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계 ‘스타급 교수’ 출현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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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계 ‘스타급 교수’ 출현 절실
  • 승인 2009.10.22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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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기자

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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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출신 장차관 나와야 정책비전 나와
본지 730호에서 다룬 한의대 내 연구부정 사례는 연구윤리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가 아닐 수 없다. 교수윤리는 연구윤리 외에 교육자로서 윤리, 의료윤리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교수사회의 도덕적 해이는 연구부정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한의학이 위기인 만큼 대학사회에 거는 기대가 큰데, 그 기대에 부응하는 행동은 나오지 않고 낡은 관행이나 고집하며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인재 양성도 제대로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 신세인 교수사회
논문심사 거마비 문제 등 낡은 관행 횡행
세태 변화 무시하고 아직도 내부 아웅다웅

교수사회의 도덕불감증 사례로 가장 심각하다고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학위 심사비 건네기’다. 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지도교수를 포함한 5명의 심사위원이 논문심사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거마비’로 일컬어지는 심사비를 건넨다. 사실 심사비는 학교에 내는 것이고, 교수들이 이를 받을 근거는 없다. 문제는 심사비를 내지 않을 경우는 심사를 하지 않으려는 풍조가 만연돼 있으며, 학생들도 이를 관행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A교수는 “친한 교수들끼리 함께 심사를 하며 ‘거마비 받으면 술 한 번 같이 먹자’는 분위기다. 문제는 논문을 전공과 상관 없는 교수들이 심사하는데 있다. 이런 상황일진대 논문 내용의 심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는가”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모 한의대에서는 대학원생들이 거마비 문제로 학교 당국에 이의를 제기해 총장이 직접 교수들에게 자제를 당부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논문의 경우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은 교수가 공저자로 올라와 있거나 제1 저자가 뒤바뀌는 경우는 교수들이 실적 쌓기에 혈안이 되면서 보편화된 사례다. 학생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면서도 학점이나 학위 취득에 미치는 교수의 영향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묵묵히 당할 수밖에 없다.

지도교수가 제자들에게 개인적인 잡무를 시키는 일도 흔하다. 한의대 2년에 재학 중인 C씨는 “교수들이 해외 저작물을 제자들한테 리포트 제출 형식으로 번역을 시킨다거나 발표자료 컴퓨터 작업을 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부탁하는 형태이지만 교수들이 전권을 갖고 있는 교육체계 특성 상 이를 거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수련의 B씨는 “개인적인 잡일을 시킨다거나 발표자료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경우는 흔한데 학교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 넘어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수련의 교육도 엉성하다. 교육자로서 윤리나 의료윤리가 부족한 탓이다. 한방병원 4년차 수련의 D씨는 “개업가와 차별성 있는 임상교육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수련의로 들어왔는데 실제 느껴본 바로는 별 차이가 없다”며 “병원이 개업가 보다 나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제대로 된 수련의 진료지침 하나 없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B교수도 “이는 체계적인 교수법을 익히지 못한 채 개원가에서 바로 교수로 채용된 경우일수록 심각하다. 게다가 한방병원 수련의를 위한 지침을 갖고 있는 과도 전체 한의학과 중 단 한 곳에 불과한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때문에 수련의가 교수를 가르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진다. 수련의 D씨는 “환자를 볼 때 수련의가 임시방편으로 치료법을 알아보고 진료하면 교수는 지켜보고 만다. 나조차도 우리 병원에 가족을 입원시키지 못할 것 같다”며 심각성을 토로했다. 그는 “그런 경향은 대체로 나이 든 교수들일수록 심한 것 같다”며 “직접 논문 안 쓰는 교수들도 매년 논문이 몇 편씩 나오더라. 수련의들도 능력 없는 교수들은 세대교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A교수는 “영어 잘하는 수련의가 양방지식을 알아와 거꾸로 교수를 교육시키던 사례들이 예전에는 더 심했다”며 “교수들이 이런저런 검사는 많이 하는데 실제로 검사결과를 가져와도 판독능력이 없어 수련의한테 시키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하다 못해 맥전도 검사결과도 읽지 못하거나 읽더라도 주관적으로 해석을 하다 보니 재현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련의들에게도 원인이 있다며 “자신들에게 불이익이 올까봐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바로 지적하지 않는 태도는 문제를 반복, 심화시키는 또 하나의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내부 결집력 갖고 대국민 홍보대사 키워야
한의학 발전 걸림돌 제거할 정풍운동 절실

물론 이런 윤리적 문제들이 비단 한의대 교수들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교정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이 더욱 큰 문제다. 12개 한의대에 불과한 한의학계는 다른 학문 분야처럼 인력 규모가 크지 않고 폐쇄성이 짙어 그릇된 관행을 반복하며 그저 쉬쉬 하는 분위기다. 모 한의대 대학원생은 “교수들의 윤리문제에 대해 함부로 말할 처지가 아닌 것 같다. 앞으로 학위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이런 문제를 대놓고 말하기 쉽지 않다”며 극도로 말을 아껴 한의대 내부의 경직성을 실감케 했다.

B교수는 교수들의 윤리문제의 원인으로 “한의학이 연구-교육-임상이 유기적 관계를 가지는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교수들이 직능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연구가 제대로 안 됐으니 교육이 안 되고, 결국 임상이 위기를 맞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는 것이다. 그는 “그 동안 교수들은 의를 가르쳐 의사를 양성한 게 아닌 술만 가르치는 침구사나 한약업사 양성에 머물렀던 것이 아닌가 자성해 봐야 한다”며 “젊은 교수들조차 선배들의 구태를 그대로 이어가려는 모습을 보면 아직 한의대 교수사회는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E교수는 윤리문제의 원인을 “한의대 역사를 볼 때 체계적인 계통을 밟아 교육 받지 못한 탓에 교육자적 양심이 실종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즉 제대로 된 교수법을 익히지 못하고, 수련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교수직에 오르는 바람에 학문 심화를 통해 인재를 길러내기는커녕 자리 보전에만 급급해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양심 불량 교수들에 대해 “교수윤리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지만 지금이라도 자체 정화작업이 탄력이 붙을 수 있도록 정풍운동이 일어나야 한다”며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인데, 이런저런 내외부 여건을 고려할 때 실력도 떨어지고 연구열정도 부족한 교수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줄 적기가 분명하다”고 역설했다.

한의계 인사들은 교수사회가 하루 빨리 연구 교육 임상윤리 등 기본을 갖추고 정책적인 비전까지 제시해 주는 집단으로 변모해 주기를 원하고 있다. 대학사회는 개원가가 의지할 버팀목이자 개원가의 울타리이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든 대학사회는 브렌인 집단으로 작용하며 발전을 위한 전략적 사고와 정책 비전을 제시해 주는데 비해 한의계 교수사회는 정책적 지식이 부족해 사회적 이슈에 둔감할 뿐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킹도 약해 한의계 발전을 위한 제언을 위한 대외적 활동이 전무한 실정이다. 개원가 한의사들과 다를 바가 전혀 없는 셈이다. 적어도 이제 한의사 출신 장차관이 나와야 한다는 묵시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의계 비전을 말할 수 있는 상황이다. G교수는 “한의대에도 스타급 교수가 필요하다”며 “한의학계는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분위기가 팽배한데, 이런 분위기가 일소돼야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할 수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이어 “한의학계가 공동으로 노력해 인물을 키우면 그를 통해 한의학계 전체가 수혜를 받을 수 있다”며 “교수들은 좁디 좁은 내부에서 아웅다웅하지 말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한의학계 발전을 고민할 때”라고 제언했다.

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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