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어떤 삶을 운전 중 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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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어떤 삶을 운전 중 이신가요?
  • 승인 2019.04.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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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김영호

mjmedi@mjmedi.com


부산시한의사회 홍보이사

사주나 점을 보는 사람이 많은 시절이라고 한다. 그만큼 미래가 불투명하고 살기 힘든 시기라는 반증이다. 힘들 때도 잘 나가는 사람은 있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나 역시 인생의 힘든 시절을 지나고 있다. 충격과 변화의 파도 위를 아슬아슬하게 넘어가고 있다. 꽤 많은 책을 읽고, 경험도 쌓였다 생각했지만 세상 앞에선 어림없었다. 삶 앞에서 나는 어른이라고 착각했던 소년이었다.

운명은 정해진 것일까? 사주나 점에서 말하는 것처럼 바꿀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일까? 힘들수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운명은 결정된 부분이 더 큰가?’라는 의문을 품고 있는 중에, ‘운명은 변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다’는 구절을 발견했다. 명(命)이라고 하는 <바꿀 수 없는 삶의 재료>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 재료들을 조합하고 운전(運轉)해나가는 방향은 각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기에 명(命)보다는 운(運)이 훨씬 중요하다고.

나는 어릴 때부터 윤회(輪回)를 믿었다. 사람은 하늘의 엄격한 심판과 심사를 통해 죽고 태어나기를 반복하면서 큰 바퀴를 완성해나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유는 모르지만 잘 하는 일’ ‘조금만 배워도 금방 숙련되는 일’ ‘언젠가 꼭 해보고 싶다고 자꾸 생각이 드는 일’ ‘처음 접해도 낯설지 않고 익숙한 느낌이 드는 일’ 은 전생에서 하던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전생에서 이루지 못한 과업(課業)을 다음 생에서 이어 가는 셈이다. 부모님의 권유에 못 이겨 법학을 전공한 사람이 사법시험에서는 10번 넘어 떨어지다가, 우연히 다른 길로 접어들었는데 대박이 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람은 판검사가 될 운명이 아니라 다른 길을 갔어야하는데 조금 늦게나마 자신의 길을 찾아 명(命)이 바른 길로 간 경우다.

그럼 10번 이상 떨어진 경험은 아무 의미가 없느냐, 그것도 아니다. 10번이상의 실패 경험은 그 사람의 인생에 꼭 필요한 재료일 수 있다. 수많은 실패를 통해 운명적 새 길에서는 더 빨리 성과를 냈을 수도 있고, 실패를 통해 몸에 베인 겸손한 자세 덕분에 성공 후의 교만을 예방했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위로하며 그들의 운명에 조력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 실패라는 경험을 어떻게 바라보고 운용하느냐에 따라 소중한 재료가 될 수도, 그냥 아픈 기억으로만 남을 수도 있다. 그야말로 명(命)을 운전하는 운전사 마음이다.

이번 생의 경험을 종합해보면 다음 생을 예측해볼 수도 있다는 상상도 해본다. 아이들이 좋아서 선생님이 되었다가 우연히 의료봉사에 참여해본 후 늦깍이 간호사가 된 분이 있다. 이분은 자신의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나는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이 정말 잘 맞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런데 그 분이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대학을 다니고 교사를 했던 경험은 아무 필요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번 생에서 아이들과 환자를 돌봤던 경험을 통해 다음 생에는 ’소아과 의사‘의 삶을 살아갈지도 모른다.

내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의 권유로 살아갔던 인생, 우연한 인연으로 새롭게 살아갔던 그 모든 인생은 이번 생을 구성하는 소중한 재료다. 그것을 내 인생의 필수재료로 받아들이느냐 혹은 아픈 경험 속에서 괴로워만 하고 있느냐는 철저히 자신의 선택이다. 인생의 재료(사주:四柱)는 이미 주어졌지만, 그 재료들을 조합하고 구성해서 어느 방향으로 내 삶을 이끌어 갈 지는 운전수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일들을 만나서 먹구름 같은 앞날을 지나고 있다.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 머리로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알고 있지만 마음이 받아들이는 것은 의지와 다른 문제다. 그런데 어느 날 책을 보다가 ‘이 세상은 받아들여야 새로운 것이 잉태(孕胎)되는 생명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인생의 새로운 것을 만나기 위해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받아들이면 그 순간 새로운 것이 잉태되고 기존의 삶에 없던 기회가 찾아온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방황하는 개인들의 사회> 중에 이런 문장이 있다. ‘영혼이 육신과 동거하는 기간은 영혼이 홀로 존재해야 하는 기나긴 기간과 비교하면 우스우리만치 짧지만, 영원한 삶의 질이 결정되는 때는 바로 육신과 영혼이 함께 하는 기간 동안이다.’

그렇다. 영혼이 내 몸에 머무는 이번 삶은 큰 윤회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다. 나에게 주어진 경험과 감정을 받아들이고 소화해서 삶을 더 빛나게 만드는 것은 내 선택에 달려 있다.

이 글을 쓰며 내 마음을 위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운명은 내가 운전하는 대로 흘러갈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이 힘든 생(生)의 동료들과 희망을 나눌 수 있는 글이었기를, 우리의 위기가 새로운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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