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과학적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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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과학적 한계
  • 승인 2003.03.1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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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원주의 탈피, 새 빌병관 제시돼야

한 달쯤 전에 중국 시안(西安)을 관광차 다녀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친구, 선배님과 함께 선생님 모시고 2000년 전 통일중국의 수도를 한번 가봐야 되지 않겠느냐는 데 의견이 모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사학가(史學家)로 불릴지라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내공을 갖추신 선생님께서는 박물관 등을 돌아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셨지만, ‘아는 만큼 느낀다’고 역사 지식이 일천한 저로서는 이국의 관광지를 즐겁게 둘러본다는 감흥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도 용케 한 가지 느꼈다면 ‘현대 과학문명의 잣대로 과거를 폄하해서는 안되겠다’ 였습니다. 냉장고, TV, 자동차, 컴퓨터 등 오늘날 우리들이 누리는 문명의 이기들이 없었을 뿐, 2000년 전이라고 해서 그들의 지능·문화·생활수준 등이 현대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만약 그 시대에 전쟁이 없었다면, 수인성 전염병을 극복할 수 있었다면, 위생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면, 나고 자라 늙어 죽는 인생의 사이클이
오늘날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얼마 전 읽은 에드워드 골럽의 ‘의학의 과학적 한계(The Limits of Medicine)’는 이런 저의 생각에 든든한 友軍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세균학과 면역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는 저자의 前歷만을 보면 소위 기계론적 질병관으로 철저히 무장한 의사일 것 같은데, 놀랍게도 그는 이 책에서 그 누구도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현대 서양의학의 발전방향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인간 지놈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설혹 유전자를 모두 밝혀낸다 할지라도 생체계의 거대한 복잡성이 현재의 선형적 분석체계로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예측하고 있으니까요.

아무튼 저자는 지금과 같은 서양의학적 질병관 -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계몽시대의 감염성 질환에나 걸맞는 질병관 - 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즉 서양의학은 산업혁명 이후 이른바 ‘과학’에 편입되어 발전한 까닭에 아직도 환원주의적 사고방식에 젖어있지만, 공중보건·예방접종·항생제 등의 도움으로 평균수명이 연장된 현 시대에는 만성 퇴행성 질환이 과거 전염병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질병관 역시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宇宙라는 시공간을 동시에 생각하지 못한 空間만의 세분화가 절대적 진리인양 몰두해 왔던 서양의학이 점진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파스퇴르, 코흐, 에를리히, 플레밍 등등 수많은 위인들의 업적을 먼발치서 지그시 음미하면서, 현 시대에 걸맞고, 또 마땅히 해야만 되는 우리 한의학의 역할이 무엇일까 한번씩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안세영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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