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432- 石澗集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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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432- 石澗集②
  • 승인 2009.09.25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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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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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 산책432 - 石澗集②

전설이 되어 버린, 天下名醫 李碩幹

‘병 잘 고치는 영천 선비’로 명성 자자
金鍼 놓아 명나라 황태후 불치병 완치
용약론에 비유하여 논설 ‘大藥論’ 작성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 <석간집> 혹은 <이석간 경험방>의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의경험방>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李碩幹과 동일 인물인지 여부를 현재로선 확언하기 어렵다. 다만 지난 몇 주 전 영주 지역에 흩어져 있는 이석간 유적 답사길에 후손들로부터 여러 가지 중요한 단서를 확보했는데, 그 분들은 천하 명의로 알려진 이석간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우선 그가 의학자로 활약한 행적 가운데 몇 가지 중요한 사실과 사적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그는 원래 과거시험 공부에 매진해 25세가 되던 1534년 식년 진사시에 2등으로 합격할 정도로 학식이 있었다. 1541년 參奉 벼슬에 제수되었지만 어쩐 일인지 곧 물러나와 의서 읽기를 수천 讀하여 유학자로서보다 ‘병 잘 고치는 영천(영주의 옛 지명) 선비 이석간’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그의 高名이 중국에까지 알려져 명나라 황태후의 불치병을 고치고자 사신을 따라 불려갔는데, 金鍼을 놓아 陰毒을 빼내어 완치시켰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이 전설 같은 얘기는 史傳에는 보이지 않으며, 소백산 산신령의 도움으로 태후의 불치병을 고쳤다는 설정에선 다분히 픽션의 흔적이 엿보여 그 자체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가 공로를 인정 받아 하사 받았다는 99칸 저택의 일부가 쇠락한 모습으로 아직도 시내 중심가 한 켠에 남아있어 그 명성이 빈말이 아님을 추측할 수 있다.
또한 황제가 선물로 주었다는 天桃盃가 나무함 속에 담겨 근세까지도 동네 일가 친척의 혼례에 교배례에 사용되어 왔다고 하며, 실물이 고스란히 전존하고 있다. 그는 퇴계 이황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은 직계 제자로 뒷날 퇴계 선생이 병환 중일 때 직접 진맥을 보아 증세를 살피기도 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렇듯 다분히 윤색된 듯한 구전설화 속 인물상보다는 우리가 직접 조사하고 목도한 그의 행적이 한결 현실감 있다. 아쉽게도 여태까지 의학사에 전하는 이석간은 <사의경험방> 유포 시기인 인조 무렵에 활약한 의인으로 알려져 있었고, 그 전기가 확실치 않으나 그의 경험방을 후인들이 수집하여 <사의경험방>을 펴냈으므로 그 당시 의인으로 상당히 명성이 있었던 것으로만 짐작하고 있다.
현재 알려진 바, 족보와 가승 자료를 통해 확인한 저자의 인적 사항으로 그는 공주 이씨로 자는 仲任, 생원 諴의 아들로 중종 4년(1509)에 태어나 선조 7년(1574)에 생을 마쳤으니 대략 대장금이 활약했던 시기와 비슷하고 허준이 <동의보감> 집필에 착수하기 훨씬 전이다.
특히 그는 영주 지역 선비들의 자치조직인 濟民樓에서 의국을 설치하고 약재를 비축하여 구료활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현재 이들이 활동했던 <제민루지>에 의하면 1554년부터 座目이 기록되어 있으니, 적어도 450여년 이상 이어져 내려온 지역의 자치의약 전통을 살펴볼 수 있는 훌륭한 기록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그에 대한 행적들은 후손들에게 전해진 口傳과 희미한 기억들로 어설프게 엮여져 있을 뿐, 결정적인 증거나 문헌사료가 확보되지 못한 상황이다. 우리가 찾아간 몇몇 家老들 역시 그 점을 매우 아쉬워했고 명문화된 자료를 내놓지 못해 몹시 미안하게 여겼다. 그러나 수확은 의외로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이루어졌다. 그 곳은 고려 理學의 開祖로 받들어 지는 安珦을 봉사하는 紹修書院에서였다.
이번 답사길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후손 집안에서 기증한 일괄 유물 가운데서 찾아진 그의 科紙였다. 아마도 그가 중종 29년(甲午)에 응시한 會試에서 작성했음직한 2장의 대형 科文이 두루마리 문서 중에 유독 눈길을 끌었는데, 그 중 하나는 분명 濟世救民할 방책을 용약론에 비유하여 논설을 펴나간 ‘大藥論’이라는 문장이다. 짧은 시간에 모든 내용을 파악하긴 어려웠지만 그가 30세 이전에 이미 수 많은 의약서를 섭렵하고 사람 몸의 질병을 고치듯이 세상의 병통을 구제하려는 크나큰 포부를 갖춘 인물이었다는 것을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안상우 answer@kiom.re.kr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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