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의료봉사기(下) - 서성수(울산 동보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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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의료봉사기(下) - 서성수(울산 동보한의원장)
  • 승인 2003.03.27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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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에 쏟아진 경이와 찬사

사진설명-진료를 끝낸 후 천막진료소 앞에서 환하게 웃은 진료팀. 앞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필자.

◇ 진료 셋째 날

오전 8시에 호텔을 나와 진료예정시간인 9시 보다 일찍 도착한 관계로 조금 일찍 진료를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예진실에 걸어둔 태극기와 현수막 2장(약 1m×6~7m)이 없어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들어오는 교문에 걸어둔 현수막도 보이지 않았다.

성자의 나라 인도, 자기 소원을 이루기 위해 천년의 고행 후 소원을 말해야 들어 준다는 인도 신화, 가끔은 시바를 믿는 무리들이 화장터의 잿가루를 바르고, 속세의 이재에는 관심이 없는 듯한 표정의 사두들이 사는 나라라고 여겼었는데 분명 산업화의 어두운 면이리라.

병이 들기 전에 고쳐주는 것이 바람직한 의사상 이라면 현수막을 나눠져 이슬을 피하게 하는 것도 질병예방의 한 방법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혹시 우리의 의중을 미리 읽은 것일까. 정영재 원장의 윤리강령 문구 중 ‘건전한 사생활로 봉사단의 품위를 지키며 서로 존중하고 예의를 지켜 단원간의 동지애를 북돋운다’라는 부분이 도우미 현지교민들의 마음에 드는 문구라며 교민모두 입을 모아 칭찬했다.

진료를 개시했던 어제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사람이 대기 중이어서 조금은 무질서했다. 휠체어에 타고 있는 뇌성마비 소아환자 부모가 기다리다 지쳐 어느 선생님이 우리 애를 치료 해줄 것이냐고 묻고 또 물었다.

침 한방으로 몽땅 다 나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토의 끝에 김부환 원장의 진료실로 보냈다. 피부 백반증에 시달리는 환자도 많았다. 햇빛에 나가면 그대로 화상을 입을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섰다.

상류층 차림의 중년 부인과 남편이 미국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좋은 효과를 보지 못했다며 MRI 사진을 들고 상담을 해왔다. 카페트 위에서 맨발로 보행장애가 주증이라고 했다.

올 때는 부축을 받으며 왔는데 침 치료 후 혼자 걸어나가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서서히 들불처럼 번진 입 소문이 오늘 오후부터 내일까지가 최대 고비가 될 것이라고 생각될 만큼 환자는 많았다.

긴 수염을 휘날리며 수행자 차림의 사두가 들어와 앉자 방송팀이 바빠졌다.

혹시 수행 중에 얻은 병이 아니나며 통역 도우미에게 물었다. 척추를 따라 아픈 것이 수행중의 자세로 인해 병이 온 것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예진실로 다시 와서 내 머리에 손을 대고 뭐라고 중얼거렸다. 아마 힌두식 종교의례 인가보다.

양희태 원장과 단장은 취재팀과 함께 이곳 진료소 까지 오기 힘든 환자들을 위해 빈민촌으로 파견진료를 나갔다.

진료소의 환자는 여전히 줄지 않아 약제실에도 불이 날 정도로 바빴다.

정확히 첫날의 3배나 많은 환자가 초진으로 왔다. 학장의 친척들이 VIP환자로 치료받았을 뿐 아니라 총장 친인척도 진료를 받았다. 결국 진료시간이 길어져 오후에 내일 올 예비 번호표를 나눠주고 마무리를 했다.

◇ 진료 넷째 날

어제 나눠준 번호표가 마음에 걸려 단원들 모두 급해졌다. 진료소에는 벌써 긴 줄이 만들어져있고, 재진도 군데군데 보였다.

오후에 전봉천 진료부장의 비만치료 관련 세미나가 있어 진료팀 한 명의 결원이 생길 예정인데다 환자는 더욱 많아져 결국 단장이 진료 부장의 방에서 진료를 시작, 밀려든 환자를 치료하기로 하였다.

진료개시 후 이제는 모두 잘 숙달된 기계처럼 자연스럽게 바빠졌다.
대기하는 환자들이 새치기하는 사람과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줄이 없어졌다, 있다를 반복했다. 교수들이 와서 개인적인 순번조정을 부탁할 정도였다.

예진실 천막을 친 아저씨도 옆에 있다가 씩 웃으며 자기가 아는 사람의 차트를 만들어 슬쩍 밑에다 끼워 넣었다.

그리고 우리가 오기 전에 나눠준 무료 진료권에도 슬슬 VIP라고 자필로 적어왔다. 점심때쯤 주정부의 보사부 장관이 인사차 방문해서 진료실을 돌아보며 격려 해줬다. 이 대학 학장과 총장도 따라서 바빴다. 거의 뛰다시피 하면서 땀흘리며 진료하는 모습이 보기 좋은지 흐뭇한 표정이고, 우리가 가고 나면 이 병원의 스탭들이 걱정이다.

더운 날씨 탓인지 유달리 땀이 많은 정병태 원장의 목소리가 失音穴을 생각하게 하고, 진지한 자세에 또렷한 원어민 영어로 우리 한의학을 설명하느라 목을 많이 쓴 것 같았다.

진료마감 시간이 다 되어가도 환자는 줄어드는 것 같지 않았다. 마음은 밤을 새워서라도 모두 치료해주고 싶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최우선으로 예진실이 마감되고 방방마다 돌아 봤다. 참으로 치열하게 치료한 흔적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완전히 한방진료의 효과에 넋을 잃어버린, 진료 선생님들이 흘린 땀의 양만큼이나 존경심에 가득 찬 여기 전통의과대학 학생들의 눈들이 있었다.

진료 마감 후 교수들이나 학생으로부터 존경스럽다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고, 언제 또 오고, 교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처음에 보였던 태도와는 정 반대의 대단한 관심이 쏟아졌다.

결국 해답은 KOMSTA가 해 주기로 하고 아쉬운 이별을 했다. 정말 짧은 만남에 긴 이별이란 글귀가 꼭 맞는 느낌이다. 의료봉사를 끝내며 진료에 참여한 한의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끝까지 약제실에서 악전고투해주신 울산시한의사회 강동원 사무장, 국가보훈처 박소희 씨에게 특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KOMSTA의 정지현 씨, UBC 김태훈 PD, MBC 금기종, 박지민 씨, 그리고 귀찮아하지 않고 끝까지 도와주신 교민회 부인들, 진료 마지막날 격려 해주신 총영사, 영사님에게 감사 드린다.

짧은 인연이지만 소중히 여기는 포다르 아유르베다 대학의 수쿠리 교수와 그 제자의 환송도 늦은 밤에 장미 한 송이였지만 신선한 충격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단합된 모습이 유지 되도록 각고의 노력을 한 단장님 그리고 인도 팀 전원 쑤끄리아(THANK YOU)!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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