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 오늘을 물려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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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 오늘을 물려주시겠습니까
  • 승인 2019.01.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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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mjmedi@mjmedi.com


부산시한의사회 홍보이사

지난해는 40살이 되었던 해다. 앞자리가 바뀌던 2008년에 30살이 된다고 여러 감회에 젖던 것에 비하면 아무런 감흥 없이 40의 계단에 올라왔다. 2017년 2월까지 한의원을 운영하다가 쉰지도 이제 2년 가까이 되어 간다. 지난 2년간 때로는 외국에서, 때로는 진료를 하며 내 삶의 쉼표를 스스로 찍었다는 것에 만족을 한다. 꽤 오랜 시간 같지만 훌쩍 지나간 2년이다. 이 시간이 만족스러운 이유는 무엇보다도 7살, 4살 두 아들의 추억 속에 아빠가 많이 담길 수 있어서다.

두 아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기억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느껴진다. 마음 속 큰 부분을 아빠에게 내어주고 있음을. 성인이 되면 기억나는 어린 시절이 많지는 않다. 대략 초등학교 입학 이후, 그것도 고학년이 되었을 때부터 꽤 많은 기억이 남는다. 7살과 4살의 시간은 기억 속에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억이 없는 이 시기가 더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의 성격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을 따라다니는 여러 가지 생각습관들이 이 시기에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기억이 남아있는 시기가 나무의 기둥과 가지, 잎과 열매라면 기억이 나지 않는 시기는 토양과 뿌리인지라,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한 개인의 성숙과 인격형성에 아주 중요한 시기가 이 때인 듯하다.

아이들은 부모가 물려주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무심코 내뱉는 말과 얼굴표정, 생각과 습관 등 거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특히 아빠, 엄마의 기분과 감정은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부모의 기분이나 감정은 ‘가정의 날씨’와 같아서 아빠, 엄마의 감정 상태는 그것이 겉으로 표현되지 않더라도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아빠 엄마의 관계, 아빠와 엄마가 자신의 일을 하면서 매일 느끼는 감정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삶은 견디는 것, 일은 돈 벌이를 위해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아이들은 어떤 느낌을 받을까? 한의원을 운영할 때의 나는 이 부분이 가장 우려됐다.

아이들이 지금의 나처럼 살면 아빠로서 행복할까? 아이들은 아빠의 일상이 부러울까? 아이들은 아빠의 직업을 자랑스럽게 느낄까? 이런 질문들이 이어지다가 ‘나의 오늘을 내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문득 떠올랐다.

나는 아이들이 <자신의 일이 즐거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일이 재미있으면 좋겠다. 출근이 괴롭지 않고 매일 아침이 기다려지면 좋겠다. 그런 직업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자신의 일이 세상에 필요한 일이 되어야 그로 인해 경제적으로 안정을 이루고 생활을 유지할 수 있으니 재미가 없다고 나쁜 직업이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부디 자신의 적성에 꼭 맞는 일을 찾아서 일이 재미있으면 좋겠다.

돈도 많이 벌고 보람도 있고 재미까지 있다면 완벽하겠지만 세상에 그런 직업은 흔치 않다. 만약 내 아이들에게 돈과 다른 가치를 비교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부디 돈 보다는 자신의 재미와 보람,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직업 선택의 기준이 되면 좋겠다. 그것은 아이들에게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아빠인 나에게도 동일하다.

아빠가 일상을 즐겁게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리기가 참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의 동시대 동료들과 우리의 아버지 세대들은 일상을 참아내며 꾸역꾸역 살아왔고, 지금도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고통과 고생은 당연히 인내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인내가 늘 상책(上策)은 아닌 것 같다. 인내하기 보다는 스스로 자문(自問)해보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오늘은 아이들에게 물려줄 만한 하루였나?”

영화 <비포 선 라이즈>에서 사랑에 빠진 여자가 남자에게 이런 말을 한다. “이 세상에 만약 신이 있다면 신은 당신이나 나 혹은 우리 안에 존재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어요.” 이 대사를 보고 아이들과 부모 사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화학작용, 사랑의 교감 그 속에 신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랑스럽게 오늘을 물려줄 수 있는 아빠 그리고 어른이 되고 싶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물려줄 수 있는 하루>가 쌓여 <간직하고 싶은 2019년>이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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