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代名醫醫案130] 張介賓의 醫案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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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130] 張介賓의 醫案③
  • 승인 2008.07.1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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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介賓(1563~1640):명나라의 의학자. 호는 景岳. 10세부터 名醫 金英으로부터 의학을 배웠다. 임진왜란 때는 조선에 출병하였고 중년에는 군인으로서 河北, 東北 등지에서 지냈다. 『素問』과 『靈樞』를 깊이 연구하여 30년만에 『類經』을 만들었다. 이외에도 『質疑錄』을 편집하였고, 만년에는 과거의 임상 경험을 종합하여 『景岳全書』를 집대성하였다. 그는 이론에서 陽非有餘, 眞陰不足, 人體虛多實少 등의 이론을 제시하였다.

■ 제목:脹痛案

■ 내용:張介賓이 한 소년을 치료하였다. 그 소년은 평소에 술을 많이 마셨고, 음식을 배고플 때 갑자기 많이 먹는 등 식생활이 불규칙하였다. 하루는 식후에 옆구리가 크게 아팠다. 그래서 스스로 行氣化滯하는 약을 먹었다. 여름에 吐法으로 음식을 모두 나오게 하면 토한 후에 逆氣가 上升하여 脇痛이 생겨 그치기 어렵고 위로 胸膈을 막아 脹痛이 더 심해졌다. 또 嘔吐가 더해져서 다시 行滯破氣하는 약을 썼는데 嘔吐와 痛症은 점점 그쳤으나 왼쪽 유방, 가슴, 옆구리 아래에 하나의 덩어리가 생겼다. 부어오른 것이 단단하여 환자가 누르는 것을 막았고, 臍腹과 胸膈이 막혀 아래에 도달하지 못해서 戌·亥·子·丑時 마다 脹痛을 감당할 수 없었다. 嘔吐가 멈추어서 下法을 쓸 수 있어서 大黃·芒硝·棱·莪·巴豆 등의 약을 쓰고 菔子·朴·硝·大蒜·橘葉을 찧어서 붙였으나 조금도 효과가 없었다. 공격하면 할수록 더욱더 부어올라서 脾氣가 상하지 않았나 의심되어 補했더니 더욱 불편함을 느끼고 湯水를 먹지 못한지가 20여일이 되도록 치료할 방법이 없어 막막해 장사지낼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단지 손으로 환부를 문지르고 안마했는데 그가 조금만 도와달라고 해서 그가 말한 곳을 누르니 통증이 흉복에까지 이르렀다. 세심하게 재어 찾아보니 바로 章門穴이 있는 곳이었다. 이에 쑥뜸으로 章門穴에 40장을 뜨고, 神香散을 조제하여 하루에 3·4차 복용시켰더니 부운 것이 과연 점점 평평해지고 음식도 점차 먹게 되어 비로소 병이 낫게 되었다.

■ 설명:잘못 치료해서 생긴 脹痛을 치료한 醫案이다. 각종 치료법이 효과가 없었던 것을 비평하면서 치료법을 제시하고 있다.

■ 변증분석:誤治로 인하여 痞가 생겨 脹滿이 戌·亥·子·丑의 4개의 時辰에 심해졌다. 이것은 手足少陽經과 手足厥陰經에 氣血이 유주하는 때인데, 이 네 경락(心包, 三焦, 膽, 肝)의 경맥은 모두 上行하여 胸脇에 이른다. 邪氣가 經脈을 막고 있기 때문에 이 시간에 脹滿이 심해진다.

■ 치료분석:章門은 脾의 募穴이며 臟의 기운이 모이는 곳이다. 또 유방아래 옆구리 사이는 곧 虛里大絡에 속한다. 이에 胃氣가 나오는 도로가 되니, 氣가 실제로 章門을 통과하게 된다. 낮에는 가볍고 밤에 무거운 것은 원래 有形의 질병이 아니다. 그리고 한 곳을 눌렀을 때 다른 곳까지 아픈 것은 病이 氣分에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火의 기운을 받으면 氣가 흩어지므로 章門에 뜸을 뜬다. 章門穴에 뜸을 뜨고 神香散(丁香, 白荳蔲)을 먹어 溫經散寒, 舒肝理氣하게해서 증상이 호전된 것이다.

金南一
경희대 한의대 醫史學敎室

※ 張介賓의 의안 ①, ②는 본 연재 19, 20회(05년 4월 25일, 5월 2일자)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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