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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8체질] 體質鍼 處方과 알파벳 기호
2019년 08월 03일 () 06:00:45 이강재 mjmedi@mjmedi.com

[1] 로마자 표기
  권도원 선생이 체질침 눈문에서 체질침 처방을 표기할 때 사용한 기호는 기본적으로 숫자이다. 장부(臟腑)의 기호는 로마 숫자로, 장부혈(臟腑穴)은 로마 숫자와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하였다.  

   
 

[2] 納天干法

  한자(漢字) 문명권에서 10간(天干)과 12지(地支)를 조합한 60갑자(甲子)는 숫자(순서) 표기로 사용되어, 갑골문에도 새겨져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전통한의학에서 장부와 경락(經絡)에 숫자의 의미를 갖는 천간을 배속하는 방법을 납천간법(納天干法)이라고 한다. 장개빈(張介賓)은 『類經圖翼』 3권, 「經絡」에서 납천간법으로 경락에 십간(十干)을 배속하였다.

  그러니 권도원 선생이 장부와 경락을 로마 숫자로 표기한 것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3] 배철환

  배철환 선배1)가 경희대학교 한방병원에서 인턴을 하던 시절에, 선배 레지던트가 염태환식(廉泰煥式) 체질침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소개해 주었다. 그래서 체질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김상훈에게 함께 공부해 보자고 권유를 했다.

  찾아가서 배우려고 알아보니 염태환 선생2)은 미국에 있었다. 수소문해서 그 분의 동생인 염동환(廉東煥) 선생을 찾아, 강릉에 있는 염한의원에 가서 공부할 것을 청하고 배웠다.

  배철환 선배가 권도원 선생을 처음 만난 때는 아마도 1992년 중후반쯤인 것 같다. 대한기독한의사회가 초청한 권도원 선생의 강의3)에는 배철환이 참석하지 않았으므로4), 1992년 6월 이후일 것이다. 배철환 일행은 대기실에 머물면서 권도원 선생에게 끈질기게 청해서, 몇 차례 진료 참관을 허락받았고, 매주 수요일에 진료가 끝난 후에 일식집에 가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5)를 마련한다. 그러니까 정식으로 강의라는 형식을 갖추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배철환과 김상훈이었고, 이어서 류주열과 김영태가 왔고, 늦게 황 민과 하한출이 합류했다. 이외에도 몇 사람이 더 있었다고 한다.

 

[4] 김상훈

  김상훈 선배는 신당동에서 신당한의원을 하던 시절에는, 석곡(石谷) 선생의 부양론(扶陽論)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동기인 배철환을 통해서 염동환 선생6)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부양론을 함께 공부하던 친한 후배7)를 염한의원에 부원장으로 보낸다. 그렇게 염 선생과 관계를 맺던 사이에, ‘자신보다 높은 선생님이 계시다’는 염 선생의 말을 듣고, 배철환이 비로소 권도원 선생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더 높은 선생님께 배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배철환은 즉각적으로 방향을 튼다. 염 선생과의 관계를 끊고 두 사람은 신당동에 있는 제선한의원으로 권도원 선생을 찾아간 것8)이다. 두 선배의 갑작스런 방향 전환에 강릉에 가 있던 후배는 곤란한 지경에 빠져서 자리를 접고 귀경하게 된다.

  김상훈 선배는 체질침 임상을 해야겠다고 작심하고 송파구 가락동에 있는 오피스텔 빌딩에 김한의원을 연다. 김한의원은 처음에 ‘한약장을 들여놓지 않은 한의원’이라고 소문이 났다. 한의원의 한약장은 환자 대기실에서 잘 보이게 노출시키던 시절이라 한약장이 없는 한의원은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김상훈 선배는 제선한의원에 권도원 선생의 말씀을 들으러 다니던 때가 자신이 김한의원을 개원한 이후라고 기억하고 있다. 거의 1년 정도 다녔다고 하는데, 자신이 배울 때는 체질침 처방의 기본체계가 모두 셋팅된 상태였다고 한다. 

  나는 체질침의 장방(場方) 체계가 확립된 시기를 1992년말(末)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 이전까지, 내장구조가 두 번 변화되었고 이에 따라 처방의 내용도 변경되었으며 몇 차례 소소한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1992년 5월의 기독한의사회 강의에서는 기존의 병근(病根) 이론을 뒤엎은 새로운 처방체계를 제시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양체질(陽體質)과 음체질(陰體質)의 기본방을 모두 장방(臟方)으로 하는 장방 체계가 확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배철환 동기들이 권도원 선생을 만나던 시기는 8체질의학의 역사에서 큰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가장 중요한 치료체계가 확립되던 시기였다는 말이다. 내가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당시에 이들의 8체질의학적 인지(認知)는 거의 초보 수준이었을 것이므로, 이런 거대한 변화의 기운과 실제 내용을 감지할 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권도원 선생이 일방적으로 전달해주는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기에 급급했을 것이다.

  앞선 네 사람9) 중 김상훈 선배가 후배교육에 열성적이었다. 한의대의 동아리10) 출신을 중심으로 많은 후배들이 김한의원에 모여 체질침을 배웠다.11) 이 때 교육 목적으로 체질침 처방 기호를 영문 알파벳으로 기록하는 방식을 김상훈 선배가 만들었다고 한다. 이것을 ‘김상훈式 기호’라고 부르자. (지금까지 이 방식을 배철환이 처음 만들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12) 

  그런데 영문 알파벳이 포함된 체질침 처방 약어를 처음 기록으로 남긴 사람이 있다. 바로 이명복 선생이다. 이것은 ‘이명복式 기호’라고 하자.

   
 

[5] 李明馥式 기호

  이명복 선생은 1993년 4월에 나온 『한국자연건강학회지』 제1집에 실은 글에서 ‘팔상체질침법의 최신 치료법’이라고 제목을 달고 각 계통질환 별로 체질침 처방을 제시하였는데, 이 처방들을 표기한 기호에 대하여 서두에 먼저 설명을 붙였다. 

  권도원 선생이 논문에서 臟을 Zang으로, 腑를 Fu로, 살균방을 Bactericidal Formulas라고 표기한 것을 따라, 이명복과 김상훈 모두 장염부방, 부염부방, 살균부방을 각각 Z, F, B로 하였고 나머지는 다르다.

  체질침 2단방은 장계염증방, 부계염증방, 활력방, 살균방, 정신방이라고 부르고 이대로 표기하는 것이, 처방이 가진 의미를 전달하기에도 아주 명쾌하다. 2단방만을 놓고 본다면 별도의 기호를 사용한 표기법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1995년 12월에 청년한의사회에서 강의하면서 배철환은 체질침 2단방까지만 설명했기 때문에 알파벳 기호를 사용한 처방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3단방 이상이 되면 사정이 좀 다르다. 3단방 이상의 고단방은 처방을 운용하는 방식이나 적용하는 영역이 다양하므로 처방을 대표하는 이름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13) 체질침 처방은 계통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체질침 처방을 로마 숫자 말고 각각의 단위 처방을 대표하는 알파벳 기호로 표기하는 것이 고단방 표기에서는 좀 더 편리하다는 인식에 이르렀던 것 같다. 이명복과 김상훈의 목표가 비슷했다는 것이다.

  이명복 선생이나 김상훈 선배 모두 체질침 고단방에 관한 정보를 얻었고, 이를 전달하거나 학습하기 쉽게 표기하기 위하여 비슷한 고민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참고 문헌
1) 「체질침 치료 처방에 관한 연구」 『明大논문집』 1974. 1.
2) 張介賓 『類經圖翼』 人民衛生出版社 1980. 4.
3) 체질의학 식사법과 치료법 『한국자연건강학회지』 제1집 1993. 4.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각주
1) 경희한의대 79학번 32기 졸업 : 배철환, 김상훈, 김영태, 류주열, 황 민
    경희한의대 79학번 33기 졸업 : 하한출
2) 『體質鍼診療提要』를 통해서 24체질을 주장하였다.
3) 1992년 5월 2일부터 23일까지, 토요일 아침에 4회 연속으로 학술집담회를 열었다.
4) 강의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던 진주 동산한의원 장승환 원장의 증언이다.
5) 두 시간 정도였다고 한다.
6) 오상체질론을 만들었다.
7) 경희한의대 35기 윤OO
8)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9) 배철환, 김상훈, 류주열, 김영태 네 사람은 1996년 10월에 『8체질건강법』을 함께 펴냈다. 김상훈 선배가 전하기를, 권도원 선생은 다른 사람 이름으로 책이 나오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다. 이 책을 내면서 권도원 선생과 배철환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던 것 같다. 책이 출간된 후 네 사람이 모두 제선한의원에서 쫓겨났다는 것이다. 그런 후에 배철환과 김상훈이 다시 찾아가서 제선한의원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었다고 한다. 그런 후에 다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2007년 가을에 허경구 전 의원(議員)을 만났을 때, 그 분이 『8체질건강법』의 출간과 관련하여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이 권도원 선생에게 ‘裵를 조심하라’고 조언했다는 것이다. 
10) 대학을 다녔던 당시에는 동아리라 하지 않고 써클이라고 불렀다. 배철환은 녹원이었고, 김상훈은 피닉스였다.
11) 3년 동안 20~30명 정도를 가르쳤다고 한다.
12) 장염방, 활력방, 부염방, 살균방, 정신방이라고 표기된 것은 사실은 장염부방, 활력부방, 부염부방, 살균부방, 정신부방이라고 해야 옳다.
13) 물론 1990년대 중반부터 KZP는 척추방이나 디스크방으로, KFP는 궤양방으로, KBP는 바이러스방으로 KVP는 활력(응용)방으로 불러오기는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런 命名으로 인해 해당 처방이 가진 의미가 오해되고 축소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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