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代名醫醫案98] 金光泗의 醫案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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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98] 金光泗의 醫案①
  • 승인 2007.07.2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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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光泗(18세기경) : 조선 후기에 활동한 醫官으로서 호는 小心軒이다. 享保 4년(1719)에 조선의 사신들이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 日本人 의사 北尾春倫 등의 일행이 사신들이 묵고 있는 숙소를 방문하여 주고받은 시문과 필담을 모아 정리한 『桑韓唱和塤호集』에 등장하는 朝鮮人 의사이다.

■ 제목 : 痰飮流注骨疽案

■ 내용 : 日本人 醫師 北尾春倫이 다음과 같이 물었다.
“어떤 사람이 27살인데 전에 목에 종기가 하나 생기다가 이듬해 頰車穴쪽으로 퍼졌습니다. 일년 정도 지난 다음에 헐고 농이 생기고 진물이 흘렀습니다. 간혹 양옆구리에 멍울이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정신은 맑지 않고 음식 먹는 것은 전과 같았습니다. 4년 정도 지난 다음 헌데는 아물었고 그 다음에 생기는 멍울은 헐지 않았습니다. 이번 봄에 배를 타고 멀리 여행을 다녀온 다음 心下가 아프고 熱이 나며 먹지 못하면서 人事不省되었는데 며칠 후에 조금 좋아졌습니다. 지금은 턱아래 종기가 크게 나있으며 그 모습은 돌기가 있고 나선형입니다. 오후에 寒熱이 있고 自汗과 盜汗이 번갈아 나타나며 진득한 가래를 뱉고 말하는 중간에 痰이 咽喉에 맺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음식은 반으로 줄었고 배는 불러오면서 虛里脈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脈은 왼쪽이 弱하고 오른쪽은 弦沈하면서 약합니다. 그동안 치료에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에 公께 處方을 부탁합니다. 뵙자마자 힘들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이에 대해 朝鮮人 醫師 金光泗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營衛返魂湯에 獨活, 柴胡 1돈을 넣어서 竹瀝達痰丸과 같이 복용하며 두꺼비술을 같이 씁니다. 두꺼비술을 만드는 방법은 찹쌀 1升을 삶아 누룩가루 1升 5合과 섞습니다. 두꺼비 큰 것 5개와 끓인 물 1升 5合을 넣고 술을 21일 동안 빚습니다. 술이 익으면 맑은 액을 취해서 양에 맞춰 마시고 그 재는 患處에 붙이며 하루 한번 씩 갈아줍니다. 3재까지 써야 합니다.” (『桑韓唱和塤호集』. 번역은 함정식의 것을 좆음)

■ 설명 : 享保 4년(1719)에 조선의 사신들이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 日本人 醫師 北尾春倫 등의 일행이 사신들이 묵고 있는 숙소를 방문하여 주고받은 시문과 필담을 모아 정리한 『桑韓唱和塤호集』에 나오는 金光泗의 醫案이다. 질문에 대해 매우 명쾌하게 답하고 있다.

■ 변증분석 : 위에 나오는 환자의 증상은 癰疽가 나타날 때 생겨나는 증상들이다. 이 환자의 처음 증상은 목에 종기가 생겨 이듬해 頰車穴쪽으로 퍼진 것이었다. 이것이 만성화되어 心下가 아프고 熱이 나며 먹지 못하면서 人事不省되기도 하였고, 오후에 寒熱이 있고 自汗과 盜汗이 번갈아 나타났으며 痰이 咽喉에 맺히기도 하였다. 음식은 반으로 줄었고 배는 불러오면서 虛里脈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에 나열된 증상들 가운데 많은 증상들이 癰疽의 惡症에 속하는 것들이다.

■ 치료분석 : 金光泗가 쓴 榮衛返魂湯은 痰腫을 치료하는 약으로 東醫寶鑑에서는 流注의 증상 중 목구멍에 痰이 막혀 있는 것 같이 느껴지고 추웠다 열이 났다할 때 쓴다고 하였다. 언급된 증상 중 오후에 寒熱이 發하고 말하는 중간에 痰이 咽喉에 맺혀 있다는 것은 榮衛返魂湯의 증상과 일치 한다. 竹瀝達痰丸 역시 流注의 증상에 十六味流氣飮과 함께 쓰는 처방으로 나와 있다. 이러한 정황들로 미루어 볼 때 金光泗가 위의 병증을 痰飮으로 인한 流注의 증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榮衛返魂湯에 獨活을 첨가한 것은 流注를 치료하기 위한 加減法으로 이 또한 東醫寶鑑의 方解에 나오는 방법이다. 柴胡를 쓴 것은 流注가 少陽經 부위로 발생하였으므로 引經의 의미로 가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두꺼비로 술을 만들어 마시고 남은 찌꺼기를 환처에 붙이는 방법도 소개해 주고 있는데 東醫寶鑑의 蟾소丸을 살펴보면 몇 가지 약재를 蟾소에 반죽해 만든 丸藥을 술과 함께 복용하는 방법이 나오며 두꺼비를 태워 惡瘡에 붙이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주목할 점은 北尾春倫이 의안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虛里脈이 뛴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1711년에 조선의 의사로 온 奇斗文에게서 배운 방법일 것이다. 실제로 1711년에 기록으로 남겨진 桑韓醫談에 奇斗文이 胸腹을 진단하며 虛里脈이 움직인다고 말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 때 아버지 北尾春圃를 따라 왔던 北尾春倫이 이를 보고 배워서 진료에 사용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서근우의 「조선통신사 의안문답 기록에 나타난 醫案 연구」 참조함.)

金南一
경희대 한의대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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