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미래포럼] 제11차 토론회 발제문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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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미래포럼] 제11차 토론회 발제문 요약
  • 승인 2007.12.0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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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소극성과 두려움이 개혁의 큰 장애물

◇주제 : 한의학 교육, 바꿔야 산다
◇발표자 : 김기왕 교수(상지대 한의대 진단학교실)

■ 교육의 위기 넘어 학문의 위기

한의학 교육을 둘러싸고 국내외적인 환경이 변하면서 한의대 교육도 개혁을 요구받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한의학 교육 시장이 개방 압력을 받고 있다.
WTO 의료서비스 부문 협상에서 중국 측 1차 양허안(2002년)에 따르면 한의학은 의학이나 치의학과는 달리 교육시장의 개방을 명시적으로 요구받은 분야였다. 국내 한의대가 중국에 맞서 교육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내에서는 의과대학의 교육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서울의대는 세계 100위권 이내로 진입하기 위해 ‘VISION 2017’을 수립해 새로운 교육과정 모델과 교육기법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더욱 중요한 변화는 한의학 교육의 위기를 넘어 한의학, 한방의료 전체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이다. 한의원 환자는 눈에 띄게 줄고, 한의대의 입학성적은 2003년을 기점으로 하향 추세이며, 한방치료기술 연구개발 사업의 성과도 불충분해 재기획에 들어간 상태다.
한의학의 위기가 초래된 근본원인은 돈도 아니고, 인력도 아니고, 시간도 아닌 바로 학문 자체의 문제다.

지난 1천여 년간 유럽 사회의 최고 인재들이 몸담아온 신학이 르네상스 이후 근대 과학과 근대 철학에 뒤쳐진 것도 도그마를 버리지 못하는 학문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었다. 한의학도 마찬가지로 학문의 개조가 필요하다. 학문개조의 추동력은 교육 현장으로부터 나온다. 즉, 현대 학문을 이미 공부한 학생들, 더 나은 대안을 가진 학생들에게 어떠한 답을 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으로부터 한의학의 개혁이 가능할 것이다.
현대 한의학 교육의 문제는 교과서, 교과목과 교육과정, 시험, 실습의 문제와 사교육의 만연으로 요약할 수 있다.

■ 최신 지견 없는 한의대 교과서

한의대 교과서의 문제는 6가지 정도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 교과서는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용어의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를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진단·치료의 표준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교과서는 또한 단계적 학습 구조가 없고, 내용의 정합성이 떨어진다. 같은 내용을 매번 다른 형태로 암기하도록 강요하기 일쑤다. 실증적 연구결과에 의해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구조도 아니어서 최신 지견을 찾아볼 수 없다.

동의보감 체계와 중의변증시치 체계의 교통정리가 없이 공존하는 것도 문제다. 동일 질병, 동일 증상에 대해 상이한 辨證分型을 제시하고, 동일한 證名 또는 病因病機術語가 두 체계에서 상이한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의미 구분이 없다. 더 기막힌 것은 동의보감이 아직도 교과서로 인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밖에 한문,국문, 백화문을 넘나드는 잡탕언어,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 등 현대 국어 공간에 진입하지 못한 국적 불명의 교과서, 고가의 서적이 반강제적 구매에 의해 유지되는 기형적 유통 구조도 문제다.

■ 교육내용의 중복과 상충 심각

양방의학 교육의 성취도가 낮다. 학생들 사이에서 경시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이에 비해 중국은 양방임상의학을 별도의 교과목으로 강의하고 있다. 대만도 각과임상의학에 상당한 비중을 할애하고 있다.
교육 내용의 중복과 상충도 심각하다. 변증학은 병리학과 진단학 양쪽에서 다루는 반면 침구학은 기초와 임상 양쪽에서 소외되고 있다. 같은 질병, 같은 증상에 대한 진단·치료가 과목 간에 서로 다른 행태로 정리되는 경우도 있다.

■ 교수·학생 노동분배 비대칭적

교육내용을 평가하는 방법의 하나인 시험은 개별 지식의 단순 암기 위주로 이루어져 한의학에 내재된 규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만든다. 또한 학습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교육자, 피교육자 양측의 노동이 필요하지만 교육자측은 시험을 매개로 노동력 소모를 최소화한 채 학생 측에게 과도한 학습 노동을 전가해 노동 분배가 비대칭적이다. 시험을 통해 학생들에게 무한 경쟁을 시키는 현행의 교육구조에서는 교수의 노동력 투입을 추동할 동인이 없다.

■ 내용 없는 실습

기초한의학의 경우 콘텐츠가 발굴되지 않아 실습할 내용이 없다. 임상실습도 견습수준에 지나지 않아 환자를 볼 수 있는 의사를 만드는 데 실패하고 있다.

■ 만연하는 사교육

11개 한의대 전체에서 각종 외부 강좌 프로그램이 수강생을 끌고 있다. 사교육을 받아야만 임상 현장에 나갈 수 있다는 의식이 팽배하다. 그러나 사교육을 선택한 이유는 뚜렷하지 않다. 막연히 “대안이 없다”는 데 있다.
따라서 사교육의 대안으로 첫째, 공교육의 체계성과 합리성을 확보해 사교육이 채워줄 수 없는 요구를 충족시키고 둘째, 이론술어에 그치는 강의보다 실증성을 확보해 경험명제를 제시하며, 셋째, 모든 증례를 경험해야 잘 강의할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학문 영역의 전문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 문헌의 명제에서 해방돼라!

한의대 교수는 전통적 교육법에 대한 책임감과 향수를 갖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구의학교육 동향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딜레마에 처해 있다.
교육방법으로 최근 대학교육의 주요 사조인 자기주도학습도 공감할 수 있는 면이 있지만 현행의 한의학 교육 환경에서는 대량의 학습목표 미달 사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모델은 아니다. 상위 그룹에서는 자기주도학습이 필요하지만 학생 대중에게는 전파가능성이 높은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전통의 짐으로부터 해방돼야 한다. 한의대 교과서, 나아가 한의학의 학문적 문제는 대부분 ‘소화되지 않은, 해석되지 않은 문헌의 명제들’ 때문에 발생한다. 해석과 재구성에 대한 교수들의 두려움과 소극성이 한의학 개혁의 큰 장애물이다. 아무도 따라 할 만한 사례를 만들지 않는 것이 문제다. 사고를 쳐야 한다.
전통을 통해 현대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 현대를 앞서갈 실마리를 전통에서 찾아야 한다. 교육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리 = 민족의학신문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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