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디오피아 의료봉사 참가기(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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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디오피아 의료봉사 참가기(下)
  • 승인 2003.04.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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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간 3500명 진료, 뭐든 할 수 있다

진료 셋째날(8월 17일)

이제 환자를 보는데도 익숙해 졌는지 모두들 진도가 빠르다. 옆에서는 진선두 원장님이 진료에 여념이 없다. 환자가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하고 의심이 갈 정도로 우리말로 열심히 말을 한다. 마음이 통해서 일까 환자의 얼굴이 밝아진다.

마음이 통하면 병도 치료될 수 있다는 교감이 오가는 것일 것이다. 어차피 영어로 말해봐야 환자는 알아듣지 못하니 우리말로 다정다감하게 말해 주는 친절이
환자에게는 더 가슴에 와 닿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도 탄력을 부쳐 나가고 있다. 다들 피곤한지 지쳐있다. 그렇게 에이즈에 대해 조심을 한다고 했지만 약침 바늘에 두 번이나 찔렸다. 환자는 움직이지 빨리 시술은 해야지…. 그러다 바늘에 찔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인가 보다.

진료를 마치고 한국전 참전 용사촌인 코리아 빌리지를 방문했다. 물론 공식일정의 하나다. 봉사단이 이디오피아에 와서 하루도 공식 일정이 없는 날이 없다. 모두들 피곤해 하지만 그래도 한국을 대표하고 봉사를 해준다는 자부심으로 기꺼이 따라주는 봉사단원들이 고맙기도 하다.

1974년부터 1991년까지 공산정권하에서 한국전에 참전한 용사는 모두 변두리로 뿔뿔이 쫓겨나게 되었고, 황제의 근위병이었으며, 귀족출신도 많았던 관계로 쿠데타 이후 몰락한 세력이 되어 버렸다. 이들이 변두리로 몰려나 살게 된 마을이 코리아 빌리지이다.

참전 용사회 회장으로부터 환영인사와 설명을 듣고, 바로 옆의 창고 같은 곳으로 옮겨 참전 용사 자녀들이 들려주는 노래와 민속춤을 감상했다.

진료 넷째날(8월 18일)

진료 마지막날이다. 오전 진료만 하는 날이라 서둘러야 한다. 그래도 환자는 계속 밀려온다. 방송과 신문에 우리의 활동이 매일 같이 보도되면서 갈수록 환자 수는 더 늘어갔다. 병원 정문에는 아직 티켓을 받지 못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진료종료시간은 다가오고 환자는 철문에 매달려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고, 경찰은 몽둥이로 군중을 해산시키려 한다. 하지만 이제 약침액도 거의 떨어져 간다.

병원 안에 들어 온 환자는 진료하기로 결정하여 오후 진료를 연장하기로 했다. 진료 4일 동안 많은 환자를 치료하려고 노력했지만, 한정된 시간에 한정된 환자를 볼 수밖에 없는 우리의 한계를 탓할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오후 4시에 진료를 종결하고 뒷정리를 했다. 약침은 빼놓은 것은 모두 폐기 처분했다. 혹시 사용법도 모르고 함부로 사용을 하면 큰일 아닌가? 미리 준비한 선물과 생필품을 현지인들에게 주고, 버스를 타고 정문을 나섰다. 아직도 정문 앞에서 못내 아쉬운 눈빛을 보내는 노인과 아이의 눈망울을 애써 외면하면서 고개를 돌려야 했다.

주 이디오피아 한국대사관에서 만찬 초청이 있었다.

식사를 준비할 동안 대사님이 이디오피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수자원을 이용할 수 없는 이유와 전기 등의 절대적인 부족과 사회기간 시설의 낙후, 경제는 자본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아직도 사회주의의 정치적 요소가 많이 남아 각종 규제와 검열로 인해 외국 자본이 들어오는 것을 거의 원천적으로 막고 있으며, 원조에만 의존한 경제구조라 상당히 힘겨운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의 봉사활동이 국가적 이미지를 높이고, 앞으로 한국기업이 진출하는데 돈으로 계산하기 어려울 만큼 큰 공헌을 하였다는 칭찬도 아울러 해 주었다.

출발(8월19일)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비행기가 10시간이나 딜레이되는 바람에 오전에는 예정에 없던 관광을 했다.

국립박물관과 우리의 북한산격인 엔또또산을 둘러봤다.

저녁에 아디스아바바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제 시간에 입국수속을 마치고 출국장에서 대기를 하는데 안내방송도 없이 비행기는 또 지연된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비행기, 분명 우리가 타고 가야할 비행기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곧 이륙해야할 비행기가 불꽃을 튀기면서 땜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땜질한 곳이 식기도 전에 사람들은 태워지고 비행기는 날라 올랐다. 청룡열차를 타도 이런 불안한 마음은 없을 것이다. 리야드에 착륙하고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우디 항공편으로 이집트의 카이로로 향했다. 사우디 공항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아서인지 한참을 고생했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단지 비행기만 갈아타는데도 보안검색을 두 번이나 했다.

봉사를 마치면서

이번 이디오피아 봉사팀은 필자는 물론이고 다른 모든 참가자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팀웍이 끝내줬다”라는 것이다. 이디오피아 드림팀 이란 별칭도 그래서 생겨났다. ‘한의사가 뭉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은 참으로 오랜만에 행복을 만끽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4일간 천식환자 600명을 비롯해 모두 3500여 명을 진료했다. 최소한 이들은 코리아를 잊지 못할 것이기에 민간외교관으로서의 뿌듯함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강한 리더쉽을 발휘한 오광록 팀장을 비롯한 동료 한의사들, 봉사단 후원회 간사인 설기자, 그리고 마라토너 황영조 씨, KBS 은희각 PD님, 여자의 몸으로 먼 오지까지 가서 고생한 리포터 장희수 씨, 진료 내내 필자를 도와 준 약침학회 손목원 사무장, 어떤 궂은 일도 마다 않은 KOMSTA의 정지현 씨, 이들 모두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봉사단에 큰 힘이 되어준 국가보훈처 후원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끝>

강대인(강대인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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