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경 시평]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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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경 시평]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인가
  • 승인 2019.06.1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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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경

한은경

mjmedi@mjmedi.com


▶한은경 시평
한 은 경
경기 고양
채영한의원 원장

1.

지인이 권한 책은 <감세 국가의 함정>으로, 저자는 공공재를 제공하는 국가의 기능이 위축될 때 관찰되는 것이 “리스크(Risk)의 개인화”라고 말한다. 리스크의 개인화는 그 구성원들이 속한 사회에서 “승자와 패자를 만들고, 이들 사이의 사회적 균열을 강화한다.” 바꾸어 보면 국가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그 구성원이 파괴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공동체의 의미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사단법인 대한한의사협회와 그 구성원의 관계에 조심스럽게 가져와 보고자 한다. 혹자는 ‘너무 나갔다’. ‘대한한의사협회는 국가가 아니라 이익 단체일 뿐’이라고도 할 것이다. 그럼 여기에 다음 질문이 있다. 이익 단체의 역할은 그 소속 구성원들에게 있어 과연 무엇인가?

이른바 전문직의 개인이 직업활동에 쏟을 시간과 자원의 일부를 사단법인에 투자하면서 기대하는 것은 ‘이익’이 맞지만, 그 이익은 단순히 경제적 이익의 극대화를 넘어선 좀더 총체적인 실체일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사단법인의 구성원도 마치 국가 속의 시민처럼, 기본적으로 구성원을 보호하는 역할을 기대할 권리가 있다. 공동체 구성원 각자의 리스크를 혼자 판단하고 헤쳐나가야 하는 소위 ‘각자도생’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공동체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일 터다. 이런 리스크를 파악하고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실제로 이익 단체의 총체적인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중요할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2.

첩약의 건강보험 급여화 추진을 둘러싸고 한의계에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일방적인 이득이나 손해만 끼치는 선택이 세상 어디 있겠냐마는, 심사숙고하여 내실 있는 정책을 설계하기 위해 꼭 고려할 점이 있다.

변화될 제도는 모든 한의사 면허 소지자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그렇지만 하루 “23명” 보다 적은 수의 환자를 보면서 상근근로자가 5인 미만에, ‘약환’이 ‘지금보다’ 좀더 늘기를 기대하는 작은 한의원과, 그렇지 않은 한의원, 또 임상 외 영역에서 교육, 연구, 산업 등 부문에 종사하는 한의사의 시각에서 기대하는 효과와 부담할 용의가 있는 비용은 모두 다를 것이다. 알려진 것처럼 수가의 적절성에 대한 오랜 논란에도 불구하고 급여화는 국민에겐 사회안전망의 일종이며 공급자에겐 비급여에 덜 의존하는 안정적인 진료를 가능케 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공급자 입장에선 옵션이 최소 몇 개는 더 있을 때 얘기다. 상술한 바와 같은 소규모 한의원의 관점에서 어느 정도로 고통 분담을 해야 하며, 그 인내 중에 손실을 그나마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 또 인내 끝에 장기적으로는 지역사회에 튼튼히 뿌리내린 의료기관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협의체가 가동되고서도 두 달이 지난 현재까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급하다고 건너뛰지 말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고 지나치지 말고, 여러 개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약가마진 양보와 임의조제권 축소, 나아가 지금까지 종래의 한의사가 가지고 있던 배타적인 면허권이 축소될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준비를 하자는 것이 지나친 요구인가.

시범사업에 국한한 문제가 아니다. 관행수가 협상이 약가 마진을 불완전하게 상쇄할 경우를 보자. 제도 시행 직후 단기간 수진자수의 증감을 확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부 한방의료기관들은 실제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단기 손실을 보전할 대안이 뚜렷하게 없는 소규모 한의원의 경우 그야말로 알아서 헤쳐나갈 수밖에 없는 불확실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첩약의 가격탄력성 연구 관련 추계는 제도 시행 이후 정부의 예상 소요재정과, 한약 예상 소비량의 확대로 인한 전체 시장의 경제효과 정도인데, 일선에서 내원 환자의 증감을 겪어야 할 우리 회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니다. 또 한의계 자체가 이질적으로 층화된 여러 규모의 한방의료기관들로 이루어져 단일한 양상의 손익을 부담하는 환경이 아닌데 추상적인 한의계의 이익이란 그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런 문제는 제도 도입 이후 몇 년 안에 다가올 수가 조정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첩약의 건강보험 적용 이후 민간보험사를 비롯한 여타의 보험자들, 정부, 그리고 산업 부문에서 편익이 발생한다면 전체 한의약 시장 규모는 커질지 몰라도 그 효과가 일선 한의원에 선순환되는 것인지는 불명확하다. 오히려 지역사회에 기반한 작은 한의원의 경우 기존의 역할 일부를 여타 보건의료 직능과 공유하고서 다양한 보건의료기관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경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 살아남을 동력이 되는 대안은 과연 누가 가지고 있나. 혹 어딘가에서 이야기되듯 “교차면허”를 통해 다른 어떤 곳에서 “통합의료의 중심에 우뚝 선 당당한 의료인”이 될 수 있을 테니, 한의원이 조각조각난 뒤에도 한의사는 아마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인가?

바뀌는 제도적 환경 속에 전체적인 손익은 균등하게 분산되기보다는 각 개별 한의사가 처한 상황마다, 각 한방의료기관의 규모에 따라, 또는 각자 확보하고 있는 대안의 수에 따라 불균등하게 분포할 수 있다. 추상적인 ‘한의계 전체의 이익’을 설득하려 하기보다, 이런 과정에서 동료가 감당해야 할지도 모를 손실을 어떻게 최소화할지 고민하고 그 대책을 공유하는 것이 공동체의 최우선 과제여야 한다. 이 부분이 빠져 있는 채로 협의체에서 아무리 외부 이해당사자들과 논의를 하고 최종안을 만들어 본들 의미가 없다. 진정으로 한의사가 사회와 더불어 상생할 수 있는 건강보험 급여화 안이 도출되기 위해서는 협의체 논의에 앞서 손실이, 비용이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최소화할 내부 논의가 먼저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어야 하는데, 논의를 수렴할 장이 열리기는커녕, 중앙회 차원의 회원 투표 하나 없는 상황이다.
 

3.

매번 제도의 변화 자체가 리스크를 개인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체는 리스크의 개인화를 줄이려는 목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오히려 가속화할 수 있는 재량도 있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둘 중 어떤 성격의 공동체에 소속되고 싶은가 하는 구성원의 지향성이 이번 찬반 논란의 바탕에 깔려 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한의계의 의사 결정 과정에 바람 잘 날 없을 것 같아 염려스럽다. 불확실한 미래에 뛰어들어 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개인이나 기업으로서는 해볼 만한 선택일 수 있으나 사단법인의 선택으로 언제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최소한 구성원 간에 리스크가 불균등하게 분포할 수 있다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 되며, 만약 미리 탐구된 부분이 있다면, 공유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공동체의 대표에 의사 결정을 위임하고 기다려 보자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구성원을 보호하지 않고 리스크의 개인화를 방치 또는 가속화하는 상황에서는 더 적은 수의 ‘우리들’만이 살아남을 것이고, 공동체의 존재 의미는 약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 고양 채영한의원 원장 한은경


1. 김미경, 감세 국가의 함정:한국의 국가와 민주주의에 관한 재정사회학적 고찰, 서울: 후마니타스, 2018. 해당 부분은 D.S.L.Jarvis, 2007, “Risk, Globalization and the State: A Critical Appraisal of UIrich Beck and the World Risk Society Thesis,” Global Society, Vol.21,No.1,p.27. (http://www.sfu.ca/~poitras/gs_jarvis.pdf) 에서 재인용된 것이다. 원저자인 Jarvis의 동일 논문에서는 ‘패자’를 이렇게 설명한다: 상대적으로 높은 위험에 노출되고,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적 안정성이 감소하며, 교육과 고용의 기회에 제한을 받는 사람.(“Losers…are exposed to increased risk, diminished long-term economic security, restricted access to educational opportunities and the labor market.”).

 

2. 대한한의사협회 홈페이지 ‘하니마당’에 게시된 <서울시한의사회> 서울지부 분회장 간담회 결과(2019. 5. 13) 중 협회장 발언으로, 한의원에 내원하는 1일 평균 환자수를 언급한 것으로 짐작된다.

http://comm.akom.org/bbs/board.php?bo_table=comm_hani&wr_id=4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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