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생의 연소를 거의 앞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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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강솔의 도서비평] 생의 연소를 거의 앞둔 사람들
  • 승인 2019.11.08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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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솔

강솔

mjmedi@mjmedi.com


도서비평┃가만한 당신, 숨결이 바람이 될 때

<가만한 당신> 을 읽었다. 이 책은 부고 기사이다. 부고를 알리는 외신들 중에 저자가 끌리는 사람들을 선택해 그 삶을 기록하였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들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차별과 억압과 무지와 위선에 맞서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할 가치와 권리를 쟁취하고자 우리 대신 우리보다 앞서 싸워준 이들’ 이라고 말했다. 저자의 친구는 <생을 거의 완전 연소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생을 거의 완전 연소한다는 건 어떤 걸까.

이 책은 주루룩 훑어 내려갈 수 없는 글이었다. 글을 읽을수록 점점 더 마음이 성실해졌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천천히 씹어 읽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시기,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이렇게 시끌벅적하고 이렇게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니.

콩고에 내전으로 수많은 여자들이 강간당하고 살해당할 때 그들과 같은 피해자였고 그들의 대모가 되었던 마시카 카추바가 있었다. 여성할례 금지운동을 시작했던 에푸아 도케누가 있었다. 본인이 암 선고를 받은 뒤 인디애나 주에서 최초로 동성혼을 법제화했던 니키 콰스니가 있었다. 본인이 혈우병을 앓으며 의사로 일했던 홀브룩 콜트가 있었다. 야구란 어떻게 즐기는 것인지를 보여준, 평생 성적이 좋지 않았던 야구감독도 있었다. 감옥에 수감된 이들의 인권을 위해 싸웠던 사람이 있었고, 스스로 죽을 권리를 찾아서 투쟁했던 사람이 있었다. 이들은 내가 학교를 다니고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한의사로 일하는 동안에 거의 같은 시대에 세계 곳곳에서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았다. 마음이 뜨거워지는 책이었다.

스텔라 영, 이라는 호주의 코미디언이자 불완전 골형성증이라는 병으로 키가 1미터가 안되었던, 장애인권운동가가 있었다. 그녀는 장애가 있더라도 교생 실습을 받기를 원했고, 장애가 있더라도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기를 원했다. 장애를 특별 대우 받는게 아니라 사람 사이에 섞여 살고 싶어 했다. <나는 이 세상에 잘 살려고 왔지 오래 살려고 온 게 아니야>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걸쭉한 입담과 농담으로 사람들과 함께 웃었다. 그녀의 삶이야말로 거의 완전 연소한 삶이 아닐까.

어제는, <숨결이 바람이 될때> 를 읽었다. 폴 칼라티니는 문학을 전공하고 신경외과 의사가 되었고 레지던트의 마지막 과정에서 폐암이 발병했고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고 딸을 얻었고 이 글을 쓰다가 2015년 3월 세상을 떠났다. 이 글은 일단 아름답다. 자기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어떻게 효과적으로 명료하게 드러낼 수 있는지 잘 표현한 글이다. 폴 칼라티니는 수술도 참으로 깔끔하게 해 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단 1mm 의 오차에 목 아래 사지가 마비될지도 모르는 수술을 소명을 갖고 해내는 의사였고 그 치열한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날개를 펼쳐 날려는 순간, 암을 맞이했다. 그는 암이 발병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죽음을 대비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고 삶을 살아가기로 결정했다. 암이라는 것을 알고 난 뒤 부부는 인공 수정을 통해 딸을 출산했고 딸을 사랑했다.

마음이 참 먹먹했다. 죽음은 삶을 돌이켜보게 한다. 나도 당장 내일 암이 발견 될 수도 있겠지. 나는 어떤 태도로 살고 있는가.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내가 죽는다면 나는 어떻게 요약되는 부고문을 갖게 될까. 암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폴 칼라티니는 연명하는 것보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삶에선 받아들이고 묵묵히 살아가는 것 외엔 다른 할 것이 없는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을 살아가는 방식이 삶을 얼마만큼 연소하는지를 결정하는 것 같다.

삶과 죽음은 별개가 아니고,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가 결국 같은 이야기라는 것을, 이 두 권의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그냥 좋았다로 마침표를 찍기엔 부족했다. 마음이 뻐근하고 저 깊은 곳으로 뿌리가 조용히 내리는 것 같았다. 가만히, 그러나 뜨겁게, 살아가리라, 속삭였다. 죽음 또한 그렇게 맞이하기를. 마음이 잔잔하고 단단해졌다.

 

강솔 / 소나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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