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代名醫醫案157] 柳後聖의 醫案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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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157] 柳後聖의 醫案③
  • 승인 2009.05.0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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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後聖(인조부터 현종년간) : 醫官出身으로 인조, 효종, 현종 년간에 궁중에서 御醫로 활동한 인물. 1646년(인조 24년) 典醫로 근무한 기록이 나오며 1658년 고양군수에 취임한 후에도 수시로 임금이 질병이 있을 때마다 불려 와서 침을 놓기도 하였다. 1662년(현종 3)에는 大王大妃의 병을 완쾌시켜 정1품 輔國崇祿大夫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 제목 : 脾肺損傷案

■ 내용 : ○ 藥房에서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제가 밤에 와서 임금님의 증후를 살피지 못했습니다. 조섭이 어떠하십니까? 어저께 올린 淸上蠲痛湯을 즉시 올렸는지요? 寒縮의 증후와 腦後의 증후는 효과가 어떠한지요? 臣等은 구구하게 염려함을 다 이기지 못하여 감히 문안드립니다.” 이에 자못 나아진 것 같고, 탕약은 벌써 드셨다고 대답하였다. (『承政院日記』 1650년 효종 원년 2월 25일)

○ 藥房에서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제가 밤에 와서 임금님의 증후를 살피지 못하였습니다. 조섭은 어떠하십니까? 약제로 올린 湯藥이 오늘 다 끝났을 것인데, 그 약을 올린 다음에 感冒의 증후는 和解되었는지요? 임금님께서 앓으신 것은 脾肺가 손상 받은 것으로 말미암는데, 醫家들의 말에 脾肺는 嬌臟으로 가장 調和시키기 어려우니 和解시키는 약도 또한 多用해서는 안 되고 화해시킨 후에는 마땅히 滋補하는 약제를 사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에 이 약을 복용한 후에 感冒의 증상이 화해되어 날로 점차 나아졌으니 지금부터는 問安하지 말라고 고했다. (『承政院日記』 1650년 효종 원년 2월 26일)

○ 또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臣等이 엎드려 보건대, 御醫들이 기록한 바의 하교한 임금님의 증상들을 柳後聖, 鄭後啓 등과 여러 차례 상의하였더니 腦後의 증상과 鼻內乾燥로 때때로 코피를 흘리는 것은 모두 肺部에 虛熱아 上升한 소치라고 여기고 回春黃芩湯 五貼을 써서 淸肺淸熱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합니다. 이에 이 약을 올릴 것을 감히 아룁니다.” 이에 알겠다고 대답했다. (『承政院日記』 1650년 효종 원년 2월 27일)

■ 설명 : 淸上蠲痛湯과 回春黃芩湯 등을 활용해서 脾肺로부터 上熱의 증세를 나타내는 感冒의 증상을 치료한 醫案이다. 柳後聖을 비롯한 제 御醫들이 효종의 寒縮과 腦後의 증세에 초점을 맞추어 진단하고 있다.

■ 辨證分析 : 효종은 이 시기 感冒로 인해 頭痛과 寒縮, 腦後의 發熱 등의 증세를 앓고 있었다. 게다가 鼻內乾燥, 衄血 등은 肺部로 熱氣가 上升한 소치로 판단되는 증상이다. 御醫들은 感冒의 증상을 六經으로 이해하지 않고 臟腑라는 잣대로 판단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 시기 질병에 대한 이해의 패턴에 대한 한 유형을 제시하는 것이다. 外感的 질환을 사기의 처소보다는 臟腑의 虛實로 판별하여 用藥의 원칙을 정하는 방법은 한국한의학의 질병관의 한 특징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된다.

■ 治療分析 : 淸上蠲痛湯을 和解라는 의미로 활용하고 있고 回春黃芩湯을 肺部虛熱을 다스리기 위해 쓰고 있다. 淸上蠲痛湯은 일체의 頭痛을 치료하는 처방으로서 黃芩, 蒼朮, 羌活, 獨活, 防風, 川芎, 當歸, 白芷, 麥門冬, 蔓荊子, 甘菊, 細辛, 甘草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처방은 和解의 의미를 가진 發表시키는 처방으로 이해가 된다. 回春黃芩湯은 淸肺淸熱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金南一
경희대 한의대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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