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代名醫醫案150] 崔得龍의 醫案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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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150] 崔得龍의 醫案①
  • 승인 2009.03.0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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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得龍(선조에서 인조년간) : 광해군 때 醫科考試에 합격하여 御醫로 들어온 후에 嘉義大夫까지 올라간 醫官.

■ 제목 : 煩熱案

■ 내용 : 藥房에서 다시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최근 올린 淸肝湯에 辰砂五령散을 합한 처방은 崔得龍이 의론한 약입니다. 그런데 崔得龍의 뜻은 오래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熱候가 바야흐로 盛하고 겸하여 脹候가 있으므로 이것으로 먼저 淸熱消脹하고 다시 症候를 보아 처치하기 위함입니다. 이미 수 첩을 올렸고 어제의 세 첩은 약재를 지어 올렸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崔得龍을 불러 들여 다시 모든 의사들과 상의하였는데, 모든 의사와 柳後聖 그리고 鄭之問, 崔得龍이 가하다고 하였습니다. 다만 모든 御醫와 柳後聖은 첨가해 넣는 약재가 약간의 차이가 있어서 분명히 좇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崔得龍과 鄭之問 두 의사들에게 참작하여 약물의 분량을 정하라고 하였는데, 柳後聖의 말을 따라 玄蔘, 石膏各一錢, 黃連薑汁炒, 白芥子硏, 瓜蔞仁麩炒, 枳殼麩炒, 知母薑製各五分을 더해넣어 앞의 약을 다 올린 후에 이것을 이어서 복용하시게 하는 것이 합당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李師聖이 말한 바의 當歸龍薈丸은 모든 御醫와 柳後聖, 鄭之問, 崔得龍等이 모두 肝火를 치료하는 약물로 이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는 것이 진실로 歸一되는 論인데, 창고 안에 蘆薈가 없기에 전일에 의론한 藥 속에는 집어넣지 않았습니다. 이제 널리 모든 곳에서 구하여 요행스럽게 구하여 이 약에 牛黃四錢을 집어넣어 겸하여 올려 복용하시게 하면 더욱 묘할 것이니 감히 보고합니다.”
이에 올린대로 하라고 하였다. 湯藥은 崔得龍에게 물어서 올리도록 하였다. (『承政院日記』 1639년 8월 17일)

“밤사이에 임금님의 증후는 어떠합니까? 煩熱의 증상은 또한 어떠합니까? 어저께 煩熱이 심하시다는 기별을 듣고, 저희들은 걱정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煩熱의 증상은 어떠하십니까?” 이에 어저께보다 줄어든 것 같다고 답하였다. 何如? 熱候, 亦何如? 昨日伏承煩熱太甚之敎, 臣等不任憂悶之至, 伏未審熱候, 復何如? 答曰, 比於再昨, 則稍似減歇矣。 (『承政院日記』 1639년 8월 18일)

■ 설명 : 인조 때 御醫였던 崔得龍이 인조의 煩熱과 脹滿에 대해 淸肝湯에 辰砂五苓散을 합방한 처방으로 치료한 醫案이다. 하나의 처방을 내기 위해 모든 御醫들과 衆臣들이 충분히 논의하고 있다.

■ 辨證分析 : 인조는 이 무렵에 煩熱과 脹滿으로 고통을 받았다. 인조의 질병에 대해 평소부터 肝火를 지목한 崔得龍은 인조의 煩熱과 脹滿을 肝火로 진단하였다. 다른 기록에서 柳後聖, 鄭之問 등의 御醫들은 崔得龍의 변증과 치료가 實證爲主라는 주장을 하였지만, 신념을 가지고 밀고 있다. 淸肝湯과 辰砂苓散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인조가 怒火에 煩熱의 증상을 같이 가진 것으로 보인다.

■ 治療分析 : 淸肝湯은 『東醫寶鑑』에 따르면 “治肝經血虛有怒火”라고 主治를 정의하고 있다. 약물 구성은 白芍藥 一錢半, 川芎, 當歸 各一錢, 柴胡 八分, 山梔仁, 牧丹皮 各四分으로 되어 있다. 辰砂五苓散은 “治傷寒發熱狂言譫語及差後熱不退虛煩等證”라고 정의하고, 약물의 구성은 澤瀉, 赤茯苓, 猪苓, 白朮 各二錢半, 肉桂, 辰砂 各五分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질병의 후유증으로 남은 虛熱의 증상을 평소에 好發한 肝火의 증상에 연결시켜 치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金南一(경희대 한의대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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