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계 역학관계가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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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계 역학관계가 변하고 있다
  • 승인 2003.03.1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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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학회 역할 증대, 학문의 주인노릇 잘 해야

한의학 발전 동반자, 협력체게 구축 시점 도래

지난 6월 8일 제2회 한의사전문의시험이 치뤄지던 경희대 종합강의동 앞에 모인 150여명의 개원한의사는 전문의시험 저지에 안간힘을 썼지만 쓰라린 가슴을 안고 돌아서야 했다.

아무도 눈여겨보는 사람이 없었지만 이날은 한의계 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 이유는 개원의 위주의 한의계 회무중심이 이 사건을 계기로 병원계 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리지 않을까 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또한 한의협의 대표성을 부인하지 않지만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때는 반기를 들 수 있다는 사실도 보여주었다.

학회의 역할과 힘도 비례하여 커왔다. 의료사고 하나를 입증하려해도 학회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뒤집어 말하면 학회의 의견 하나에 개원의의 운명이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자는 ‘정책’과 ‘연구’ 자 붙는 것은 모조리 대학병원과 학회 몫이라고 공언할 정도가 되었다.

반면에 개원가는 이미 힘의 한계에 부딪혀 예전만 못하다. 적어도 정책분야에서만큼은 더 이상 합리적이고 타당성을 갖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개원의는 시간, 전문성, 사회적 존경, 실무능력, 인적자원 등의 면에서 병원·학회에 압도당하고 있다.

전환점 맞은 한의협-병원·학회관계

병원·학회는 자체 힘의 성장에 따라 오래 전부터 존재의 인정을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학회의 독립, 보수교육 의무평점 1점 인정, 예산 5% 분배, 학회장의 당연직 부회장 안배 등을 요구해 당연직 부회장만 빼고는 모두 성취하였다.

안재규 한의협 회장은 이미 취임초 이런 변화를 감지하고 처음 대한한의학회 이사회에 참석해서 “협회 할 일, 학회 할 일이 따로 있다”, “협회 일 할 때 항상 학회와 협력해서 일하겠다”고 말한 바 있으며, 공청회 석상에서도 “앞으로 모든 용역사업은 학회에 주겠다, 그 대신 책임져라”고 역설한 바 있다. 병원과 학회는 한의협으로부터 존재를 당당하게 인정받게 된 것이다. 6.8 사건은 이러한 힘과 존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넘어야 할 산 많다

존재를 과시했다고 해서 갈등이 당장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개원가-병원·학회 양자의 관계가 상생의 관계로 발전하려면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게 현실이다. 우선 상호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툭하면 개원의가 교수의 학문능력을 비하하고, 교수는 개원의의 행태를 지적하곤 하는 게 한의계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보수교육장에서 의 상호 불신이 대표적이다. 개원의는 교수가 연구·개발한 새로운 임상기법을 가르치기보다는 보편적인 혹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가르친다고 꼬집는다.

병원의 진료가 개원가와 차별성이 없이 진료비만 비싸다는 비판도 한다. 반면 교수는 개원의가 출석표를 받기 위해 오지, 알차게 공부하기 위해 오는 사람이 없다고 투덜댄다. 시술법도 논문으로 검증받지 않고 목소리만 높인다고 말한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상호 지적하는 일이 도리어 서로의 감정을 건드려서는 안될 것이다. 상대를 어떻게 세워 줄 것인가 고민할 때 해결책이 나오는 것이다.
학회 관계자는 개원가에게 학회의 권위를 인정해 줄 것을 간절하게 바란다. 학문의 최고 권위자에게 예를 갖춤은 스스로를 높이는 행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학회 관계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의협의 사례를 든다.

가령 의협 회장이 행사 때마다 “존경하옵는 학회장님 이하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시작하는 인사말을 한다는 것이다. 이 인사말 속에는 의협이 의학을 기본으로 하는 단체임을 암시한다고 보아 한의계도 이런 아름다운 관행이 자리잡길 기대하는 눈치다.

개원가라고 해서 무조건 학회나 교수, 병원을 백안시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 개원의는 “한의대 교수가 존경받지 못하는 현실을 좋아할 한의사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면서 다만 “교수가 한의학의 주인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 하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한 것 뿐”이라고 밝혔다.

학회가 바로 서려면

학회도 환골탈태해야 한다. 의협과 같이 학회장이 대접받기 위해서는 명실상부하게 제 역할부터 다 해야 한다. 학회가 개원가에 예우를 기대하듯이 개원가도 학회에 기대하는 바가 많다.

먼저 병원·학회는 개원의의 예우에 상응하는 보상을 돌려줘야 한다. 이 점에서 개원의의 요구는 한결같다. 한의학문을 체계화시키고 표준화해서 한의학의 기반을 다지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한의학 기준 설정을 위해 학회가 2002년도 사업으로 추진하는 진료지침 개발, 한의표준질병사인분류, 교육과정 개선, 학습목표 개발, 국시방향 개선 등이 성공적으로 완수되면 개원의에 주는 최상의 보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병원·학회 스스로 노력할 과제가 하나 더 있다. 한의학의 정책적 측면을 담당하는 일이다.

전문의의 배출로 학회는 그간의 방관자적 자세에서 벗어나 주도적으로 정책을 개발해야 할 책임이 생겼다. 정책을 책임있게 연구·개발할 때 한의학이 지켜지는 것이고, 개원의도 혜택을 입게 됨은 물론이다.

이런 점에서 활동의 장을 병원과 대학에서 벗어나 한의협의 각종 정책기구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 양방의 경우 대학교수가 의협의 학술이사는 물론이고 정책이사까지 맡고 있으며, 산하 위원회에 대거 참여하고 있다. 대의원도 30%를 할당받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다만 학회는 병원과 사립대학의 그늘에서 벗어나 권위와 자율성을 갖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개원가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차제에 검토되어야 할 또하나의 숙제가 개원가의 신임상기법과 학
문적 성과를 대학교육내로 끌어들이는 일이다. 이런 조치가 수반될 때 대학과 병원과 학회에 대한 개원가의 불신과 감정의 벽을 다소나마 덜 수 있을 것이다.

소망스러운 상생의 관계

새롭게 분출하는 학회, 병원, 대학, 전공의의 힘은 갈등의 측면에서만 보면 부정적이지만 상호 경쟁하고 자극을 준다는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발전의 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문의시험을 둘러싸고 보인 극단적인 대립도 발전을 위한 필연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새로운 목소리를 어떻게 승화시키느냐 여부에 따라 한의학은 발전한다.

그런 점에서 한의협과 개원가에서는 능력있는 인재를 개원가 밖에서 발탁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고, 병원과 학회, 대학측에서는 넘치는 힘을 한의학정책 개발에 쏟아붓는 성실성과 책임감이 요구된다. 그래야 한의학이 살고 한의사제도가 발전한다.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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