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료봉사기(下) - 이세규(아름다운P&S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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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료봉사기(下) - 이세규(아름다운P&S한의원장)
  • 승인 2003.03.1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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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드는 환자에게 희망의 끈을…

사진설명-Ket Sein 미얀마 보건부장관이 진료소를 둘러보고 있는 모습.

● 진료 둘째 날

병원 앞마당에는 어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조금은 진료가 익숙해지고, 재진 환자도 있어 속도는 빨라지겠지만 오늘도 벅찬 하루가 될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다양한 질병 양상을 보인다. 혈액암을 앓고 있는 9살 짜리 환자에서부터 20살에 간경화에 걸린 환자 등 너무도 가슴 아픈 현실에 무기력해지기만 한다.

이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그 무엇도 없는 상황이 희망의 말 한마디 조차 건네기 어렵게 한다. 이렇게 와서 짧은 기간 진료하고 가버리고 나면 그들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어렵게 잡은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고 나면 더 큰 절망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지나 않은지?

그들의 순박한 얼굴을 대할수록 떠날 일이 걱정이다. 아이고 어른이고 모두들 같은 모습이다. 치료를 할 때도 부끄러워해서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이 곳 사람들의 전통 의상인 ‘로웅치’는 남․여 모두 치마 같이 생긴 옷인데, 원래는 속옷을 입지 않고 로웅치만 입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아직도 30%정도는 속옷을 입지 않는다고 하니 이 사람들이 자세를 바꿀 때마다 얼마나 신경이 쓰일지 짐작이 갈 것이다.

다리 쪽에 침을 놓으려 하면 남녀노소 없이 로웅치를 잡느라 시간이 지연되기 일쑤다. 허리띠가 없이 동여매는 방법으로 옷을 입어 여차하면 풀어지기 십상이니 평소에도 행동이 얌전할 수밖에 없을 게다. 곳곳에 짓다만 건물이 즐비하고, 도시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그들의 수도를 보면서 ‘시간이 멈춘 나라’라는 표현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사람들의 밝고 순박한 얼굴에서 보이는 절제된 미소 때문이다.

성장을 멈춘 아이. 무언가에 놀라 잠시 성장이 정지된 아이의 모습이 미얀마의 오늘이다.

● 진료 셋째 날

진료를 위해 출근하는 버스 앞으로 몇 대의 트럭이 병원으로 들어간다. 트럭 가득 태운 사람들이 환자가 아닐까? 어제 TV에 방송도 나가고, 2일이 지났으니 소문이 좀 났는지도 모르겠다. 가운을 입으며 들으니 양곤에서 떨어진 시골에서 차를 대절해서 온 사람이 꽤 많다고 한다. 이미 병원 마당은 환자로 가득 하다.

‘눈이 아파요.’ 이상한 일이다. 어제까지 눈에 대한 증상을 호소한 환자는 없었는데, 꽤 많은 환자가 눈이 아프다거나 안 보인다고 한다. 주 증상을 위주로 치료하느라 눈에 대한 치료는 소홀해 질 수밖에 없다.

역시 환자의 대부분은 허증을 겸하고 있다. 마지막 날이 될 것이므로 되도록 투약일수를 길게 하고, 곁에 있는 전통의사에게도 치료법을 상세하게 일러준다. 집에서 스스로 관리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병원을 이용할 것을 권하기도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본다.

KOMSTA 자문위원이자 경산대 교수이신 노병의 선생께서는 초당대 안경광학과에 재직 중인 주경복 교수를 도와 시력검사를 하고 안경을 무료 보급하는 일을 하신 모양이다.

오늘 눈이 아프다고 한 환자가 많았던 이유가 안경에 있음을 이제야 알겠다. 300개를 가져왔는데 3일만에 동이 날 정도로 안경은 인기가 좋았다.

85세의 노인 턱이 벌어지질 않아 식사를 못한단다. 그 노인에게 다가가자 옆 침대의 젊은 여인이 아이를 안고 다가온다. 시아버지란다. 그 옆의 중년 여인도 다가온다. 친척 아주머니라고 한다. 양곤에서 3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마을에서 일가 친척이 차를 대절하여 상경하였단다. 지금 시간이 4시. 점심도 거른 채 5시간을 꼬박 기다려서야 진료를 받게 되었다. 허기진 상태로 집에 갈 일이 걱정이다. 다행히 턱 문제는 해결이 될 것 같다.

미얀마인에 대한 진료는 오늘로 그치고 내일은 교민을 위한 진료가 예정되어 있다. 환자 진료는 마치고 병원 직원과 전통의사들이 진료를 청한다. 아마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으리라. 또 한약과 파스, 연고제에 대해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으리라.

● 진료 마지막 날

보건부 장관의 요청으로 미얀마인에 대한 진료와 교민 진료를 병행하기로 했다. 오후에는 한․미얀마 전통의약 세미나가 있으므로 오전 진료로 공식 의료 봉사 일정은 끝난다.

진료를 마치고 통역을 도와준 한국어과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전통의사들과 주소를 교환하고, 서로를 포옹하며 석별의 아쉬움을 나누고 서둘러 버스에 오른다.

주 미얀마 이경우 대사, 정육상 참사관, 강호증 서기관, KOICA의 권오성 소장, 정부 파견의 최재승 박사, 외국어 대학의 한지연 선생, 그 외 교민 여러분과 자원 봉사자들, 그리고 미얀마 보건부 장관과 전통의약 국장, Traditional Medicine Hospital의 전통의사와 간호사들, 그분들의 도움이 없었던들 미얀마 의료봉사는 성공적으로 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멀어져 가는 병원을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우리는 세미나 장소인 DMR 국립 의료원 Central Biomedical Library에 도착했다. 이미 미얀마 전통의사들이 강당을 가득 메우고 있다. 전통의약국장인 Dr. Thein Swe의 인사말에 이어 이상운 단장의 답사, 그리고 유창하고 화려한 어학 실력의 노병의 교수 강의가 이어진다. ‘한국의 전통의학과 의료제도’라고 하는 딱딱한 주제를 가지고 어찌나 재미있게 강의를 하시는지 미얀마 전통의사들의 웃음과 박수가 이어진다.
김용호 국립의료원 부장은 ‘중풍 치료의 실제’에 대해 풍부한 임상 경험을 토대로 깊이 있는 강의가 있었다.

내게 주어진 주제는 ‘한국의 침구치료와 본초개요’였는데 통역을 통한 강의는 확실히 재미가 없다. 정확한 의사 전달이 어렵고, 강의의 맥이 끊기는 단점이 있어 외국어 공부를 소홀히 한 것이 한없이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세미나를 끝으로 미얀마에서의 공식일정은 끝났다. 4일간의 진료를 통해 우리는 2천600여명의 환자에게 희망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미얀마의 우수한 전통의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진료 보조자의 역할을 담당해 준 미얀마 전통의사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이 글을 마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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