光王(黃海), 張起學(平安), 朴爀東(江原), 李喜豊(忠淸), 徐丙琳(大邱), 林炳厚(東來) 등 8인의 한의사들로 구성되었다. 이 8인의 한의사 중에 張起學이라는 이름의 한의사를 발견하게 된다. 박훈평 편저, 『일제강점기 의생 총목록 1』, 한국한의학연구원, 2018에 따르면, 張起學은 평안도 출신으로서 京城府 中部 寬仁坊 下靑石洞을 주소로 하며 每日申報에서 그를 朝鮮漢方醫會評議員(1914.8.29日字), 全鮮醫生發起總會 監事(1915.11字)로 기록되어 있다. 그가 일제강점기 무렵 한의계의 중심에서 활동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라 할 것이다.

1915년 간행된 한의학 학술잡지 『東醫報鑑』제1호에는 ‘敬告我全鮮醫生’이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다. 이 글에서 張起學은 東醫學의 발전을 위해 전선의생대회가 열린 것과 全鮮醫會가 구성된 것의 역사적 의의가 막중하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하고 있다. 그는 서양의학이 대세를 잡고 한의학이 뒷전으로 물러나게 된 것은 일시적 시대적 조류로 인한 사안에 불과하므로 한의학을 연구하는 모든 東醫界가 대동단결하여 이러한 어려움을 뚫고 나갈 것을 선언하고 있다.

 

김남일 /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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