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약재 되살리기 운동본부 창립 1주년 기념 특별기고(4)
상태바
우리 한약재 되살리기 운동본부 창립 1주년 기념 특별기고(4)
  • 승인 2003.03.19 1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現 유통구조론 ‘좋은 한약재’ 공급 어려워
일부 도매상, 품질보단 가격경쟁에 혈안

김 주 영(한의사·우리한약재 되살리기 운동본부 사무총장)

사진설명-잘 정리정돈된 한약재 진열대(左)와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진열·판매되고 있는 모습이 퍽 대조적이다.


4. 한약재 문제의 근원인 한약 도매상

지금의 한약 문제는 대부분 한약 도매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산과 수입산의 위조와 변조, 그리고 온갖 탈법과 부정이 판을 치는 근본 원인이 도매상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한약본부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자신을 한약 도매업을 했던 상인이라고 소개한 그 분은 “다시는 한약에 손을 대지 않겠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시골에서 대대로 한약 농사를 짓던 그는 수집상에게 몇 번 돈을 떼인 후 동네 몇몇 분의 도움을 받아서 충남 금산에 조그만 한약 도매상을 열었다고 한다. 그는 생산자의 입장에서 판매에 나섰지만 결국 개업한지 6개월만에 8천 만원의 손해를 보고 정리를 했다고 했다. 왜 망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물어보니 바로 인근의 도매상 때문이라고 했다.

고향에서 재배한 한약재를 한 근에 9,500원에 구입해와서 500원 마진을 보고 10,000원에 판매를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다른 도매상에서 12,000원을 받던 한약재를 갑자기 8,500원에 판매를 하더라는 것이다. 전국을 수소문해보니 그 약재는 10,000원 이하로 생산지에서 팔린 적이 없었는데, 어떤 영문인지 몰라도 그 도매상에서는 원가 이하로 판매를 하더라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모양이 비슷한 수입 한약재를 섞어서 가격을 낮춘 것이었다.

이걸 몰랐던 그 상인은 급기야 손해를 볼 각오를 하고 8,500원에 판매를 시작하자, 그 가계는 수입 한약재를 조금 더 섞어서 7,000원으로 가격을 다시 낮추었다고 한다. 순진하게 국산 한약재를 고집했던 그 사람은 결국 망했고 내막을 알고 나서는 고향 땅을 떠났다고 했다. 왜 고발을 하지 않았는지를 묻자 같은 업종에 있는 사람끼리 어떻게 고발을 하냐며 오히려 왜 단속을 나오지 않는지 원망하고 있었다. 누가 누구를 고발할 수 있단 말인가?

몇 년 전에 당귀 가격이 폭락과 폭등을 거듭한 적이 있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이는 거상들의 싸움 때문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몇 가지 품목의 한약재를 대량으로 거래하는 상인을 시중에서는 거상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암묵적으로 합의해서 품목을 나누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당귀를 판매하던 거상이 전국 상권을 독점하기 위해 가격을 낮추어 공급해서 거래선을 빼앗자, 피해를 본 거상들이 연합하여 경쟁적으로 당귀 가격을 낮추기 시작했다.

나중에 생산 원가 이하로 가격이 떨어지자 급기야 수입산 한약재를 섞은 당귀가 유통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식품용으로 수입된 당귀가 국산으로 둔갑되어 유통되기도 했다. 결국 언론에 보도가 되면서 한약 전체가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는 원인이 되었다.

후일 거상 한 명이 부도를 내자 더 이상 당귀가 시장에 나오지 않았고, 이로 인해 당귀 가격은 급격히 상승하게 되었다. 다른 거상들은 가격 할인기간 동안 손해봤던 금액을 단숨에 만회할 수 있지만, 결론적으로 남는 것은 한약에 대한 국민들의 엄청난 불신뿐이다.

도매업자들은 이렇게 가격경쟁에만 열중할 뿐 품질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서울 경동시장의 수많은 도매상들이 한약재를 어디에 보관하고 있으며, 그 중에 몇 개의 업소가 저온창고를 갖추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여름에 벌레가 나오면 어떻게 처리하고 있을까?

한의사들의 잘못된 거래 관행도 한약 품질 저하에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대부분의 한의원들은 외상으로 한약을 납품 받은 후 한 달 내지 석 달 후에 결제하는 방식을 쓰고 있는데, 이를 합쳐보면 도매상마다 수억 원 이상의 외상이 깔려있게 된다. 왜 외상 거래를 하느냐고 물어보면 그래야 한의사들이 계속 거래를 해주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외상 거래는 한의사의 발목을 잡고 있는 올가미 구실을 하는 셈이다.

또한 한약도매상의 특징은 한 달에 몇 천근씩 판매되는 당귀나 황기 같은 품목부터 일 년에 한 근이 팔릴지도 모르는 품목까지 동시에 취급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느 도매상은 당귀는 당귀(신)과 당귀(미)를 비롯하여 A급부터 D급까지, 황기 6종, 천궁 5종 등 자신들이 구비한 품목을 모두 합쳐보면 1천 200종이 넘는다고 했다.

물론 이러한 품목을 한 도매상이 모두 구비하기란 힘들고 몇몇 도매상끼리 품목을 나누어야만 취급이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한 업체가 납품하는 한약재가 나쁘다고 거래선을 바꾸어본들 또다시 동일한 품질의 한약이 납품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유통 구조로는 “좋은 한약”이란 개념 자체가 형성될 수 없다. 어차피 외형적으로 볼 때 좋은 한약일 뿐 결국은 동일한 업소에서 취급하는 한약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통과 관리 시스템을 완전히 바꾸지 않고서는 한약재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 한약의 현실이다.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